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는 동안에도 때는 흘러갔다. 호열자[콜레라]니. 장질부사[장티푸스]니 유행성 감모感冒[감기]니, 이러한 것들로 하여, 큰 야단 법석들을 하는 일도 없이 지나간 서울 거리에 서리가 왔다. 눈이 왔다. 눈과 함께 겨울이 왔다. 그리고 겨울과 함께 나의 생일이 왔던 것이다. (박태원, '수염',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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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농촌 재미가 어떠세요?”
하고 현은 일부러 좌석을 유쾌하게 하려고 하는 듯이,
“난 도무지 시골생활은 몰라. 석왕사 한 이 주일 가본 일이 있나. 제일 불편한 게 전등 없는 게야. 안 그래요?”
하고 말을 시킨다.
“왜 석왕사는 전등이 없소? 있다우.”
하고 정선도 기운을 얻어 말대꾸를 한다.
“모두 불편하지요.”
하고 숭도 유쾌하게,
“도회에는 편리하도록 편리한 것을 다 만들어 놓았지마는, 농촌에는 아무것도 만들어 놓는 이가 없거든요. 도회 설비 십분지 일만 해 놓아 보세요. 도회에 와 살기보다 나을 테니. 푸른 하늘, 맑은 물, 산, 신선한 풀, 새들, 신선한 공기, 순박한 풍속, 이것이야 농촌 아니면 볼 수 있어요?”
하고 열심으로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직업이 의사니깐 천생 도회에서만 살게 생겼지요?”
“왜 농촌에는 의사가 쓸데없나요? 농촌에는 병이 없나요?”
“그야 그렇지요마는 가난한 농민들이 어떻게 의사를 부르겠어요?”
하고 현의사는 제 주장이 약한 것을 생각하고 픽 웃는다.
“자동차 타고 불려 다닐 의사는 농촌에서는 쓸데없지요. 허지마는 제 발로 걸어다닐 의사는 한없이 필요합니다. 내가 처음 살여울을 가니까 살여울 동네에만 이질 환자, 장질부사 환자가 십여 명이나 되겠지요. 그래서 내가 읍내에 가서 의사를 불렀지요. 했더니 자동차비 외에 출장비, 왕진료 하고 사뭇 받아 낸단 말씀이야요. 그리고도 오라는 때 오지도 않거든요. 그래서 내가 검온기 하나 사고 또 약품도 좀 사다가 의사 겸 간호부 노릇을 했지요…….”
“오, 그러시다가 장질부사를 붙들리셨습니다그려? 이를테면 순직이시로군, 하하하하.”
하고 현의사는 말을 가로채어서 웃는다.
“그러니 농민들이 전염이 무엇인지를 압니까, 격리가 무엇인지를 압니까, 소독이 무엇인지를 압니까. 의사들이 무엇 하러 도회에만 몰려요? 왜 서울에는 골목골목에 병원이 있는데도 의사들이 서울에만 있으려 들어요? 왜 만 명에 하나도 의사가 없는 시골에는 안 가려 들어요. 왜 부랑자나 남의 첩이나 이런 사람의 병이면 제 부모 병이나 같이 밤을 새워 가며 시탕을 하면서도, 왜 제 밥과 제 옷을 만들어 주고 제 민족의 주인인 농민들의 앓는 곳에는 안 가려 들어요. 현선생은 왜 불쌍한, 밤낮 쓸데 있는 일에 골몰한 농촌 부녀와 어린애들 병을 좀 안 보아 주시고, 대학병원일세 의전병원일세 세브란스일세 하고 큰 병원이 수두룩한 데 있어서 한가한 사람들의 병만 보고 계셔요? 돈벌어 보실 양으로? 농촌에 가시더라도 양식과 나무 걱정은 없으시리다. 현선생이 만일 우리 살여울에 와서 개업을 하신다면 집 한 채, 양식, 나무, 반찬거리 다 드리고, 그리고도 떡 한 집에서는 떡, 닭 잡은 집에서 닭고기 빠지지 않고 갖다가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농민들에게 어머니와 같은 사랑과 존경을 받으시면서 일생을 보내실 것입니다.”
하는 숭의 눈은 열정으로 빛났다. (이광수, '흙',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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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대체 누구의 허락을 얻어 나를 실험동물로 사용하는 것인가. 옆구리에 종기 하나가 나도 그것을 남에게 내어 보이는 것이 불쾌하겠거늘 아픈 탓으로 치부를 내보이지 않으면 안되는 그 자그마한 기회를 타서 밑천 들이지 않고 그들의 실험동물을 얻고자 꾀하는 것일 것이니 치료를 받기 위하여는 반드시 이런 굴욕을 받아야만 된다는 제도라면 사차불피辭此不避일 것이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 변變만은 어디까지든지 불쾌한 일이다.
의사의 진보발달을 위하여 노구찌 박사는 황열병黃熱病[말라리아]에 넘어지기까지도 하였고 또 최근 어떤 학자는 호열자[콜레라]균을 스스로 삼켰다 한다. 이와 같은 예에 비긴다면 치부를 잠시 학생들에게 구경시켰다는 것쯤 심술 부릴 꺼리조차 못될 것이다. 차라리 잠시의 아픔과 부끄러움을 참았다는 것이 진격眞擊한 연구의 한 도움이 된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것이오 기뻐하여야 할 것이다. (이상, '추등잡필', 매일신보, 19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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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몹시 이번 병을 겁내었다. 심훈沈薰이 바로 이 병으로[장티푸스] 그 건장하기 그것의 표본 같던 몸으로도 일순간에 죽어버린 것[1936.9.16.]을 생각하매, 생각뿐 아니라 그의 죽은 몸 옆에서 경야經夜하던 것과 화장하던 광경이 불과 20일 전의 것이라 꿈에도 자꾸 보이는 것은 그 광경이었다. 그런 데다 누울 무렵에 자주 펼쳐보던 책이 『종교적 인간』이란 것인데 권말에 적힌 것을 보니 그의 저자가 바로 또 이 병으로 요절한 청년학구學究였다. 이런 불길한 기억들이 나를 은근히 압박한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눈치챈 듯, 의사는 처음부터 나에게 약보다 먼저 신념을 권하였다. 콜레라 균을 발견한 독일의 의학자 고호와 대립하여 균의 절대 세력을 부정하던 학자라고 이름까지 대면서 그는 배양균을 한 컵이나 마시었으되 죽기는커녕 아무렇지도 않았다 한다.
(...)
그러나 하룻밤은 거의 자정인 때인데 이 병으로는 최악의 병상이 나타나고 말았다. 며칠 뒤에 알았지만 내 자신은 그렇게 다량인 배설물이 전부 피였다는 것은 알지 못하였다. 의사에게 말을 하려 하나 혀가 굳어진다. 손이 시린 듯해서 들어보니 백지 같다. 얼마 안 있어서는 손을 들 수도 없거니와 손가락이나마 좀 움직여보려니까 손가락들도 감각이 없어진다. 아내와 의사는 마루에서 무어라고 수군거린다. 수군거리다 들어와서는 의사는 외투를, 아내는 두루마기를 벗겨들고 또 모두 나가서는 이번에는 대문 소리만 내고 사라진다. 모두 구급약을 사러 가는 것인 줄은 의식했다. 그 다음에 안에서 누가 나를 지키려 나와 앉았었다고 하나 나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이렇게 혼자 죽나보다 하였다.
그 죽나보다 생각이 들자 나는 벌써 의식이 희박해졌다. 그랬기에 현실적인 유언류의 생각은 하나도 못 하였다. 오직 캄캄해져 들어오는 의식을 일 분간이라도 더 밝은 채 끌고 나가려 싸운 듯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안개 속 같은 싸움 속에서 완전히 들리는 의사의 말소리였다.
"신념을 가지십시오. 병은 죄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련이십니다" (이태준, '병후', 『무서록』,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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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생님 곕쇼?”
하고 수건이가 찾아왔다. 반가웠다.
“선생님, 요즘 신문이 거르지 않고 잘 옵쇼?”
하고 그는 배달 감독이나 되어 온 듯이 묻는다.
(...)
그러더니 갑자기 무얼 생각한 듯 손뼉을 탁 치더니,
“그런뎁쇼, 제가 온 건입쇼, 댁에선 우두를 넣지 마시라구 왔습죠.”
한다.
“우두를 왜 넣지 말란 말이오?”
한즉,
“요즘 마마[천연두, 두창]가 다닌다구 모두 우두들을 넣는뎁쇼, 우두를 넣으면 사람이 근력이 없어지는 법인뎁쇼.”
하고 자기 팔을 걷어 올려 우두 자리를 보이면서,
“이걸 봅쇼. 저두 우두를 이렇게 넣었기 때문에 근력이 줄었습죠.”
한다.
“우두를 넣으면 근력이 준다고 누가 그럽디까?”
물으니 그는 싱글거리며,
“아, 내가 생각해 냈습죠.”
한다.
“왜 그렇소?”
하고 캐니,
“뭘...... 저 아래 윤금보라고 있는데 기운이 장산뎁쇼. 아 삼산학교 그 녀석두 우두만 넣었다면 그까짓 것 무서울 것 없는뎁쇼, 그걸 모르겠거든입쇼......”
한다. 나는,
“그렇게 용한 생각을 하고 일러 주러 왔으니 아주 고맙소.”
하였다. 그는 좋아서 벙긋거리며 머리를 긁었다. (이태준, '달밤', 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