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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李箱의 자화상自畵像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19. 6. 1. 12:47

 

▲ 이상李箱, 「자화상」, 1928년경.

 

구보는 맞은편 벽에 걸린 하웅의 자화상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십호인물형十號人物型. 거의 남용濫用된 황색 계통의 색채. 팔 년 전의 하웅은 분명히 '회의' '우울' 그 자체인 듯싶었다. 지금 그리더라도 하웅은 역시 전 화면을 누렇게 음울하게 칠해 놀 게다. (박태원, '애욕', 1934)

 

'제비' 헤멀슥한 벽에는 십 호 인물형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나는 누구에겐가 그것이 그 집 주인의 자화상임을 배우고 다시 한번 치어다 보았다. 황색 계통의 색채는 지나치게 남용되어 전 화면은 오직 누-런 것이 몹시 음울하였다. 나는 그를 '얼치기 화가로군' 하였다. (박태원, '이상의 편모' , 1937)

 

▲ 자신의 작품 '제비'를 위해 그린 박태원의 삽화 

'제비' - 하얗게 발라놓은 안벽에는 실내장식이라고는 도무지 이상의 자화상이 하나 걸려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어느날 황량한 '벌판'으로 변하였다. 제비가 그렇게 변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그림 말이지만 결국은 '제비'도 매한가지다. 온 아무리 세월이 없느니 손님이 안 오느니 하기로 그처럼 한산한 찻집이 또 있을까? (박태원, '제비',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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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李箱,  「자화상」, 1931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

이상 씨의 '자화상'

무엇인지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신경의 활동이 있다. [이상] 씨의 장래를 흥미 있게 기대한다. (윤희순, '제10회 조미전평朝美展評' 1931.6.9.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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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쥘 르나르의 『전원수첩』 [박물지] 일본어판(1934.9. 발행)을 구입한  이상李箱이 낙서한 자화상(?)과 메모, 1934~5년경.

어느날 상허常虛의 경독정사耕讀精舍에서 몇 사람의 벗이 저녁을 먹은 일이 있다. 그 자리에서 시인 이상李箱은 쥘 르나르의 '전원수첩' [Jules Renard, Histoires naturelles(1894)]속에서 읽은 것이라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가을날 방안에 가두어 두었던 카나리아는 난로불 온기를 봄으로 착각하고 그만 날개를 후닥이며 노래하기 시작하였다고─

[겨울이 와서 우리가 난로를 때자 그는 털갈이 시기인 봄이 온 줄 아는지 뭉텅뭉텅 깃털을 빠뜨리며 난리법석을 피운다. (박명욱 옮김, 『자연의 이야기들』, 162-3쪽, 2002, 문학동네)]

 

우리는 르나르의 기지와 시심을 일제히 찬탄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시가 조류의 심리까지를 붙잡은 것은 아니다. 사실은 시인이 그 자신의 봄을 그리는 마음을 카나리아의 뜻없는 동작 속에 투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 이야기를 꺼내 놓은 이상李箱의 마음에도 역시 봄을 그리는 생각이 남아 있어서 그 감정을 그러한 실 없는 듯한 이야기 속에서라도 풀어버리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대체 두 장의 재판소 호출장과 한 장의 내용증명 우편물과 한 장 내지 두 장의 금융조합 대부독촉장을 항상 가지고 댕겨야 하는 이 시인과 온갖 찬란한 형용사에 의하여 형용되는 다채스러운 봄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느냐? 봄은 그러면 영구히 달콤한 것인가? (김기림, '봄은 사기사詐欺師', 『중앙』, 19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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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본웅, 「우인상友人像」, 1935.

자상自像

 

여기는어느나라의데드마스크다.  데드마스크는도적盜賊맞았다는소문도있다.  풀이극북極北에서파과破瓜하지않던이수염은절망絶望을알아차리고생식生殖하지않는다.  천고千古로창천蒼天이허방빠져있는함정陷穽에유언遺言이석비石碑처럼은근히침몰沈沒되어있다.  그러면이곁을생소生疎한손짓발짓의신호信號가지나가면서무사無事히스스로와한다.  젊잖던內容이이래저래구기기시작이다. (이상李箱, 19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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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해롭다고 병원에서 외출금지를 당하고 있으나 갑갑해 견딜 수 없어 [병원에서] 뛰어나왔다고 하면서 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올렸다. 

"술도 좀 마시고 싶은데."

되도록 고급술을 마시는 데 힘을 기울여 온 오장환이었다.

일정 때 그는 일본 도쿄에서 돌아와 관훈동에 남만서방이라는 책가게를 내었다[1938]. 문학과 철학 서적이 전문이었고, 절판, 한정판, 호화판, 진귀본, 구해볼 수 없는 책, 구해보려 애쓰는 책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책방 정면 벽에는 이상李箱의 자화상이 걸려 있었다. [...] 연필로 그린 것인데 머리는 무성한 잡초였고, 수염은 깎지 않고 버려둬 갈대밭 같아 손님들은 자화상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봉구, 『명동백작』, 2004, 일빛. * 『그리운 이름따라 - 명동 20년』, 1966, 유신문화사 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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