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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초시의 상경上京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19. 6. 1. 10:31

무던이나 더운 밤이었다. 나는 모자를 벗어 얼굴을 부채질하며, 골목을 걸어나갔다. 최군의 아우는 그렇게까지 나를 믿고, 나에게 어려운 일을 맡겼던 것이나, 나는 완전히 나의 소임을 저버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

나는 우울한 감정에 싸여, 홀로 행인 드문 거리를 골라 걸어갔던 것이나, 문득, 내일이라도 마땅히 몇 자 적어 보내지으면 안될 최군의 아우에게의 답장을 생각하고, 대체 나는 어떠한 사연을 가져 그에게 보고하여야만 마땅할 것일까, 잠깐 그것이 마음에 답답하였다.  (박태원, '보고', 『여성』, 1936.9. )


"서울 어디야 ? "

"저어, 관철동이라던가 하는 데 있다는데….”

하고, 경수는 호주머니에서 꾸기꾸기 구긴 엽서 한장을 꺼내서 윤초시 앞에 내어놓으며,

"257번지라나요? 저번에 갑득이가 내려왔을 때, 당부를 했었습죠. 호옥 서울서 제 형을 만나는 일이 있거든, 지금 어디 사나? 무얼 하고 지내나? 소상하게 기별을 좀 해달라구요."

"갑득이라니 ? 구장네 아들? "

"예에. 갑득이가 서울 가서 고등학교 댕기지 않습니까? 그래, 당부를 했더니, 어떻게 용하게 만난 모양입니다그려. "

“…”

윤초시는 남포 심지를 돋우고 엽서를 읽는데 골몰이어서 아무 대답이 없다.

(...)

윤초시가 경성역에 내린 것은 그로부터 사흘째 되는 날 저녁이었다. 차에서 내리는 길로, 그는 사람들에게 휩싸여,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당연히 마중을 나왔어야 할 구장의 아들 갑득이를 찾았으나. 사람들이 모두 구름다리 위로 사라지고, 플랫폼에 몇 명의 역부만이 남을 때까지도, 갑득이의 모양은 그곳에 보이지 않았다.

"허어. 이런 고이한 일이 있노….”

윤초시는 갑자기 당황하였다. 그러나 집에서 떠나올 때, 경수가 분명히 전보를 쳐놓은 터에, 마중을 아니 나올 까닭이 없는 일이어서,

"옳지, 그럼, 예까지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는지 모르겠구먼….”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째 꼭 그럴 법싶어서, 윤초시는 자기도 부리나케 구름다리를 올라, 개찰구로 나가 보았던 것이나, 갑득이는 그곳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허어, 이런 고이한 일이 있노…”

윤초시는 눈곱낀 눈을 연방 꿈벅거리며 또 한번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난지 '고이한 일'일뿐이 아니다. 난생 처음 서울이란 곳을 올라온 그로서, 더구나 갑득이만 만나면 그만이라고 애당초에 하늘같이 믿던 마음이 있어 놓은 터이라, 이것은 참말 딱하기 한없는 사실이었다.

그는 얼마를 멀거니 역 앞 넓은 뜰에가 서 있다가, 언제까지 그러고만 있을 수 없는 것을 깨닫고 그곳에 서 있는 지게꾼을 보고 물었다.

"저어, 서대문을 어디로 가오?"

지게꾼은 조그만 보따리와 낡은 박쥐우산밖에는 짐이라 할 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시골 노인을 한번 훑어보고서, 다음에 턱으로 저편을 가리키며,

"저리루 가보슈."

한마디 하고는 돌아선다.

손가락으로 가리켜주어도 시원치 않을 것을 되는 대로 턱을 한번 치켜보였을 뿐이니, 그것으로는 대체 어디라 향방을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으나, 윤초시는 문득 저편에 보이는 성문이, 그것이 '서대문'인가보다고, 혼자 마음속에 작정을 하여버리고, 그는 손수건으로 허리를 질끈 동인 박쥐우산을 질질 끌며 전찻길을 향하여 나섰다.

그러나 그가 '서대문'으로만 알고 있는 '남대문'을 향하여 전찻길을 횡단하려 하였을 때, 바로 그의 앞을 질러 자동차가 홱 가솔린 냄새를 풍기고 지나며. 운전 수가 창 너머로 그를 향하여,

"빠가 !"

하고, 소리쳤다. 질겁을 하여 뒤로 물러서려니까, 이번에는 그의 등뒤를 간신히 피하여 자전거가 지나며, 손주뻘밖에 안 되는 녀석이 사뭇 또,

"빠가 !"

한다.

한문 한 가지밖에 배운 것이라고 없는 윤초시였으나, 그래도 '빠가 ! '라는 것이 욕설인 것쯤은 알고 있는 터이라,

"아, 이…"

'…놈아. 너는 애비도 없고, 할애비도 없느냐?'

하고, 준절히 꾸짖으려 들려니까, 저편에서 교통 순사가 맹렬하게 손짓을 하며,

"빠가 ! 빠가 ! "

하고 발까지 동동 구른다.

대체 어찌 하여야 좋을지를 모르는 채 어리둥절하여 전찻길 위를 갈팡질팡하였을 때, 등뒤에서,

"영감님. 자아, 얼른 건너가세요. "

하고. 젊은 여자 목소리가 들리며, 고은 손길이 그의 보따리 든 팔을 가볍게 잡는다.

하라는 대로 따라서 함께 전찻길을 건너며, 고개를 돌려보니, 머리를 쌍둥 자른 것은 마음에 좀 못마땅하였으나, 얼굴만은 화안하고 복성스럽게 생긴 여자가 그 마음씨도 생긴 모양 닮아서 고은 듯싶어,

"영감님. 서울에 첨 올라오셨구먼요? "

묻는 목소리도 고마웁게 어여쁘다.

"예에. 아, 마중나온단 사람이 안 나와서…."

"그래 지금 어딜 가시는 길이세요? "

"어딘…, 갑득이 쥔 집으루 가지. "

"그럼. 갑득이 쥔 집은 아시나보군요? "

"아, 알긴 내가 어떻게 알아? 이번 길이 이게 초행이라니까…."

"그런데 무턱대구 어디루 이렇게 가시는 거예요? "

"어디로 가긴…, 그저 통홋순 아니까, 물어가며 찾잔 말이지. 하여튼 서대문 안이라니까…."

"서대문이라면서 이리루 가시면 으떡해요? "

"아. 저게 서대문이라며 ? "

"호, 호, 호… 저건 남대문이랍니다. 어디 서대문이 남아 있나요?"

"그래도 저게 서대문이라던데. "

"누가 잘못 아르켜드렸구먼요. …그래, 서대문이라니 동네 이름은 뭐예요 ?"

"저어? "

하고, 윤초시는 보따리와 박쥐우산을 안전 지대 위에 내려놓고, 두루마기 자락을 보기 좋게 펼치고, 조끼 주머니에서 끈으로 찬찬 감은 헝겊지갑을 꺼내어 그 속에서 꼬기꼬기 접은 종이쪽을 찻아내었다.

"저어, 경성부 서대문정 2정목 34번지, 김소사─라, 그랬구먼."

"김소사요? 아깐 갑득이라시드뇨? "

"글쎄 갑득이 쥔 집이 김소사 집이란 말이지. "

"네에, …저어 서대문정 2정목이요 ?"

"응. 2정목 34번지. "

"그럼 그게 어디쯤이 되나 ? "

여자가 잠깐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을 때,

"숙자야. 지금 나가는 길야? "

하고. 울긋불긋한 양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그의 옆으로 와서 서며, 한마디 하고, 다음에 호기심 가득한 눈을 들어 윤초시를 훑어본다.

(...)

여자는 잠깐 고개를 또 갸웃하다가 마침 저편?아까 '서대문'인 줄만 알았던 '남대문' 편에서 전차가 오는 것을 보더니,

"영감님, 좋은 수가 있습니다. 저어기 오는 차를 타시고요. 서대문에 가서 내려달라고 그러세요. 그래 내리시면 그 앞에 파출소가 있을 꺼니가요. 게 가서 순사한테 번지 수를 대시고 물어보세요영감님, 저어 전찻값이 있으시죠? "

"전찻값은 웬 ? 내려갈 때 노비밖엔 없는데…."

"아, 5전이 없으세요? "

"5전 ? 5전이야 있지만…."

"그럼, 어서 전찰 타세요."

"찻값이 5전이야? 그럼 그리 멀지 않은가본데… 걸어서도 실컷 갈껄…."

"아아니 걸어서 어딜 찾어가시겠다구… 자아, 어서 보따리 들구 이리옵쇼, 영감님, "

앞장을 서서 건너편 안전 지대로 윤초시를 끌고 가서,

"저어 이 영강님을요, 서대문 2정목에서 꼭 좀 내려드리세요. "

차장에게 당부를 하고,

"내리시면 거기 파출소가 있을 께니 34번지 김소사 집을 아르켜달라세요. "

다시 한번 일러주는 말에, 윤초시는 좀더 그 색시에게 물어볼 것이 있는 듯이 느꼈으나 차장은,

"어서 타슈, 어서 타. "

불문곡직하고 그의 팔을 잡아 차 위로 끌어올리고, 아주 문까지 탁 닫아버렸다.

윤초시는 가까스로 서대문청 2정목 34번지, 김소사의 집을 찾았으나 갑득이는 없었다. 주인한테 아침에 전보 오지 않았더냐고 물으니까, 왔다고 한다. 알고보니, 갑득이는 오늘 학교에서 원족으로 어디 문 밖에를 나가, 아마 밤중에나 돌아오리라는 것이었다.

'그러게 그렇지. 아무러기로 갑득이가 전보를 봤으면야 정거장에 안 나올 까닭이 있나? …'

윤초시는 혼자 고개를 끄떡거리고, 갑득이 방에 들어앉아 기다리기로 하였다.

주인 여편네는 '밤중'이라고 하였지만 갑득이는 그리 늦지 않게 여덟점 반에 돌아왔다.

"아이구, 이, 웬일이십니까? 어떻게 이렇게 찾아오셨에요 ? "

갑득이는 분주히 그러한 말을 한 다음에, 윤초시가 아직 저녁을 안먹었다 알자, 마악 주인 여편네가 내어오려는 밥상을 그만두라 하고,

"과히 곤하시지 않으시면 곧 나가시까요? "

하고 벌써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흥수한테 가보게 ? "

"흥수요? 흥수에겐 내일 아침에 가보시죠. 밤중에 찾아가는 것도 무엇하니… 오늘은 진고개 구경이나 하시고, 밖에서 저녁이나 같이 잡수시고."

그래, 두 사람은 김소사 집을 나서 전찻길로 나갔던 것이나, 정작 그 이튿날 아침, 그들이 조반을 치르고 마악 하숙을 나서려는데 난데없이 웬 여자 하나가 갑득이를 찾아왔다.

'웬 젊은 색시가 총각을 이렇게 찾아오노?…'

하고, 윤초시가 해괴하게 생각하려니까,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끼리 잠깐 무엇이라 소곤거리고나서, 어떻게 이야기가 되었는지, 갑득이는 윤초시를 돌아보고,

"자아, 그럼 같이 가시죠. "

하고, 세 사람이 함께 종로로 향하였다.

"그. 웬 색신가? "

윤초시가 가만히 물어보니까, 갑득이는, 그가 자기 친구의 누이라는 것과, 오늘 급한 볼일이 있는데, 역시 자기가 같이 가서 보아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한다.

"하여튼, 흥수 하숙까지 모셔다는 드릴 테니 거기 계시다가 저녁때 제게로 다시 오십쇼그려. 저도 저녁 안으로 돌아가 있을 테니요. "

그리고 그는 종각 뒤 골목을 들어가, 바른편으로 서너째 작은 골목안을 가리키고,

"바로 저 막다른 집입니다. 그럼 이따가 제게로 다시 오십쇼. "

한마디를 남기고는, 윤초시가 채 무어라 대답할 사이도 없이, 그는 젊은 색시와 함께 저편 담배 가게 모퉁이를 돌아 나가버렸다.

"온. 이거 어떡하라고, 날 혼자 버려두고…."

윤초시는 마음에 불안과 불만이 가득하였으나,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에는 달리 어쩌는 수 없고, 또 흥수만 붙들면 나중에 갑득이 사관私館까지야 안 바래다주랴, 스스로 마음을 든든히 먹고, 그는 그 골목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갔다.

그러나 일은 참 맹랑하였다. 그 집 건넌방에 들어있는 사나이의 말을 들어보면, 흥수란 사람은 분명 이집 아랫방에 들어 있었으나, 지금으로부터 꼭 한 달 전에 남대문 밖, '아파트'라나 하는 곳으로 이사를 가고 없다는 것이다.

윤초시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하여지는 듯싶은 것을 깨달으며, 한참을 멀거니 그곳에 서 있었다. 그래도 그는 다시 그 사나이에게 그 '아파트'라나 하는 집이 경성역 앞에 있다는 것을 배워가지고, 혼자 용기를 내어 그 집을 나왔다.

(...)

'무어 남대문 정거장 앞이라니, 게까지만 물어가서, 게서 또 알아보면 못 찾을 리 있겠냐…?'

그래, 혼자 나서기가 불찰이었다. 윤초시는 네거리에 이를 때마다,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묻고 다시 묻고 하여, 어젯저녁에 차에서 내린 성역 앞까지는 용하게 찾아 나갔으나, 그 다음이 이를테면 큰 걱정이었다.

'아파트'라니까, 윤초시는 지레짐작으로, 그것이 무슨 집 이름이거니 하여 누구에게든 그렇게만 물으면 남대문 밖에선 다 알려니하였던 것이, 정작 알아보니, 그것은 어림도 없는 수작이어서,

"아파트라니, 무슨 아파트를 찾으시게요?"

하고. 사람들은 으레 되묻고,

"그냥 아파트라고만 하시면 어딘 줄 압니까?"

그러고는 저 갈 대로들 가버리었다.

어떤 학생은,

"번지는 아시나요?"

하고, 그것만 안다면 바로 자기가 나서서 찾아줄 듯이 하였으나, 윤초시는 '아파트'라면 그만인 줄 알아, 애초에 그러한 것은 배워두지를 안 하였던 것이다.

"허어, 이런 고이한 일이 있노…?"

[...]

"허어, 이런 고이한 일이 있노…?"

윤초시는 또 한번 중얼거렸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러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갑득이하고 함께 그의 사관을 나온 것은 아침 열점 반인가 그밖에 안 되었을 때인데. 어느 틈엔가 석점이 훨씬 넘었다. 초행길에, 더구나 통홋수를 모르고 찾는 터이니 이것은 도무지 될 노릇이 아니다.

'이럴 것이 아니라 다시 갑득이에게로 가서, 갑득이 보고 단단히 말을 한 다음에 오늘 안 되면 내일이라도, 갑득이를 앞세고 다시 나서야만 할 밖에.'

윤초시는 자기 단독 흥수 있는 곳을 찾을 것을 단념하였으나, 그러고 보니 갑득이 사처로 돌아가는 것이 또한 문제였다. 어제 그 색시가 가르쳐주던 대로, 전차를 또 타고 서대문서 내려, 주재소 순사에게 2정목 34번지 김소사 집을 물으면 되리라고─ 그만한 꾀는 윤초시에게도 있었으나. 지금 이 넓은 마당에가 서서 가만히 보려니까 전차가 한 군데로만 다니지 않고, 잠깐 보고만 있어도 정신이 얼떨떨하다.

'내가 어디서 어느 쪽으로 가는 차를 탔었노? …'

윤초시는 콧잔등이에 맺힌 땀방울을 씻지도 않고, 혼자 또 궁리를 하다가,

'뉘게든 또 물어볼밖에… 자입태묘하사 매사를 문하신대, 혹이왈 숙위추인지자를 지례호오, 입태묘하여 매사를 문이온여, 문지하시고 왈 시-예야니라子入太廟, 每事問, 或曰, 孰謂鄹人之子知禮乎,入太廟, 每事問, 子問之曰, 是禮也 그저 아는 것도 물어서 해야지. '

그래 옆에 지나는 한 젊은 여인을 보고, 

"저어, 서대문 2정목을 가려면 어느 차를 탔으면…."

하고 물으려니까, 채 말을 맺기도 전에,

▲ 일제강점기 경성의 아파트

"아, 영감님 갑득이 집을 여태 못 찾으셨어요? "

하고 되묻는 것을 보니. 일이 참말 공교로웁기도 하여, 바로 그것은 어젯저녁 자기를 전차를 태워 보내던 그 갸륵한 색시이었던 것이다.

"아, 이거 …."

하고 윤초시는 하 반가운 통에, 하마터면 색시 손을 덥썩 잡을 뻔하였다.

"아, 영감님, 그래. 웬일이세요? "

"아, 집을 찾으러 나왔다가 이번엔 또 갑득이 집을 잊어버려서…."

"영감님은 매일 집만 찾으러 댕기시는군요. 그래, 오늘 찾으신다는 집은 찾으셨어요 ? "

"웬걸 ? …다 못해 그냥 감득이한테나 도루 가려는데, 이번엔 아침에 나온 그 집을 또 그만 잊어버려서…."

"아아니, 오늘 찾으신단 집은 뉘 집이게요? 통홋순 아시겠죠? "

"글쎄 그걸 모르는구료. 그냥 정거장 앞 아파트라나 뭐라나 하는데 있다고 그러는데, 그걸 도무지 알 수가 있어야지."

"아파트요? 무슨 아파튼지두 모르세요? "

"그것도 모르지. "

"그럼, 성씨는 누군데요 ? "

"저어 흥수라고─고흥수라고─."

"네에 ? 고흥수요? "

뜻밖에도 색시의 눈이 신기하게 똥그래지며,

"영감님, 영감님은 고흥수하고 어떻게 되시나요? "

"응. 흥수로 말하면 어렸을 때부터 내가 글을 가르친 사람이지, 글을 가르친… 헌데, 색씬. 호옥 고홍수를 아우? "

윤초시는 '고흥수'라는 이름을 듣고 그처럼 놀라는 짊은 여인의 모양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허허실실로 그렇게 묻기는 하였으나, 색시가 다시 눈을 신기하게 깜박거리며,

"저어, 그럼, 호옥 윤초시 영감님이 아니신가요? "

하고, 아는 체를 하는 데는 그만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어떻게 나를…."

하고, 윤초시는 한참만에 의아스러이 되물었으나. 색시는 그 말에는 아무 대답을 않고, 앞장을 서서 걸어가며,

"영감님, 그럼 저만 따라오세요. "

한다.

어인 영문을 모르면서도, 하여튼, 인제는 염려 없이 흥수를 찾아보게 되는 듯싶은 것이 마음에 고마워, 부리나케 색시 뒤를 따라가려니까, 

아까 윤초시가 일껏 그곳까지 찾아가서 그 앞을 빙빙 돌면서도 종시 몰랐던 3층집으로 썩 들어간다.

'오오라. 3층집을 가지고 아파트라고들 그러는 거로구먼. 온, 그걸 누가 알았나? …'

윤초시는 색시를 따라 그 안으로 들어가며, 혼자 고개를 끄떡이었다. 그러나 그 색시의 뒤를 좇아 층계를 올라, 2층 구석진 방 앞까지 갔을 때,

"잠깐만 게서 기다리세요. "

하고, 그가 들어간 방문 기둥에 붙어 있는 '고홍수'의 명함을 보고는, 윤초시는 그만 얼떨떨하여 몇 번인가 고개를 기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니, 대체, 이 색시가 누구기에 이렇게 흥수 방에를 인사도 없이 드나드노?…'

아무래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눈만 꿈벅거리고 있으려니까, 얼마 안 있어 다시 방문이 열리며,

"오래 기다리셨죠? 누추한 곳입니다마는 좀 들어오셔요. "

하고, 색시가 말한다.

'오오. 그럼, 이 색시가 바로 홍수의….'

"아아, 선생님께서 이거 웬일이십니까 ?"하고, 윤초시는 그제야 그러한 것에 생각이 돌며, 하여튼 안으로 들어서려니까, 저편 창 앞에 대낮에 자리를 깔고 들어누워 있다가 상반신을 일으키고 앉아,

하고, 반가웁게 인사를 하는 것은, 역시, 틀림없는 흥수였다.

[...]

마침내, 흥수가 윤초시를 따라 서울을 떠나는 날, 경성역에는 숙자 혼자 배웅을 나왔다. 갑득이는 이날도 무슨 긴한 볼일이 있다 해서 어디를 가고 안 나왔다. 윤초시는 기운이 없었다. 흥수를 자기 손에다 돌려주고, 여엉영 그와 헤어지려는 숙자를 눈앞에 두고, 마음에 애달픔이 하나 가득하였다. 자기가 서울에 나타남으로 하여 숙자에게 크나큰 불행을 준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었다. 

'내가 왜 이런 소임을 맡아가지구 서울까지 올라왔누…?’

하고, 새삼스러이 그러한 것까지 뉘우쳐졌다. (박태원, '윤초시의 상경', 『家庭の友』, 19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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