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이상, 박태원, 김소운
그러한 때 내가 중앙일보사로 놀라갔었던 것은 아무래도 경거망동이랄 밖에 없다. 내가 2층 조사부에서 심산心汕[노수현]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우연히 공장 사람 하나가 들어왔다가 나를 유심히 보고 나가더니, 다음에 다른 직공이 또 들어온다. 그가 나를 곁눈으로 살피고 나간 뒤에 또 다른 사나이가 들어왔다. 그렇게 드나들기를 무려 수십 명이라면 거짓말이 되지만 7~8명은 착실하다. 어인 까닭을 모르고 있을 때, 이번에는 당시 사회부장 여수[박팔양]가 들어왔다.
"아, 오셨습니까?"
그는 내게 인사를 하고 실내를 둘러본 뒤 말하였다.
"이상 씨 오셨다니, 가셨습니까?"
"안 왔는데요, 누가 왔다구 그래요?"
"아, 지금 공장에서 야단인데요, '오감도' 작자가 왔다구..."
그제야 알겠다.
먼저 들어왔던 직공이 경망되게도 나를 이상으로만 여기고 그래 소문은 쉽사리 퍼지어 '미친놈'이 왔으니 가보자고 일이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상이 내 앞에서 자리가 거북하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밖에 없다. (박태원, '제비', 조선일보 1939.2.22.-2.23)
▲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회와 [삽화: 하융河戎이라는 화명의 이상의 그림]과 이상의 연작시 '오감도' 시제7호가 실린 1934년 8월 1일자 조선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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