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아니, 요새, 웬 비웃이 그리 비싸우?"
주근깨투성이 얼굴에, 눈, 코, 입이, 그의 몸매나 한가지로 모두 조고맣게 생긴 이쁜이 어머니가, 왜목욧잇을 물에 흔들며, 옆에 앉은 빨래꾼들을 둘러보았다.
"아아니, 을말 주셨게요?"
그보다는 한 십 년이나 젊은 듯, 갓 서른이나 그밖에는 더 안 되어 보이는 한약국집 귀돌 어멈이 빨랫돌 위에 놓인 자회색 바지를 기운차게 방망이로 두들기며 되물었다. 왼편목에 연주창 앓은 자국이 있는 그는, 언제고, 고개를 약간 왼편으로 갸우뚱한다.
"글쎄, 요만밖에 안 되는 걸, 십삼 전을 줬구료. 것두 첨엔 어마허게 십오 전을 달라지? 아, 일 전만 더 깎재두 막무가내로군."
지금 생각하여 보아도 어이가 없는 듯이, 달래 흔들던 손을 멈춘 채, 입을 딱 벌리고 옆에 앉은 이의 얼굴을 쳐다보려니까, 그의 건너편으로 서너 사람째 앉은 얼금뱅이 칠성 어멈이
"그, 웬걸 그렇게 비싸게 주구 사셨에요? 어제 우리 안댁에서두 사셨는데, 아마 한 마리에 팔 전 꼴두 채 못 된다나 보든데,,,,,,."
그리고 바른손에 들었던 방망이를 왼손에 갈아들고는 한바탕 세차게 두들기는 것을, 언제 왔는지 그들의 머리 위 천변길에가, 우선, 그 얼굴이 감때사나웁게 생긴 점룡이 어머니가 주춤하니 서서,
"어유우, 딱두 허우. 낱개루 사 먹는 것허구, 한꺼번에 몇 두룸씩 사 먹는 것허구, 그래 겉담? 한 마리 팔 전씩만 헌담야 우리 거튼 사람두, 밤낮, 그 묵어 빠진 배추김치 좀 안 먹구두 사알게?" (박태원, 『천변풍경』,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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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33번지라는 것이 구조가 흡사 유곽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한 번지에 18가구가 죽 ―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서 창호가 똑같고 아궁지 모양이 똑같다. 게다가 각 가구에 사는 사람들 이 송이송이 꽃과 같이 젊다.
해가 들지 않는다. 해가 뜨는 것을 그들이 모른 체하는 까닭이다. 턱살 밑에다 철줄을 매고 얼룩진 이부자리를 널어 말린다는 핑계로 미닫이에 해가 드는 것을 막아 버린다. 침침한 방안에서 낮잠들을 잔다. 그들은 밤에는 잠을 자지 않나? 알 수 없다. 나는 밤이나 낮이나 잠만 자느라고 그런 것은 알 길이 없다. 33번지 18가구의 낮은 참 조용하다.
조용한 것은 낮뿐이다. 어둑어둑하면 그들은 이부자리를 걷어 들인다. 전등불이 켜진 뒤의 18가구는 낮보다 훨씬 하려하다. 저물도록 미닫이 여닫는 소리가 잦다. 바빠진다. 여러 가지 내음새가 나기 시작한다. 비웃 굽는 내, 탕고도오랑 내, 뜨물 내, 비눗내...... (이상, '날개',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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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이 양羊이나 다름없이 부드럽게 생긴 소녀가 제 손가락을 넓적한 식도로다 데꺽 찍어내었거니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 다만 그의 가련한 무지와 가증可憎한 전통이 이 새악시로 하여금 어머니를 잃고 또 저는 종생의 불구자가 되게 한 이중의 비극을 낳게 한 것이다.
극구 칭찬하는 어머니와 누이에게 억제하지 못할 슬픔은 슬쩍 감추고 일부러 코웃음을 치고─ 여자란 대개가 도무지 잔인하게 생겨먹었읍네다. 밤낮으로 고기도 썰고 두부도 썰고 생선대가리도 족이고 나물도 뜯고 버들가지를 꺾어서는 피리도 만들고 피륙도 찢고 버선감도 싹똑싹똑 썰어내고 허구한 날 하는 일이 일일이 잔인하기 짝이 없는 것뿐이니 아마 제 손가락 하나쯤 비웃 한 마리 토막치는 셈만 치면 찍히지─하고 흘려 버린 것은 물론 기변奇辨이요, 속으로는 역시 그 갸륵한 지성至誠과 범犯키 어려운 일편 단심에 아파하지 않을 수 없었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하여 머리 수그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불행히 시대에서 비켜 선 지고至高한 효녀 그 새악시 그래 돈 삼원에다 어느 신문 사회면 저 아래에 칼표딱지만한 우메구사[埋め草]를 장만해 준밖에 무엇이 소저小姐의 적막해진 무명지 억울한 사정을 가로맡아 줍디까. 당신을 공경하면서 오히려 단지를 미워하는 심사 저 뒤에는 아주 근본적으로 미워해야 할 무엇이 가로놓여 있는 것을 소저 그대는 꿈에도 모르리라. (이상, '단지한 처녀',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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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림 부부에게 붙들려 간단한 저녁 대접을 받고 그집을 나왔을 때에는 벌써 땅거미 때를 지나 어둑어둑 어두워질 무렵이었다. 기호는 허탈한 사람같이 아무 생각도 없었다. 벌써 바람은 꽤 찼으나 저녁을 먹은 바로 뒤라 동네 애들이 뿌듯하도록 나와 이리저리 뛰놀고 있었다. 소학교 운동장을 떠다논 것모양으로 야단법석이다. 그중에서 별안간,
"왓쇼 왓쇼(영차 영차) !"
하는 여러 아이가 소리를 모아 지르는 함성이 유난스레 요란하게 들려왔다. 기호는 자다 깬 사람 모양으로 걸음을 멈칫하고 소리나는 편을 바라보았다. 여러 아이들이 떼를 지어 떠들며 좁은 골목을 이편으로 뛰어오는 것이 보인다.
"왓쇼! 왓쇼!"
소리는 점점 가까와지며 내내 기호의 눈앞에 아이들 무리가 나타났다. 오미고시 장난을 하는 것이었다. 맨 앞에 좀 큰 아이가 서고 새끼줄을 두 갈래로 늘여서 그 새끼줄에 좀생이들이 청어 두름 모양으로 주렁주렁 매달려서 왓쇼! 왓쇼! 소리를 치며 뛰는 것이었다. 새까맣게 더러운 남루한 옷을 걸친 것으로 보아 소학교에도 다니지 못하는 이 근처 행랑이랑 남의 집 곁방이랑에 사는 사람들의 애들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애들은 의기가 등등해 지나가는 어른들에게도 막 부딪쳤다. 기호는 아이들을 피하느라고 잠깐 길옆으로 비켜섰었으나 웬 아이인지 한가 달려들어 구두를 질컷 밟고 뛰어 지나갔다. (유진오, '가을', 1939)

제법 봄날이다. 저녁 후의 산보격으로 천천히 날아 나서니 어두워가는 서울 장안의 길거리 길거리에는 사람놈들의 왕래가 자못 복잡스럽다. 속이기 잘해야 잘 살고 거짓말 잘 해야 출세를 하는 놈들의 세상에서 어디서 얼마나 마음에 없는 거짓말을 잘 발라 마쳣던지 돈푼 감추어 둔 덕에 저녁밥 한 그릇 일직이 먹고 나선 놈들은 "내가 거짓말 선수다. " 하고 점잔을 뽐내면서 걸어가는 곳이 물어볼 것 없이 감추어 둔 계집의 집이 아니면 술집일 것이요. 허술한 허리를 부지런히 꼬부리고 북촌으로 북촌으로 곱이 끼어 올러가는 놈들은 어쩌다가 거짓말 솜씨를 남만큼 못 배워서 착하게 낳아놓은 부모만 원망하면서 벤또 끼고 밥 얻으러 다니는 패들이니, 묻지 않아도 저녁밥 먹으려고 집으로 기어드는 것이다.
그 중에도 그 오고가는 복잡한 틈에 간간히 이름 높은 유명한 선수들이 지나갈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넋을 잃고 부럽게 바라보고 우러러 보고 하는 것은 그가 '치마'라 하는 굉장한 옷을 입고 마음에 없는 웃음을 잘 웃는 재주 덕으로 누구보다도 훌륭한 팔자를 누리게 된, 사람놈들의 세상치고는 가장 유명한 선수인 까닭이다.
그렇게 유명한 선수가 팔다가 남은 고기를 털 외투에 싸가지고 송곳 같은 구두를 신고 갸우뚱 갸우뚱 지나가시는 그 옆에서는 이틀을 팔고도 못다 팔고 남은 썩은 비웃(청어)을 어떻게든지 아무에게나 속여 넘기려고 "비웃이 싸구료, 비웃이 싸요. 갓 잡은 비웃이 싸구료." 하고 눈이 벌개가지고 외치고 있다. 냄새는 날 망정 바로 펄펄 뛰는 비웃이라고 악을 쓰고 떠드는 꼴이야 제법 장래 유망한 성공가가 될 자격이 있다 할 것이다. 대체 사람놈들의 세상처럼 거꾸로만 된 놈의 세상이 또 어디 있으랴. 바른 말만 해 보겠다는 내가 도리어 어리석은 짓이지……. (방정환, '은파리',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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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한섬에 6원이다. 굉장하게 헐타. 쌀 한말에 60전이다. 굉장하게 헐타. 인조견 한자에 10전씩 한다. 굉장하게 헐타. 소고기 한 근에 35전 광당목 한자에 10전, 비웃 한 두름에 35전, 금시계金時計 한 개에 6원, 누에고치 한 말에 1원 80전... 굉장하게 헐타. 모든 것이 다 헐타. 몇가지 값이 내리지 아니한 것을 빼놓고는 다 내렸다. 다 헐타. 이렇게 이것저것 무엇할 것 없이 헐하건만 그래도 그 헐한 것을 마음대로 사지를 못하게 사람들이 가난하니 도대체 세상은 얄굿다. ('살인적 물가폭락의 원인은 무엇인가? 만인필독의 당면한 경제상식 제일과第一課!!', 『별건곤』, 19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