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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풍경] 바그다드의 추장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19. 5. 17. 16:07

물을 다 긷고 난 신전집 주인의 처남이, 다시 아이를 들쳐업고 문간에 나왔을 때, 천변으로 창이 난 작은아들의 방에서 풍금 소리가 들려 왔다. '바그다드의 추장'.

물론, 소년은, 그 곡명을 알지는 못하였으나, 신전집 작은아들이 즐겨서 타는 이 행진곡은, 그냥 귀로 듣기만 하여도 악한의 뒤를 추격하는 '청년'의 모양이 눈에 선하여, 절로 신이 나는 것이다. 그러나 풍금을 타는 사람의 마음이 그래서, 듣는 이도 전만큼은 흥이 나지 않는 것일까?─ 이 봄에 대학을 마치면 의사로 나서게 되는 그는, 보통학교 적부터 음악에 취미를 가져, 하모니카와 대정금[琴, 일본 현악기]으로 시작된 노래 공부가, 이어서 풍금, 만돌린, 색소폰, 바이올린……. 그에게는 온갖 악기가 있었고, 그것들을 그는 어느 정도까지 희롱할 줄 알아,
"으떻든 재주 한 가지는 지일이야."
하고, 점룡이 어머니도 칭찬이 대단하였으나, 이제는 그것들을 다시 만져 보려도 쉽지 않아 가운이 기울어지는 것과 함께 악기 나부랭이도 혹은 전당포 곳간으로, 고물상 점두로 나가 버리고, 이제는 하나 남은 풍금이 낡아서 몇 푼 돈이 안 되는 채, 때때로 젊은이의 심사를 위로하여 줄뿐인 것이다. (박태원, 『천변풍경』, 1936)

 

▲ F.A. Boieldieu, 'Ouverture de L'Opera Le Calife de Bagdad' (하모니카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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