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디가 불편하셔요?"
"아니오."
"무슨 걱정이 있는 것 같구려. 에그, 그 학교에서 나오시오그려. 밤낮 소동만 일어나고. 소동이 일어날 때마다 늘 심로를 하시면서 무엇하러 거기 계세요?"
하고 [노파는] 건넌방 그늘진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형식은 한참이나 화를 못 이기는 듯이 함부로 부채질을 하더니,
"그까짓 학교 일 같은 것은 심상하외다. 걱정도 아니합니다."
"그러면 또 무슨 일이 있어요? 무슨 다른 일이?"
형식은 벌떡 누워 다리를 버둥버둥하면서 혼자말 모양으로,
"암만해도 돈이 있어야겠어요."
"호호호, 이제야 아시는가 보구려. 아 이 세상이 돈 세상이랍니다. 나 같은 것도 돈이 있으면 이렇게 고생도 아니하련마는……."
"그만한 고생은 낙이외다."
"에그, 남이란 저렇것다. 나도 벌써 육십이 아니어요. 조곰만 무엇을 하면 이렇게 허리가 아픈데, 허리가 아프도록 고생을 하니 누가 위로하여 주는 이가 있을까…… (병신일망정 아들 자식 하나가 있을까……) 목숨 모질어서 그렇지 나 같은 것이 살면 무엇 하겠어요."
하고 담뱃대를 깨어져라 하고 돌에다 톡톡 떨어 또 한 대를 담아 지금 떨어 놓은 담뱃재에 대고 힘껏 두어 모금 빨더니 와락 화를 내며, 담뱃불까지 말을 아니 듣는구나 하고 담뱃대를 방 안에 내어던지고 짓던 점심이나 지을 양으로 다시 부엌으로 들어간다.
형식은 노파의 하는 말과 하는 모양을 보고 혼자 웃었다. 저마다 제 걱정이 있고 또 제 걱정이
세상에 제일 큰 걱정인 줄로 믿는다 하였다. 그러나 세상 사람은 다 아무라도 그러한 걱정은 있
는 것이라 하였다. 아들이 없어 걱정, 벼슬을 못 해 걱정, 장가를 못 들어 걱정, 혹 시집을 못 가
서 걱정, 여러 가지 걱정이 많으되 현대 사람의 걱정의 대부분은 돈이 없어서 하는 걱정이라 하였다. 돈만 있으면 사람의 몸은커녕 영혼까지라도 사게 된 이 세상에 세상 사람이 돈을 귀히 여김이 그럴듯한 일이라 하였다. 아아, 천 원! 천 원이 어디서 나는가 하고 벌떡 일어나 방에 들어와 앉았다. (이광수, 『무정』,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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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이놈아, 사십 전이 그리 끔찍하냐. 오늘 내가 돈을 막 벌었어. 참 오늘 운수가 좋았느니."
"그래 얼마를 벌었단 말인가."
"삼십 원을 벌었어, 삼십 원을! 이런 젠장맞을 술을 왜 안 부어……."
"괜찮다 괜찮다, 막 먹어도 상관이 없어. 오늘 돈 산더미같이 벌었는데."
"어, 이 사람 취했군, 그만두세."
"이놈아, 그걸 먹고 취할 내냐, 어서 더 먹어."
하고는 치삼의 귀를 잡아 치며 취한 이는 부르짖었다. 그리고 술을 붓는 열다섯 살 됨직한 중대가리에게로 달려들며,
"이놈, 오라질 놈, 왜 술을 붓지 않어."
라고 야단을 쳤다. 중대가리는 희희 웃고 치삼을 보며 문의하는 듯이 눈짓을 하였다. 주정꾼이 이 눈치를 알아보고 화를 버럭 내며,
"에미를 붙을 이 오라질 놈들 같으니, 이놈 내가 돈이 없을 줄 알고."
하자마자 허리춤을 훔칫훔칫하더니 일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중대가리 앞에 펄쩍 집어던졌다. 그 사품에 몇 푼 은전이 잘그랑 하며 떨어진다.
"여보게 돈 떨어졌네, 왜 돈을 막 끼얹나."
이런 말을 하며 일변 돈을 줍는다. 김첨지는 취한 중에도 돈의 거처를 살피는 듯이 눈을 크게 떠서 땅을 내려다보다가 불시에 제 하는 짓이 너무 더럽다는 듯이 고개를 소스라치자 더욱 성을 내며,
"봐라 봐!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돈이 없나, 다리뼉다구를 꺾어 놓을 놈들 같으니."
하고 치삼의 주워 주는 돈을 받아,
"이 원수엣돈! 이 육시를 할 돈!"
하면서 풀매질을 친다. 벽에 맞아 떨어진 돈은 다시 술 끓이는 양푼에 떨어지며 정당한 매를 맞는다는 듯이 쨍 하고 울었다. (현진건, '운수 좋은 날',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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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은 사실 땅문서도 차츰차츰 덕기의 명의로 바꾸어놓아가는 판이요 반은 자기가 쓰다가 남겨서 수원집과 막내딸의 명의로 물려줄 생각이다.
만일에 15년 더 사는 동안에 아들 하나를 더 본다면 물론 그 아들을 위하여 반 물려줄 요량도 하고 있는 터이다.
이때까지 술이 취하면 주정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듣기도 많이 하였지만 오늘은 친기라 하여 술 한잔 안 자신 이 영감이 맑은 정신으로 여러 젊은 애들 앞에서 이런 말을 떠들어놓는 것은 처음이다. 그래야 이 방중은 고사하고 이 집안 속에서 자기 편을 들어줄 사람이라고는 하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상훈은 새삼스러이 고독을 느끼고 모든 사람이 야속하였다.
"애비 에미도 모르고 계집 자식도 모르는 너 같은 놈은 고생을 좀 해 봐야 한다. 내가 돈이 있으니까 네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들여다보는 것이지 내가 아무것도 없어보아라. 돌아다보기는커녕 고려장이라도 족히 지낼 놈은 아니냐. 어서 나가거라. 이 자식, 조상을 꾸어왔다는 자식은 조가가 아니다."
하고 노인은 별안간 벌떡 일어나서 아들을 떼밀어 내쫓으려는 듯이 덤벼든다. 젊은 사람들은 와 달려들어서 가로막는다.
"상훈이, 어서 나가게. 흥분이 되셔서 그러시니까..."
창훈은 상훈을 끌고 마루로 나왔다. (염상섭, 『삼대』,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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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은 한 손으로 머리를 버티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숭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집 잃은 사람, 길 잃은 사람, 모든 희망을 잃은 사람인 것을 스스로 느낀 것이었다. 숭은 어젯밤 가정을 버리고 서울을 떠나던 일을 생각하였다. 그의 아내 정선이가,
“에끼 시골뜨기, 에끼 똥물에 튀길 녀석.”
하고 자기에게 갖은 욕을 퍼붓고, 나중에는 세숫대야를 자기에게 뒤쳐씌우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 직접 이유는 숭이가 이 남작 집 소송 의뢰를 거절하였다는 것이었다.... 만일 이 소송을 이기는 날이면 십만 원 가까운 사례금이 오리라는 것인데, 숭은 김 자작 집 소송에 양심의 가책을 받은 관계로 다시는 이런 추악한 사건에는 관계 아니 한다고 맹세하여 이것을 거절해 버려서, 그 사건은 마침내 어느 일본 사람 변호사와 조선 사람 변호사와 두 사람에게로 넘어가게 된 것이었다. 이것이 정선의 감정을 격분시킨 것이었다.
“그저 그렇지, 평생 남의 집 행랑방으로나 돌아댕겨. 원체 시골 상놈의 자식이 그렇지 그래.”
하고 정선은 남편이 굴러 들어오는 복을 박차 내버리는 것이 그가 시골 상놈의 자식이기 때문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근인에 지나지 못하였다. 숭과 정선과 가정생활을 하는 날이 깊어 갈수록 두 사람의 생각에는 점점 배치되는 점이 많아졌다. 대관절 두 사람의 인생관이 도무지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점점 탄로가 된 것이었다.
“이 세상에 돈이 제일이지.”
하는 것이 정선의 근본사상의 제일조였다. (이광수, 『흙』,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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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담……?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팔로 머리를 괴었다. 그의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이 옥점이가 재산가 집 외동딸임에 이렇게 서두르는 것이 뻔한 일이다. 돈…… 돈! 그 돈 때문에 자기 아버지는 환장이 되어 아들의 일생을 망치려고 덤벼드는 것 같았다.
...
처음부터 옥점에 대하여는 그렇게 생각하였지마는 옥점이야말로 여행중에나 잠시 사귀어 심심풀이나 할 여성에서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여자와 결혼을 하라…… 그는 픽 웃어 버렸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에 대한 이때까지의 신념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자기 아버지 역시 박봉을 받아 가지고 너무 생활에 쪼들려 이젠 돈이라면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덤벼들게 된 것 같았다. (강경애, 『인간문제』,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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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甲申政變에 싹이 트기 시작하여 가지고 일한합방의 급격한 역사 변천을 거쳐 자유주의의 사조는 기미년에 비로소 확실한 걸음을 내어디디었다.
자유주의의 새로운 깃발을 내어걸은 시민市民의 기세는 등등하였다.
양반? 흥! 누구는 발이 하나길래 너희만 양발(반)이라느냐?
법률의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이다.
돈…… 돈이 있으면 무어든지 할 수 있다.
신흥 부르주아지는 민주주의의 간판을 이용하여 노동자 농민의 등을 어루만지고 경제적으로 유력한 봉건귀족과 악수를 하는 동시에 지식 계급을 대량으로 주문하였다.
유자천금이 불여교자 일권서遺子千金 不如敎子 一卷書라는 봉건시대의 진리가 자유주의의 세례를 받아 일단의 더 발전된 얼굴로 민중을 열광시켰다. (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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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그렇게 신임하는 젊은 약방 주인이 권하는 대로, 열심히 복용한 '요힘빈'은, 그야 오직 잠시 동안의 정력을 도와 일으켜는 주는 것이었으나, 그 뒤에 그것이 가져오는 특이한 그 불쾌감과, 피로와, 더욱이 심신의 쇠약이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그냥 그 임시의 최정제 말고, 근본적으로 정기를 왕성하게 하는 약이나, 무슨 술법이 있다면, 돈 천 원쯤 아깝지 않다고, 그는 그렇게까지 생각하렸다. 민 주사는, 그저, 그만한 정도의 부자다.
그러나 그것이, 역시, 용이한 일이 아니라고 새삼스러이 느껴지자, 그는 이내 그것을 단념하고,
'무어, 내겐 그래두 돈이 있으니까……'
그러한 것을 생각하려 들었으나, 사실은, 자기가 가진 돈이라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이 못될 뿐 아니라, 우선, 얼마 안 있어 시작될 부회 의원 선거전에, 그 비용으로, 한 이천 원 융통하지 않으면, 모처럼 별렀던 입후보도 적지 않이 곤란한 일이라고, 문득 그러한 것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청춘'만큼은 불가능사가 아닌 듯싶은 '부귀'가 버썩 탐이 났다.
'무어, 돈이 제일이지 지위가 제일이지.'
민 주사는, 자칫하였더라면 입 밖에까지 내어 중얼거릴 뻔한 것에 스스로 놀라, 거울 속에서 다른 이들의 얼굴을 찾으려니까, 저편 행길로 난 창 앞에가 앉아 있는 이발소 아이놈의 얼굴이 이편을 향하고 있는 것과 시선이 마주쳐, 어째 그 사이 그놈이 자기의 표정으로 자기의 마음속을 화안하게 들여다본 것만 같아, 그는 제풀에 당황하여, 순간에,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박태원, 『천변풍경』,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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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샛붉도록 취한 태주는 그래도 위스키를 몇잔 훅훅 들이마시더니 별안간,
"흥 돈! 돈! 돈이 제일이다. 돈! 너희들 알어듣겠니. 돈만 있으면 밥도 살 수 있고 옷도 살 수 있고 계집도 살 수 있는 거야! 너희들은 항상 내가 이뻐서 이렇게들 늘어앉았니? 흥 이거지 이거야 이게 이쁜 게지?"
말하면서 태주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지르더니 일원짜리 오원짜리 십원자리 함부로 꾸기꾸기 뒤섞인 놈을 한움큼 꺼내 여자들 코앞에 내휘둘렀다. (유진오, '가을',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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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선생님 한 분이 풀이나 뜯어 자세야 되리만치 그렇게 인류의 문화가 빈약헌 줄 아세요? 인류의 문화가 빈약헌게 아니라 선생님 행동이 빈약헌 거에요. 왜 소유 못허세요? 왜 힘을 소유 못허세요?"
"힘을요?"
"돈이 힘인줄 모르세요? 흐하하……."
득주는 고뿌로 딱 소리가 나게 테이블을 때리며 실성한 사람처럼 웃는다.
...
"돈은 힘이 아니라고 뻗대는건, 우선 그때가 아침이면 조반은 먹은 사람의 말이구요, 그때가 저녁이면 우선 저녁밥 먹을 걱정은 없는 사람의 철학이야요. 점심때가 되도록 조반을 못 먹은 사람, 그런 사람에겐요. 네에?"
하고 득주는 갑자기 말끝을 높인다.
"돈은 힘이란, 아니, 인생의 힘은 인생의 행복은 오직 돈이라고, 입술에서 남남거리는 게 아니라요. 아주 창자 밑바닥에서 부르짖어 나오는 거야요."
"호……."
원선생은 바스라지는 것 같은 전신의 소름을 느낀다. (이태준, 『청춘무성』, 1940)
백만 원이 생긴다면
(남) 만약에 백만 원이 생긴다면은
(녀) 금비녀 보석반지 하나 살테야
(남) 그리고 비행기도 한대 사놓지
(녀) 하늘 공중 높이떠
(남) 빙글 빙글 돌아서
(합) 아서라 백만 원의 꿈을 꾸다간
청춘의 이남박을 뒤집어 쓰겠소
(남) 만약에 백만 원이 생긴다면은
(녀) 그랜드 피아노도 한대살테야
(남) 요것의 욕심이란 부랑당이야
(녀) 안 사주면 난 싫어
(남) 울기는 또 왜 울어
(합) 이것 참 야단났군 백만 원 꿈에
부부간 가정대전家庭大戰 폭발이되겠소
(남) 만약에 백 만원이 생긴다면은
(녀) 인조견 치마적삼 해 입을테야
(남) 남은건 막걸리나 죄다삽시다
(녀) 그건사서 무얼해
(남) 두고먹지 무얼해
(합) 아서라 헛소리에 헛꿈꾸다가
보리밥 비지찌개 다 식어버렸네
김정구·장세정 노래, 남초영 작사·양상포(손목인) 작곡, 오케Okeh 레코드 1937.12.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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