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옵쇼."
포노 라디오 '나나오라' 앞에서 레코드를 고르고 있던 아이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끄떡하였다.
"하웅 씨 계시냐?"
들어온 사람은 소설가 구보다.
"방에 계세요."
"뭣 하시니?"
"그냥 드러눠 계신가 봐요. 나오시랄까요?"
"그럴 것 없다."
오후 두시 십분 찻집 안에는 다른 객이 없었다. 구보는 축음기 놓인 데 가까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 차 하나 다우."
레코드가 돌기 시작하였다. '강남향' 독창의 '해당화.'
"더운 거요?"
"찬 걸 다우. 그리구 유성기는 그만둬라."
"우이쓰, 티 있죠……."
여자의 목청이 애처롭게 끊어졌다.
구보는 맞은편 벽에 걸린 하웅의 자화상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십호인물형十號人物型. 거의 남용濫用된 황색 계통의 색채. 팔 년 전의 하웅은 분명히 '회의' '우울' 그 자체인 듯싶었다. 지금 그리더라도 하웅은 역시 전 화면을 누렇게 음울하게 칠해 놀 게다.
음향을 잊고 있었던 구보의 귀를 갑자기 전화 종소 10 리가 놀래었다.
"네, 마로니엡니다. 네? 누구요? 누굴 찾으세요, 네? 누구요?"
"얘, 내게 오지 않었니?"
안에서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끊지 말어라"
"잠깐 기다리세요. 여보세요……."
하웅이 채 밖에 나올 수 있기 전에, 그러나, 아이는 수화기를 제자리에 걸고,
"저쪽에서 끊어 버렸에요. 선생님한테 온 전화는 아니에요. 네."
"여보.하웅, 이리 좀 나오."
"아, 언제 왔소."
분명히 일주일 이상 면모를 게을리한 얼굴이 부엌과 사이의 위킷[쪽문]으로 구보를 내다보고 다음에 찻집 주인은 벗의 맞은편에 와 앉았다.
[...]
구보가 딱하게 어이없게, 맞은편 벽의 벗의 자화상만 바라보고 있었을 때 종이 또 울었다.
"네, 마로니엡니다. 네? 네. 계십니다."
아이는 하웅에게 향하여,
"선생님, 전화 받으세요."
그리고 열여섯 먹은 소년은 싱끗 웃었다.
"네. 응. 어디루? 지금 거기 계십니까? 응. 하여튼 내, 가지. 네."
전화를 끊고, 구보를 돌아보고 자조에 가까운 웃고,
"하여튼 오늘 만나 보고, 내 태도를 정하겠소."
그리고 하웅은 밖으로 나갔다. (박태원, '애욕,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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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李箱을 보러 매일같이 제비를 찾으면서도, 그러한 까닭으로 하여 그곳에서는 즐겨 가배珈도 홍차紅茶도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공교로웁게 이상이 밖에 나가고 없을 때, 언제 돌아올지 알 수도 없는 벗을 담배만 태고 앉아 기다리는 수는 없었다.
그런 때, 나는 한 푼의 백동화白銅貨를 수영이에게 내어주고 말한다.
"너, 사과 좀 사오너라"
뒷골목 일진옥日進屋에서 수영이는 능히 십전十錢에 다섯 개를 받아온다.
"수고했다. 너도 같이 먹자."
그럼 소년은 처음에 사양한다.
"무얼요. 전 싫습니다. 어서 잡수세요"
그러나 그는 내가 두 번 째 권하였을 때 선선하게 한 개를 집어 든다.
그리고 처음에 그렇게 사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두 개 먹는 동안 그는 나머지 세 개를 모조리 먹어버리는 것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어 수영이가 그처럼 탐욕하였다는 그런 까닭만은 아니었던 듯 싶다. 내가 한 개의 사과를 네 쪽에 내고 그것들을 다시 껍질을 벗기고 속을 도려내고 그러는 동안에 그는 능히 한 개 반을 껍질째로 어기적어기적 씹어 먹을 수 있었든 것이다. 물론 언제든 사과만을 우리가 즐긴 것은 아니다.
"오늘은 줄을 사올까요?"
그래 귤橘도 우리는 때때로 사다 먹었다. 그러나 그것에도 물렸을 때
"얘얘, 어디 군밤 좀 사다 먹자"
그래 한 명의 손님도 찾아주지 않는 다방 안에서 우리는 단 둘이 마주 앉아서 군밤을 먹으며
"저-세루 바지 하나 해입자면 돈이 많이 들겠습죠?"
"많이 들지 왜 하나 사 입고 싶으냐?"
"아-니 그냥 말씀에요."
무어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정경情景이란 지금只今 생각하여 보아도 애닯게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박태원, '제비', 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