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李箱 - 환시기幻視記] 뒤얽힌 운명들
참, 내 정신 좀 보아. 벗은 갑자기 소리치고 자기가 이 시각에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음을 말하고, 그리고 이제 구보가 혼자서 외로울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전찻길을 횡단하여 저편 포도 위를 사람 틈에 사라져 버리는 벗의 뒷모양을 바라보며...(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 "종일 집이 계시다 마악 나가셨죠. 여자한테서 전화가 와서요. 여자한테서 전화가 왔에요." 구보는 밤거리를 혼자 걸으며, 고개를 모로 흔들었다. 집에서 부리는 아이에게까지 업신여김을 받아 가며, 하웅은 이 밤에 여자를 또 만나러 갔다……문득, 이틀 전에, 그 극장 가까운 찻집에서 천박한 젊은것들이 하던 이야기를 생각해 내고, '대체 하웅 같은 사나이가 그 총명하고 또 분별 있는 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