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박태원과 봉준호 (2)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20. 2. 12. 11:00

▲ 무사시노관 (박태원 삽화)

"최군, 참 구경이나 같이 가세그려."

"어디루?"

"무사시노까."

"무슨 사진을 놀리기에?"

"나도 모르지. 그애가 가자니까..."

"그애라니 누구야?"

그러나 조가 채 대답할 수 있기 전에 통통거리고 누가 층계를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십칠팔은 되어 보이는 일본 여자다. 

(...)

차가 무사시노까 앞에 다았다. 그들은 문을 들어서서 잠깐 눈으로 자리를 골라 보았다. 그러자 조가 팔꿈치로 준호의 옆구리를 쳤다.

"저길 좀 보게."

"어디?"

"저기 말이야, 저편 가족석에... 왜 여학생들이 사오 명이나 주욱들 앉었지?"

"그래."

"거기서 두어 줄만 뒤로 물러 보게."

그러나 준호가 채 그곳을 찾아볼 수 있기 전에 장내에 불이 꺼졌다.

어두운 속을 더듬어서 가족석 쪽으로 자리를 잡은 뒤에 준호는 조를 보고 그게 누구였었느냐?- 하고 물었다.

"김군이야 철수야."

하고 조는 연해 그편을 바라보았으나 어두워서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 혼자든가?"

"혼자라면 무어 이상할 게 있겠나만도 누구하구 같이 온 모양이니까 그러지. 옆에 앉은 웬 여자하구 이야기를 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어..."

(...)

▲ 미키마우스 (박태원 삽화)

"김군이 연애를 하는 모양 아닐까?"

조가 다시 생각난 듯이 준호의 귀에다 속살거렸다.

"누구하구?"

"누구하구라니, 물론 그 지금 같이 앉었던 여자하구 말이지."

"하하하,... 그렇게 말하기로 하자면 우리두 데리구 온 마짱집 여자하구 사이에 연애관계가 있어야만 하게?"

그리고 준호는 가벼야히 웃어 버렸으나, 마음속으로는 자기 역시 그럴 법싶었다.

"하여튼 낮에 만났을 때 구두를 말쑥하게 닦어 신구, 몸에서 향내가 왼통 나구 하는 게 어째 수상쩍드라니... 오-라 그러니까 내가 어디 가서 오래간만에 이야기나 좀 하자니까, 누구하구 급한 약속이 있다구 하드니만, 그게 저 계집애하구 만나느라구 그랬든 것이구먼... 그래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를 그따위 대접을 하여야 옳은가? 고연 친구 같으니..."

준호는 그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스크린만 바라보고 있었다. 스크린에는  '만화 토키 영화 「미키마우스의 모험」이 관객들의 미소를 자아내고 있었다. 

(...)

'요점'은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데 있을 것이다. 조가 보았다는, 철수 옆에 앉은 여자가 과연 '미사꼬'냐 아니냐, 하는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몇분 안 있어 이 만화사진 끝나고 장내 불이 켜지면 판명될 사실이라고 준호는 생각하니, 준호는 적지않이 호기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그의 기질이라든지 성격이라든지, 또는 취미로 미루어 보아, 철수가 한개의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분명히 뜻밖에 일이었다. 그것이 뜻밖에 일인만치 준호에게는 어째 유쾌하였다. 그것은 좀처럼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감정이었다. 그것에는 스크린 위에서 가장 흥미있는 연기를 보이고 있는 「미키마우스」의 영향이 기분적으로 가미된 까닭이다.  (박태원, 「반년간」, 1933, * 시간적 배경은 1930년경의 동경)

 

**

If you can dream it, you can do it.  Always remember that this whole thing was started with a dream and a mouse. ( Walt Disney)

 

출처: http://bitly.kr/Tasujbdz

 

 

'친절한 구보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골동점과 고물상 거리  (0) 2019.06.03
야구野球  (0) 2019.06.01
이상李箱의 자화상自畵像  (0) 2019.06.01
윤초시의 상경上京  (0) 2019.06.01
전염병  (0) 2019.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