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에, 이, 가물려나, 웬일이야?"
"네, 이거 비 안 와 큰일입니다."
이것은 요즈음에 이르러 만나는 사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주고받는 인사였다. 그러나 하늘은 우리 점룡이라든 그러한 사람 좋은 일 하려는지 좀처럼 비를 내리지 않았다.
한나절 거리에는 그늘이란 없었고, 사람들은 먼지만 풀싹거리는 아스팔트 위를 허덕이며 오고 또 갔다. 간혹 살수차가 불결한 물을 큰길 위에 뿌리고 간다. 그러나 그것은 물론 먼지를 가라앉히는데 약간의 효과가 있을 뿐, 잠깐만 밖에 나와도 전신에 쭈르르 흐르는 사람들의 땀을 어떻게 하여 주는 수는 없었다. (박태원, 『천변풍경』, 1936)
**
덕순이는 아무리 참아 보아도 자기가 길을 물어 좋을 만치 그렇게 여유 있는 얼굴이 보이지 않음을 알자, 소맷자락으로 또 한번 땀을 훑어 본다. 그리고 거북한 표정으로 벙벙히 섰다. 때마침 옆으로 지나는 어린 깍쟁이에게 공손히 손짓을 한다.
“얘! 대학병원을 어디루 가니?”
“이리루 곧장 가세요!”
덕순이는 어린 깍쟁이가 턱으로 가리킨 대로 그 길을 북으로 접어 들며 다시 내걷기 시작한다. 내딛는 한 발짝마다 무거운 지게는 어깨에 배기고 등줄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진땀에 궁둥이는 쓰라릴 만치 물렀다. 속타는 불김을 입으로 불어 가며 허덕지덕 올라오다 엄지손가락으로 코를 힝 풀어 그 옆 전봇대 허리에 쓱 문댈 때에는 그는 어지간히 가슴이 답답하였다. 당장 지게를 벗어던지고 푸른 그늘에 가 나자빠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으련만 그걸 못 하니 짜증이 안 날 수 없다. 골피를 찌푸리어 데퉁스레,
“빌어먹을 거! 왜 이리 무거!”
하고 내뱉으려 하였으나, 그러나 지게 위에서 무색하여질 아내를 생각하고 꾹 참아 버린다. 제 속으로만 끙끙거리다 겨우,
“에이 더웁다!”
하고 자탄이 나올 적에는 더는 갈 수가 없었다.
덕순이는 길가 버들 밑에다 지게를 벗어 놓고는 두 손으로 적삼 등을 흔들어 땀을 들인다. 바람기 한 점 없는 거리는 그대로 타붙었고, 그 위의 모래만 이글이글 달아 간다. 하늘을 쳐다보았으나 좀체로 비맛은 못 볼 듯싶어 바상바상한 입맛을 다시고 섰을 때 별안간 댕댕 소리와 함께 발등에 물을 뿌리고 물차가 지나가니 그는 비로소 산 듯이 정신기가 반짝 난다. 적삼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곰방대를 꺼내 물고 담배 한 대 붙이려 하였으나 훌쭉한 쌈지에는 어제부터 담배 한 알 없었던 것을 다시 깨닫고 역정스레 도로 집어넣는다.
“꽁무니가 배기지 않어?”
덕순이는 이렇게 아내를 돌아본다. (김유정, '땡볕', 1937)
**
대학병원의 뾰죽집의 시계가
아침 아홉 시─ㄴ데
망할 자식─
태양은 가로街路의 상공에 자빠져 빨갛게 성이 났다
최근의 그 자식도 성만 나면 지구를 성가시게 구는 병이 있어서
아주 어쩔 줄 모를 망나니야
오늘도 부府의 낙인烙印을 걸머진 살수차撒水車는 주책없이 오줌을 싸고 간다
이 큰길을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바네'와같이 살수차부撒水車夫의 궁뎅이로 좇으며 쉴새없이 왕복한다.
철로를 놓았으면 하도록
그것은 끝이 없는 길이다. 그의 인생도 매일의 일도
살수차부의 몸동아리는 깨어진 '라디에이터'다
냉정을 잃어버린 그의 피부의 분비물은 돌아오는 길에는 떡 팔러 가는 아내에게 고무신을 빌려준 벌거벗은 그의 발바닥에 향수鄕愁와같이 달라붙는다.
언제든지 '라무네'[일본 사이다]와같이 써늘한 그 길을
번호를 단 검은 꼬리를 내저으며 가는 '씨보레'는 전혀 매음부賣淫婦다
그 내부의 포장물包藏物을 열거列擧하면
우선爲先 안경眼鏡이 있다. 그리고 약간의 원서原書와 구두와 단백질과 석회와 수분 등으로 구성된 벌레들[蠢動物]이 있다.
놀라운 일은 이것들의 합성물인 박사博士라는 존재는 어디서 배워왔는지 시계를 처다보고는 방송시간의 절박을 느꼈다.
필경 그 물질의 내부에는 눈물이 없으리라는데
우리들 관중의 의견은 일치되었다.
오늘도 살수차부는
이 거리 위에 땀과 물의 액체의 씨를 뿌리며 간다. 말 없이
대지 위에 코를 박고
언제 거둘지도 모르는 농사農事를─
하지만 해조害鳥인 태양의 타는 주둥아리는
떨어지기도 전에 그것을 다 집어 먹는다
유월六月을 잡아서는
망할 자식 태양의 두뺨은 뽈룩하기만 하다.
어느때가 되면 그 자식의 병은 달아날까?
(김기림, '살수차', 1931)
**
거리에서는 티끌이 소리친다. `도시계획국장都市計劃局長 각하閣下 무슨 까닭에 당신은 우리들을 콩크리―트와 포석의 네모진 옥사 속에서 질식시키고 푸른 네온싸인으로 표백하려 합니까? 이렇게 호기적好奇的인 세탁洗濯의 실험에는 아주 진저리가 났습니다. 당신은 무슨 까닭에 우리들의 비약과 성장과 연애를 질투하십니까?' 그러나 부府의 살수차撤水車는 때 없이 태양에게 선동되어 아스팔트 위에서 반란하는 티끌의 밑물을 잠재우기 위하여 오늘도 쉬일 새 없이 네거리를 기어다닌다. 사람들은 이윽고 익사한 그들의 혼을 분수지 속에서 건져가지고 분주히 분주히 승강기를 타고 제비와 같이 떨어질 게다. (김기림, '옥상정원' 중에서, 1939)
알고보면 끔찍한 일─
시민에겐 방병防病 주사하며 가로街路에는 오수汚水 난사亂撒
전염병의 창궐기인 여름철이 박두하였는지라 65만 부민의 살림살이를 도맡아보는 경성부에서는 여러가지 방법으로써 전염병에 방진豫防陳을 치고 있다.
그 일례를 들어보면 지난 4월1일부터 5월말까지 2개월에 걸쳐 부민 전체에게 장질부사 예방주사를 시행하고 있으며, 또 최근에는 결핵병의 근절을 위하여 여러가지 예방법을 제정하는 동시에 심지어 가래痰까지 땅에 뱉지 못하도록 법령을 만들어 엄금하기로 되었다.
그러나 부 당국의 행정으로써 그와같은 예방진에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끊일 사이 없이 수십만 부민이 내왕하는 거리에 뿌리는 물이다.
현재 경성부에서는 9대의 살수 자동차와 44대의 손구루마로써 매일 거리에 물을 뿌리고 있다는 바 그 수량水量은 약 4천석[1석=10말=180리터]에 달한다.
그러나 그 물은 수도물도 아니요, 비교적 깨끗하다고 볼 수 있는 한강물도 아니요, 전염병 원천으로 자타가 공인하며 또 부 당국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여 그것이 사실화한 청계천물임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경성부에서는 현재 청계천에다가 30개소의 우물을 파 놓고 그 물을 매일 4천석씩이나 실어다 거리에 뿌리는 현상이니 부민의 위생상 해롭다는 견지에서 법령으로써 엄금하려는 경성부에서 그와같이 비위생적 살수를 함에 대하여 일반 부민의 비난은 점점 높아간다는 것이다.
경성부에서는 이미 경성부를 건강도시로 만들 것을 제일의 모토로 삼고 있다는 것은 누차 선언한 바이나 그것은 일종의 수사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데 전염병 원천인 청계천물을 거리에 뿌림은 곧 전염병원균을 공개적으로 부내에 살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써라 한다.
"사세부득이事勢不得已─ 그런 줄은 알지만 예산관계로"
◇ 적야荻野 위생과장
이에 대하여 직접 책임자인 경성부 적야 위생과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론 청계천물을 거리에 뿌리는 것이 비위생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수도물은 급수량이 적어서 도저히 쓸 수 없습니다. 현재 수원지의 매일 급수능력은 3만6천㎡에 불과한데 매일 급수량이 벌써 3만2천㎡를 넘고 있는 형편이니 어찌 수돗물을 쓸 수 있습니까.
또 한강물 역시 그렇습니다. 청계천 물에 비한다면 다소 깨끗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나 그것은 거리 문제입니다. 규정된 예산으로 훨씬 떨어진 한강물을 실어온다는 것은 도저히 바랄 수 없는 바입니다.
광장리 상수도 공사가 준공된 후에는 급수량도 많아질 것이므로 자연 수돗물을 쓰게 될 것입니다. (동아일보, 1936.5.17.)
'친절한 구보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문 (0) | 2019.05.17 |
---|---|
나는 지금 '죽음'과 더불어 놀고 있다 (0) | 2019.05.17 |
[천변풍경] 군함행진곡 (0) | 2019.05.16 |
골동骨董 (0) | 2019.05.16 |
성북동 포도원 (0) | 2019.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