구보가 다 탄 담배를 길 위에 버렸을 때, 그의 옆에 아이가 와 선다. 그는 구보가 놓아둔 채 잊어버리고 나온 단장을 들고 있었다. 고맙다. 구보는 그렇게도 방심한 제 자신을 쓰게 웃으며, 달음질하여 다방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뒷모양을 한참 바라보고 있다가 자기도 그 길을 되걸어갔다.
다방 옆 골목 안. 그곳에서 젊은 화가는 골동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구보는 그 방면에 대한 지식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하여튼, 그것은 그의 취미에 맞았고 그리고 기회 있으면 그 방면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생각한다. 온갖 지식이 소설가에게는 필요하다. 그러나 벗은 전廛에 있지 않았다.
"바로 지금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기둥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며,
"한 십 분, 됐을까요."
점원은 덧붙여 말하였다.
구보는 골목을 전찻길 태평통2정목 전차정거장 방향으로 가는 골목으로 향하여 걸어나오며, 그 십 분이란 시간이 얼마만한 영향을 자기에게 줄 것인가, 생각한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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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두 인전 반백이나 되셨군요?"
"반백은 넘었지. 허!"
하고 그 수염을 한번 쓸어 보면서,
"빈발여하백髮如何白고 다인적학로多因積學勞라더니 내 백발은 적학로도 아니고…… 허허!"
하고 크게 웃었다. 그리고 조카가 이것 저것 물었으나 별로 대답이 없이 손자 되는 어린것의 머리만 쓰다듬다가,
"세월밖에 헤일 게 없구나! 대답할 게 없으니 아무것두 묻지 말아…… 내가 다녀갔단 말 시굴집에들 알릴 것두 없구…… 네게 온 건 돈 얼마 변통해 쓸까 하구 왔는데……."
하였다. 성익은 그래도 그 동안 대소가 소식들부터 알려 드리고 나서,
"얼마나 쓰실 일입니까?"
물었다.
"한 천 원 가까이 됐으면 좋겠다."
성익은 얼른 마루 아래 놓인 이 아저씨의 지까다비 생각이 났다. 이분이 금광을 하시는 것이나 아닌가? 하였으나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말을 먼저 받았다. 아무튼 비록 행색은 초췌할망정 생사조차 알리지 않다가 십여 년 만에 찾는 조카에게 자기 개인 밥값 같은 것이나 궁해서 돈 말을 할 영월 아저씨로는 믿어지지 않았다. 성익은 할 수 없이 무리를 해서 모아 온 고완품古翫品에 손을 대었다. 고려청자 찻종 하나와 단계석端溪石 벼루 하나를 이튿날 식전에 들고 나가 천 원은 못다 되고 칠백 원을 만들어다 드리었다. 돈이 칠백 원이란 말만 들었을 뿐, 영월 영감은 헤어 보지도 않고 빛 낡은 양복 조끼 안주머니에 넣더니 저녁때가 가까웠는데도 떠나야 한다고 나섰다. 비는 그저 지적지적 내리었다.
"애장품을 없애 줘 미안타. 그러나 그런 건 누가 보관튼 보관돼 갈 거구……."
하면서 마당에 내려 화단에서 비에 젖는 고석을 잠깐 눈주어 보더니,
"어디서 구했니?"
하였다.
"해석입니다. 충남 어느 섬에서 온 거라는데 파는 걸 사왔습니다."
"넌 너의 아버닐 너무 닮는구나! 전에 너의 아버니께서 고석을 좋아하셔서 늘 안협安峽으로 사람을 보내 구해 오셨지…… 그런데 난 이런 처사취미處士趣味엔 대반대다."
"왜 그러십니까?"
"더구나 젊은이들이…… 우리 동양 사람은, 그 중에두 우리 조선 사람이지, 자연에들 너무 돌아와 걱정이야."
"글쎄올시다."
"자연으루 돌아와야 할 건 서양 사람들이지. 우린 반대야. 문명으루, 도회지루, 역사가 만들어지는 데루 자꾸 나가야 돼……."
이렇게 영월 영감은 목소리가 더 우렁차지며 얼굴이 더 붉어지며 가을비에 이끼 끼는 성익의 집 마당을 부산하게 나섰다. (이태준, '영월영감',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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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림이 세상을 버렸다고 자처하는 것은 이유가 없는 소리도 아니다. 그도 기호들이 동경 있을 때에 역시 동경서 미술학교에 다니면서 한때는 미술에 대한 평론도 쓰고 좌익적인 연극 단체에 관계해 배경도 더러 그려주고 하던 사람이나 서울로 돌아와서 아틀리에에 붙은 문화주택을 지은 후로는 평론은커녕 가장 현명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는 무슨 '예술가' 되는 것은 단념했으나 그대신 음악, 영화, 스포츠, 문학, 무용, 연극 등 모든 방면으로 순을 뻗쳐 그 각 방면의 가장 새로운 뉴스에도 정통하고 있었다. 요새 와서는 골동품 취미가 또 유행이라 그도 돈은 있겠다 골동품도 더러 사들이곤 하였다. 그런 생활 태도를 가장 속물적인 것이라 해서 기호는 일상 은근히 속으로 업신여겨온 것이나 어째 요새 와서는 도리어 홍림이 선각자인 것같이 생각되어 그에 대해 슬그머니 친근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유진오, '가을', 1939)
골동벽骨董癖
가령 신라나 고려때 사람들이 밥상에다 콩나물도 좀 담고 또 장조림도 좀 담고 또 약주도 좀 팔고해서 조석으로 올려 놓고 쓰던 식기 나부랭이가 분묘 등지에서 발굴되었다고 해서 떠들썩하니 대체 어쨌다는 일인지 알 수 없다. 그게 무엇이 그리 큰일이며 사금파리 조각이 무엇이 그리 가치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냐는 말이다. 항차況此 그렇지도 못한 이조李朝 항아리 나부랭이를 가지고 어쩌니 하는 것들을 보면 알 수 없는 심사이다.
우리는 선조의 장한일을 잊어버려서는 못쓴다. 그러나 오늘 눈으로 보아서 그리 값도 나가지 않는 것을 놓고 얼싸안고 혀로 핥고 하는 꼴은 진보한 ‘컷트 글라스’ 그릇 하나를 만들어 내이는 부지런함에 비하여 그 태타怠惰의 극極을 타기唾棄하고 싶다.
가끔 아는 이에게서 자랑을 받는다. 내 이조항아리 좋은 것 우연히 싸게 샀으니 와 보시오─다. 싸다는 그 값이 결코 싸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가보면 대개는 아무 예술적 가치도 없는 태작駄作인 경우가 많다. 그야 오늘 우리가 미쓰코시三越백화점 식기부食器部에서 살 수 없는 물건이니 볼 점이야 있겠지─ 하지만 그 볼 점이라는 게 실로 하찮은 것이다.
항아리 나부랑이는 말할 것도 없이 그 시대에 있어서 의식적으로 미술품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간혹 꽤 미술적인 요소가 풍부히 섞인 것이 있기는 있으되 역시 여기餘技 정도요. 하다못해 꽃을 꽂으려는 실용이래도 실용을 목적으로 한 것임에 틀림 없다. 이것이 오랜 세월 지하에 파묻혔다가 시대도 풍속도 영 딴판인 세상인世上人 눈에 뜨이니 우선 역설적으로 신기해서 얼른 보기에 교묘한 미술품 같아 보인다. 이것을 순수미술으로 알고 왁자지껄들 하는 것은 가경可驚할 무지다.
어느 박물관에서 허다한 점수點數의 출토품을 연대순으로 진열해 놓고 또 경향傾向이며 여러 가지 분류방법을 적확히 구분해서 일목요연토록 해 놓은 것을 구경하고 처음으로 그런 출토품의 아름다움과 가치 있음을 느꼈다.
결국 골동품의 가치는 그런 고고학적인 요구에서 생기는 것일 것이다. 겸하여 느끼는 아름다운 심정은 즉 선조에 대한 그윽한 향수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역사라는 학문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어느 시대의 생활양식 민속, 민속예술 등을 알고자 할 때에 비로소 골동품의 지위가 중대해지는 것이지 그러니까 골동품은 골동품만을 모아 놓은 박물관과 병존하지 않고는 그 존재이유가 감소할 뿐 아니라 하등의 '구실'을 못한다. 같은 시대것 같은 경향것을 한데 모아 놓고 봄으로 해서 과연 구체적인 역사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물론 많을수록 좋다 ─ 그렇지 않고 외따로 떨어진 한 파편은 원인原人 '피데칸토롭스'의 단 한 개의 파편처럼 너무 짐작을 세울 길에 곤란하다. 그것을 항아리 한 개 접시 두 조각해서 자기 침두枕頭에 늘어 놓고 그중에 좋은 것은 누가 알까 봐 쉬쉬 숨기기까지 하는 당세當世 골동인 기질은 우선 아까 말한 고고학적 의의에서 가증한 일이요 둘째 그 타기할 수전노적的 사유관념이 밉다.
그러나 이 좋은 것을 쉬쉬하는 패쯤은 양민이다. 전혀 오전에 사서 백원에 파는 것으로 큰 미덕을 삼는 골동가가 있으니 실로 경탄할 화폐제도의 혼란이다.
모某씨는 하루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요전에 샀던 것 깜빡 속았어 그러나 오원만 밑지고 겨우 다른 사람한테 넘겼지 큰일날 뻔했는걸─이다. 위조골동을 모르고 고가에 샀다가 그것이 위조라는 것을 알자 산 값에서 오원만 밑지고 딴 사람에게 팔아 먹었다는 성공미담이다.
재떨이로 쓸 수도 없다는 점에 있어서 우선 '제로'에 가까운 가치밖에 없는 한 개 접시를 위조하는 심사를 상상키 어렵거니와 그런 도깨비魑魍魎가 이렇게 공교功巧하게 골동세계를 유영遊泳하고 있거니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일이다. 누구는 수만원의 명도名刀를 샀다가 위조라는 것을 알고 눈물을 머금고 장사를 지내버렸다 한다. 그러나 이 가짜 항아리 접시나부랑이는 속은 사람이 또 속이고 또 속은 사람이 또 속이고 해서 잘 하면 몇 백년도 견디리라. 하면 그 동안에 선대先代에는 이런 위조골동품이 있었담네─ 하고 그것마저 유서 깊은 골동품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타기할 괴취미밖에 가지지 않은 분들에게 위조─ 고랑은 눈에 띄우는 대로 때려부수시오─ 하고 권하기는커녕 골동품─ 물론 이 경우에 순수한 미술품 말고 항아리나부랑이를 말함─은 고고학적 민속학적 요구에서 박물관에 모여서만 값이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의미없소 허니 죄다 박물관에 기부하시오, 하고 권하면 권하는 이더러 천한 놈이라고 꾸지람을 하실 것이 뻔─하다. (이상, '조춘점묘',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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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완품古翫品과 생활
무슨 물품이나 쓰지 못하게 된 것을 흔히 '골동품'이라 한다. 이런 농은 물품에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쓴다. 현대와 원거리의 사람, 그의 고졸高拙한 티를 사람들은 골동품이라 농한다. 골동이란 말은 마치 '무용', '무가치'의 대용어 같이 쓰인다. 그래 이 대용관념은 가끔 골동품 그 자체뿐 아니라 골동에 애착하는 호고인사好古人士 인신에까지 미친다. 골동을 벗하는 사람은 인간 그 자체가 현실적으로 무용, 무가치의 인人이란 관념, 즉 맹랑한 수작이 되어버린다.
'골동'이란 중국말인 것은 물론, '고동古董'이라고도 하는데 실은 '고동古銅'의 음전音轉이라 한다. 음편音便을 따라 번쩍하면 딴 자字를 임의로 끌어다 맞추고, '무엇은 무엇으로 통한다' 식의 한자의 악습은 이 '고동古銅'에도 미쳐버렸다. '고古'자는 추사秋史같은 이도 얼마나 즐겨 쓴 여운 그윽한 글자임에 반해, '골骨'자란 얼마나 화장장에서나 추릴 수 있는 것같은 앙상한 주검의 글자인가! 고완품들이 '골동骨董', '골骨'자로 불러지기 때문에 그들의 생명감이 얼마나 삭탈削奪을 당하는지 모를 것이다. 말이란 대대로 '골동' 대신 '고완품'이라 쓰고싶다.
요즘 '신식'에 멀미난 사람들이 청년층에도 늘어간다. 이 일종 고전열古典熱은 고완품가街에도 나타난다. 4,5년 전만 하여도 고물점에서 우리 젊은패는 만나기가 힘들었다. 1세기나 쓴 듯한 퇴색한 '나까오리'를 벗어놓고는 으레 허리부터 쉬여가지고, 돋보기를 꺼내 쓰고서야 물건을 보기 시작하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양품점에서나 만나던 젊은 신사들을 고물점에서 만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고물점을 매우 신선케 하는 좋은 기풍이다. 노인에게라고 생활찬生活讚의 생활이 없다는 것은 아니나, 노인이 고기古器를 사는 것을 보면 어쩐지 상포喪布 흥정과 같은 우울을 맛보는 것이 사실이었다.
젊은 사람이 너무 고완에 묻히는 것도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각방면으로 조로早老하는 동양인에게 있어서는 청년과 고완이란 오히려 경계할 필요부터 있을런지 모른다. 조선의 고완품이란 서화書畵 이외의 것으로는 대체가 도자기, 그 중에서도 이조기李朝器들이다. 약간의 문방구 이외네는 부녀자의 화장품구具가 아니면 부엌 세간이다. 찻종이나 술병 역시 부엌 세간이다. 그런데 어느 호고인好古人치고 자기방에 문방구뿐만은 아니다. 나물이나 전어를 담던 접시가 곧잘 벽에 걸리었고, 조청이나 밀가루가 담기었던 항아리가 명서名書, 명화名畵 앞에 어엿이 정좌하여 있다. 인주갑, 담배갑, 재털이 같은 것도 분기粉器, 소금합, 시저통匙箸桶 따위가 환생하여 있다. 워낙이야 무엇의 용기였든, 그의 신원身元, 계급을 캘 필요는 없다. 선인들의 생활을 담아본다는 것은, 그거야말로 고전이나 전통이란 것에 대한 가장 정당한 '해석'일런지 모른다. 그러나 부녀자의 세간사리를 이모저모 가려가며 사랑에 진열하는, 그 사랑 양반은 소심세경小心細經에 빠지기 제꺽 쉽다. 천하의 쾌남아들이 보기에 좀스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작주부시상요리酌酒賦詩相料理, 종화이석자은근種花移石自殷勤'의 묘미에 빠져 버리고 남음이 없기가 쉬운 것이다. 그림 하나를 옮겨 걸고, 빈 접시 하나를 바꿔 놓고도 그것으로 며칠을 갇혀 넉넉히 즐길 수 있게 된다. 고요함과 가까움에 몰입되는 것이다. 호고인들의 성격상 극도의 근시적 일면이 생기기 쉬운 것도 이러한 연유다. 빈 접시요, 빈 병이다. 담긴 것은 떡이나 물이 아니라 정적과 허무다. 그것은 이미 그릇이라기보다 한 천지요 우주다. 남 보기에는 한낱 파기편명破器片皿에 불과하나 그 주인에게 있어서는 무궁한 산하요 장엄한 가람伽藍일 수 있다. 고완의 구극 경지로 여기겠지만, 주인 그 자신을 비실용적 인간으로 포로捕虜하는 것도 이 경지인 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젊은 사람이 '현대'를 상실하는 것은 늙은 사람이 고완경古翫境을 영유치 못함만 차라리 같지 못하다. 노유老儒에게 있어 진적珍籍은 오직 소장이라는 것만으로도 명예의 유지가 된다. 그러나 젊은 학도에겐 '삼대목' 같은 꿈의 진서를 입수했다 치자. '소장'만으로는 차라리 불명예일 것이다. 고완의 경지만으로도, 물론 취미 중엔 상석이다. 그러나 '소장'만 일삼아선 오히려 과욕을 범한다. 완상翫賞도 어느 정도의 연구 비판이 없이는 수박 겉핥기라기보다, 그 기물器物의 정체를 못 찾고 늘 삿邪된 매력에만 끌릴 것이요 더욱 스스로 지기志氣를 저상沮喪하는데 이르러서는 여간 큰 해가 아닐 것이다. 고전이라거나, 전통이란 것이 오직 보관되는 것만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주검'이요 '무덤'일 것이다. 우리가 돈과 시간을 들여 자기의 서재를 묘지화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청년층 지식인들이 도자를 수집하는 것은, 고서적을 수집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나타내야 할 것이다. 완상이나 소장욕에 그치지 않고, 미술품으로, 공예품으로 정당한 현대적 해석을 발견해서 고물 그것이 주검의 먼지를 털고 새로운 미와 새로운 생명의 불사조가 되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거기에 정말 고완의 생활화가 있는 줄 안다. (이태준, '고완품과 생활', 『문장』, 19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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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 연적을 산 이야기
골동집 출입을 경원한 내가 근간에는 학교에 다니는 길 옆에 꽤 진실성 있는 상인 하나가 가게를 차리고 있기로, 가다오다 심심하면 들러서 한참씩 한담閑談을 하고 오는 버릇이 생겼다.
하루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이 가게에 들렀더니 주인이 누릇한 두꺼비 한 놈을 내놓으면서 "꽤 재미나게 됐지요."한다.
황갈색으로 검누른 유약을 내려 씌운 두꺼비 연적硯滴인데 연적으로서는 희한한 놈이다.
4, 50년래로 만든 사기沙器로서 흔히 부엌에서 고추장, 간장, 기름 항아리로 쓰는 그릇 중에 이따위 검누른 약을 바른 사기를 보았을 뿐 연적으로서 만든 이 종류의 사기는 초대면이다.
두꺼비로 치고 만든 모양이나 완전한 두꺼비도 아니요, 또 개구리는 물론 아니다.
툭 튀어나온 눈깔과 떡 버티고 앉은 사지四肢며 아무런 굴곡이 없는 몸뚱어리, 그리고 그 입은 바보처럼 '헤-' 하는 표정으로 벌린 데다가 입 속에는 파리도 아니요 벌레도 아닌 무언지 알지 못할 구멍 뚫린 물건을 물렸다.
콧구멍은 금방이라도 벌름벌름할 것처럼 못나게 뚫어졌고 등허리는 꽁무니에 이르기까지 석 줄로 두드러기가 솟은 듯 쭉 내려 얽게 만들었다.
그리고 유약을 갖은 재주를 다 부려 가면서 얼룩얼룩하게 내려 부었는데 그것도 가슴 편에는 다소 희멀끔한 효과를 내게 해서 구서구석이 교巧하다느니보다 못난 놈의 재주를 부릴 대로 부린 것이 한층 더 사랑스럽다.
요즈음 골동가들이 본다면 거저 준대도 안 가져갈 민속품이다. 그러나 나는 값을 물을 것도 없이 덮어높고 사기로 하여 가지고 돌아왔다. 이 날 밤에 우리 내외간에는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쌀 한 되 살 돈이 없는 판에 그놈의 두꺼비가 우리를 먹여 살리느냐는 아내의 바가지다.
이런 종류의 말다툼이 우리 집에는 한두 번이 아닌지라 종래는 내가 또 화를 벌컥 내면서 "두꺼비 산 돈은 이놈의 두꺼비가 갚아 줄 테니 걱정 마라."고 소리를 쳤다. 그러한 연유로 나는 이 잡문을 또 쓰게 된 것이다.
잠꼬대 같은 이 편편의 글 값이 행여 두꺼비 값이 될는지 모르겠으나 내 책상머리에 두꺼비 너를 두고 이 글을 쓸 때 네가 감정을 가진 물건이라면 필시 너도 슬퍼할 것이다.
너는 어째 그리도 못생겼느냐. 눈알은 왜 저렇게 튀어나오고 콧구멍은 왜 그리 넓으며 입은 무얼 하자고 그리도 컸느냐. 웃을 듯 울 듯한 네 표정! 곧 무슨 말이나 할 것 같아서 기다릭 있는 나에게 왜 아무런 말이 없느냐. 가장 호사스럽게 치레를 한다고 네놈은 얼쑹덜쑹하다마는 조금도 화려해 보이지는 않는다. 흡사히 시골 색시가 능라주속綾羅紬屬을 멋없이 감은 것처럼 어색해만 보인다.
앞으로 앉히고 보아도 어리석고, 못나고, 바보 같고..... 모로 앉히고 보아도 그대로 못나고, 어리석고, 멍텅하기만 하구나. 내 방에 전등이 휘황하면 할수록 너는 점점 더 못나게만 보이니 누가 너를 일부러 심사를 부려서까지 이렇게 만들었단 말이냐.
네 입에 문 것은 그게 또 무어냐. 필시 장난꾼 아이 녀석들이 던져준 것을 파리인 줄 속아서 받아 물었으리라.
그러나 뱉어 버릴 줄도 모르고, 준 대로 물린 대로 엉거주춤 앉아서 울 것처럼 웃을 것처럼 도무지 네 심정을 알 길이 없구나.
너를 만들어서 무슨 인연으로 나에게 보내 주었는지 너의 주인이 보고 싶다.
나는 너를 만든 너의 주인이 조선 사람이란 것을 잘 안다.
네 눈고, 네 입과, 네 코와 네 발과, 네 몸과, 이러한 모든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너를 만든 솜씨를 보아 너의 주인은 필시 너와 같이 어리석고, 못나고, 속기 잘 하는 호인好人일 것이리라.
그리고 너의 주인도 너처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성격을 가진 사람일 것이리라.
내가 너를 왜 사랑하는 줄 아느냐.
그 못생긴 눈, 그 못생긴 코 그리고 그 못생긴 입이며 다리며 몸뚱어리들을 보고 무슨 이유로 너를 사랑하는지를 아느냐.
거기에는 오직 하나의 커다란 이유가 있다.
나는 고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고독함은 너 같은 성격이 아니고서는 위로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두꺼비는 밤마다 내 문갑 위에서 혼자 잔다. 나는 가끔 자다 말고 버쩍 불을 켜고 나의 사랑하는 멍텅구리 같은 두꺼비가 그 큰 눈을 희멀건히 뜨고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가를 살핀 뒤에야 다시 눈을 붙이는 것이 일쑤다. (김용준, 『근원수필』,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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