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가 다 탄 담배를 길 위에 버렸을 때, 그의 옆에 아이가 와선다. 그는 구보가 놓아둔 채 잊어버리고 나온 단장을 들고 있었다. 고맙다. 구보는 그렇게도 방심한 제 자신을 쓰게 웃으며, 달음질하여 다방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뒷모양을 한참 바라보고 있다가 자기도 그 길을 되걸어 갔다.
다방 옆 골목 안. 그곳에서 젊은 화가는 골동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구보는 그 방면에 대한 지식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하여튼, 그것은 그의 취미에 맞았고 그리고 기회 있으면 그 방면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생각한다. 온갖 지식이 소설가에게는 필요하다. 그러나 벗은 전廛에 있지 않았다.
" 바로 지금 나가셨습니다. "
그리고 기둥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며,
" 한 십 분, 됐을까요. "
점원은 덧붙여 말하였다.
구보는 골목을 전찻길로 향하여 걸어 나오며, 그 십 분이란 시간이 얼마만한 영향을 자기에게 줄 것인가, 생각한다.
한길 위에 사람들은 바쁘게 또 일 있게 오고 갔다. 구보는 포도 위에 서서, 문득 자기도 창작을 위하여 어디, 예(例)하면 서소문정 방면이라도 답사할까 생각한다. '모데르놀지'를 게을리 하기 이미 오래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과 함께 구보는 격렬한 두통을 느끼며, 이제 한 걸음도 더 옮길 수 없을 것 같은 피로를 전신에 깨닫는다. 구보는 얼마 동안을 망연히 그곳 한길 위에 서 있었다. 얼마 있다 구보는 다시 걷기로 한다. 여름 한낮의 뙤약볕이 맨머리 바람의 그에게 현기증을 주었다. 그는 그 속에 더 그렇게 서 있을 수 없다. 신경쇠약.
[...]
그러한 것은 어떻든 보잘것없는, 아니, 그 살풍경하고 또 어수선한 태평통太平通의 거리는 구보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그는 저 불결한 고물상들을 어떻게 이 거리에서 쫓아 낼 것인가를 생각하며, 문득 반자의 무늬가 눈에 시끄럽다고, 양지洋紙로 반자를 발라 버렸던 서해曙海 역시 신경쇠약이었음에 틀림없었다고, 이름 모를 웃음을 입가에 띄어 보았다.
[...]
갑자기 한 젊은이가 구보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구보가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 곳에서 왔다. 구보는 그를 어디서 본듯 싶었다. 자기가 마땅히 알아 보아야만 할 사람인 듯싶었다. 마침내 두 사람의 거리가 한 칸 통으로 단축되었을 때, 문득 구보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그리고 그곳에 옛 동무를 발견한다. 그리운 옛 시절. 그리운 옛 동무. 그들은 보통학교를 나온 채 이제도록 한 번도 못 만났다. 그래도 구보는 그 동무의 이름까지 기억 속에서 찾아 낸다.
그러나 옛 동무는 너무나 영락零落하였다. 모시 두루마기에 흰 고무신, 오직 새로운 맥고자를 쓴 그의 행색은 너무나 초라하다. 구보는 망설거린다. 그대로 모른 체하고 지날까. 옛 동무는 분명히 자기를 알아본 듯싶었다. 그리고 구보가 자기를 알아볼 것을 두려워하는 듯 싶었다. 그러나 마침내 두 사람 서로 지나치는, 그 마지막 순간을 포착하여 구보는 용기를 내었다.
"이거 얼마만이야, 유군劉君."
그러나 벗은 순간에 약간 얼굴조차 붉히며,
"네, 참 오래간만입니다."
"그 동안 서울에, 늘 있었어?"
"네."
구보는 다음에 간신히,
"어째서 그렇게 뵈올 수 없었어요?"
한마디를 하고 그리고 서운한 감정을 맛보며 그래도 또 무슨 말이든 하고 싶다 생각할 때, 그러나 벗은, 그만 실례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리고 구보의 앞을 떠나 저 갈 길을 가버린다.
구보는 잠깐 그곳에 섰다가 다시 고개 숙여 걸으며 울 것 같은 감정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한다.
조그만 한 개의 기쁨을 찾아, 구보는 남대문을 안에서 밖으로 나가보기로 한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하늘의 별따기처럼 얻기 어렵던 금관자 옥관자 홍패 백패가
거리거리 고물상점마다 벌여있구나
허술한 서책 족자 병풍 문방제구도 고물로나 쓰지만은
드높은 홍문 정각은 눈비맞아 썩을 뿐이다
하물며 몇 백년 울이든 뼈다귀야
어인 냄새 나느냐
누가 돌아나보랴 (이병기, '고물', 1927, 『별건곤』, 19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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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이렇게 남대문 안턱에서 왼편으로 곧장 뚫린 이 길이 태평통太平通이고 골목 막다른 집 같이 마주 보이는 회색 거옥巨屋, 저것이 이 마을 군청郡廳인 경성부청京城府廳이라네.,이 길로 가면서 보세. 자아 이 길의 좌우 옆에는 고물상古物商, 넝마전 많은 것이 특색인데 경성에서 고물상 거리라면 황금정黃金町하고 이 태평통하고 두 군데인데 황금정은 헌 가구가 많고 이 쪽은 헌 이부자리, 헌 구두, 헌옷, 헌 요강이 전문이야. 살 것이 있을 때 한 오 원 내라 하거든 1원만 받으라 해가지고 한 시간쯤 승강하다가 한 2원 주고 사야 하느니. ('2일 동안에 서울 구경 골고로 하는 法', 『별건곤』 23호, 1929.9.)
**
최주사는 작년 겨울에 태평통 고물상에서 사 원 오십 전 덜 받고는 못 팔겠다는 것을 승강이를 하다시피 하여 가까스로 사 원에 흥정하였다는 외투 주머니에서 네모반듯하게 찢어서 착착 접어 놓은 신문지 조각을 꺼내서 그것이 두 장도 석 장도 아니요, 확실히 한 장이라는 것을 살펴본 다음에 그것으로 코를 풀었다. (박태원, '낙조', 19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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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게는 온갖 악기가 있었고, 그것들을 그는 어느 정도까지 희롱할 줄 알아,
"으떻든 재주 한 가지는 지일이야."
하고, 점룡이 어머니도 칭찬이 대단하였으나, 이제는 그것들을 다시 만져 보려도 쉽지 않아 가운이 기울어지는 것과 함께 악기 나부랭이도 혹은 전당포 곳간으로, 고물상 점두로 나가 버리고, 이제는 하나 남은 풍금이 낡아서 몇 푼 돈이 안 되는 채, 때때로 젊은이의 심사를 위로하여 줄뿐인 것이다. (박태원, 『천변풍경』, 1936)
**
기대는 언제나 크게 가질 것이 못되어서 성벽이 끊어지는 곳에 총독부, [경기]도청, 무슨 참고관[경찰참고관], 체신국, 신문사, [경성]소방소, 무슨 주식회사, [경성]부청, 양복점, 고물상 등 나란히 하고 [...] (윤동주, '종시',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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