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흐림曇
[...] 동대문에서 신용산을 향해[동대문→종묘[동구]→탑동 공원→종로네거리→조선은행→남대문→신용산] 아침 첫차를 가지고 떠난 것이 오늘 일의 시작이었다. 전차가 [종묘]동구 앞에서 정거를 하려니까 처음으로 승객 두 명이 탔다. 그들은 모두 양복을 입은 신사들인데 몇 달 동안 차장에 익은 눈으로 봐서, 그들이 어제 저녁 밤새도록 명월관[돈의동]에서 질탕이 놀다가 술이 취해 그대로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자다 나오는 것을 짐작케 하였다. *새벽이라 날이 몹시 선선할 뿐 아니라 서릿기운 섞인 찬바람이 불어서 '추로리'[trolley] 끝을 붙잡을 적마다 고드름을 만지는 것처럼 저리게 찬 기운이 장갑 낀 손에 스며드는 듯하다. 그들은 얼굴에 앙괭이[夜光鬼]를, 그리고 무슨 부끄러운 곳을 지나가는 사람 모양으로 모자로 눈까지 눌러 쓰고 외투로 코까지 싼 후에 두 어깨는 삐죽 올라섰다.
아직 다 밝지는 않고 먼동이 터오므로 서쪽 하늘과 동쪽 하늘 두 사이 한복판을 두고서 광명과 암흑이 은연히 양색해졌다. 그러나 눈 오려는 날처럼 북쪽 하늘에는 회색 구름이 북악산 위를 답답하게 막아놓았다. 운전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넓은 길을 규정 외의 마력을 내서 전차를 달려갔다.
전차는 탑동 공원 앞 정류장에 와 섰다. 먼 곳에서는 홰를 치며 우는 닭의 소리가 새벽 서릿바람을 타고서 들려온다. 그러자 어떠한 여자 하나가 내가 서 있는 바로 차장대 층계 위에 어여쁜 발을 올려놓는 것이 보였다. 아직 탈 사람이 별로히 없으리라고 지레 짐작에 신호를 하였다가 그것을 보고서 다시 정지하라는 신호를 하였다. 한 다리가 승강대 위에 병아리 모양으로 깡충 올라오더니 계란같이 웅크린 여자가 툭 튀어올라와서 내 앞을 지나가는데, 머리는 어디서 어떻게 부시댁이를 쳤는지 아무렇게나 흩어진 것을 아무렇게나 쪽지고, 본래부터 난잡하게 놀려고 차리고 나섰는지는 알 수 없으니 옥양목 저고리에 무슨 치마인지 수수하게 차렸는데 손에는 비단으로 만든 지갑을 들었다. 그리고 그가 내 옆을 지날 때 일본 여자들이 차에 탈 적이나 기생들이 차에 오를 적에 나의 코에 맞히는 분 냄새와 향수 냄새 같은 향긋한 냄새가 찬바람에 섞이더니 나의 코에 스쳤다.
그 여자는 차 안으로 들어가더니 그 안에 앉아 있는 양복 입은 청년들의 눈을 피하려 함인지 또는 내외를 하려는 것처럼 맨 앞으로 가서 앞만 보고 앉아 있었다. 두 젊은 사람은 어제 저녁에 기생 데리고 놀던 흥이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았는지, 그 여자를 보더니 한 사람이 팔꿈치로 옆의 사람을 툭 치면서 눈을 꿈적하였다. 그러니까 그 사람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그 여자만 보고 있었다.
나도 호기심이 일어나서 그 여자 가까이 가서 얼굴이나 똑똑히 보리라 하고 뒤로 돌려메었던 가방을 앞으로 돌려서 전차표와 가위를 양 손에 갈라쥐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두 젊은이에게 표를 찍어주고서 그 여자 앞에 가서 손을 내밀려 하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달려들어 이거이 웬일이요? 할 만큼 놀랐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 꽂힌 금비녀로부터 발에 신은 비단신까지 모조리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어떻든 표를 찍으려 하니까 자기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데 일원짜리인지 오 원짜리인지 두 서너 장 들어 있는 중에서 한 장을 선선히 내 놓더니,
"의주통이요"
하고 저는 나를 잊어버렸는지 태연하게 앉아 있다. 의주통 바꾸어타는 표 한 장을 주고나서 나는 다시 차장대로 나와 섰을 때, 벌써 전차는 청년회관 앞을 지나 종로 정류장까지 왔다. 그 여자는 거기서 내리더니 저쪽으로 가버리었다. 나는 또다시 남대문을 향하여 돌아가는 전차의 '추로리'를 바로잡으려고 창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하늘은 중탁하게 덮혀있던 암흑이 점점 뽀얗게 거두어지며 동족에는 제법 붉은 빛이 돌고, 깜박깜박하는 별들이 체로 치는 것처럼 굵은 놈만 남고 잔놈들은 없어진다.
나는 공연히 신기한 생각이 들어서 못견디었다. 그래서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무슨 수수께끼를 풀려는 사람처럼 고개만 기웃거리고 있었다. 나는 지나간 생각을 다시 끄집어내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
한 달 전 바로 한 달 전에 역시 전차를 몰고서 배우개 정류장[종로4가 네거리 부근]에 정거를 하였다. 오후 한 시 가량이나 되었는데 차 안에 승객이라고는 동대문경찰서[종로4가 네거리 동북편 소재, 현 혜화경찰서] 형사 비슷한 사람 하나와 일본 여자 둘과 조선 시골 사람 같은 이가 있을 뿐인데 맨 나중으로 들어온 여자가 있었다.
손에다가는 약병과 약봉지를 들었고, 입은 것은 때가 지리지리 끼고 자락이 갈갈이 찢어진데다가 얼굴은 며칠이나 세수를 하지 않았는지 새까맣게 길었는데, 발은 벗은 채 짚세기 하나만 신었다. 나이는 열아홉이라면 조금 노성한 편이요, 스물이라면 어디인지 어린 티가 보일 정도다. 속눈썹이 기름한데 정채있게 도는 눈이라든지, 보리퉁한 뺨과 둥그스럼한 턱, 날카롭지도 않고 넙적하지도 않은 웬만한 코라든지, 어디로 보든지 밉지 않은 여자이기는 하지만 주제꼴이 볼썽사나워서 좋은 인상이 없었다. 우리의 항상 하는 에투로,
"표 찍으시오"
하고 손을 내미니까 어리둥절하며 사방을 홰홰 내젓는데, 다시 전차가 달아나자 그는 어쩔줄을 모르고 옆엣사람 얼굴 한 번 쳐다보고 밖을 한 번 내다보고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고 쩔쩔매는 것을 보아하니, 시골서 갓 올라왔거나 당초에 전차 한 번 타보지도 못한 위인인 것을 알았다. 우리는 항상 그러한 사람이 전차에 오르면 성가시럽다. 왜그런고 하니 으레 바꾸어타야 할 곳에서 바꾸어타지를 않고, 내릴 때를 지나놓고 내려서는 귀찮게 굴기는 우리네 차장에게만이 아니라, 세상에 저밖에 약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가끔 전차표 오 전을 떼먹으려고 엉터리없는 바꿔타는 표를 어디서 얻어가지고 와서는 속여먹으려고 하기가 일쑤다. 그래서 그런 사람만 만나면 공연히 화증이 나서 목소리가 부락부락해진다.
"어디까지 가시우? 표 내시우! 표요"
하니까 그는 나를 쳐다보더니,
"녜?"
하고 물끄러미 있다.
"녜가 무엇이요, 표 내라니까"
하니까 그는 손에 들었던 종이조각을 내밀었다. 종이조각을 받아들고 보니까 '명치정 인사소개소'라고 연필로 써 있다.
'이게 무엇이요?"
하고 소리를 꽥 질러 말하니까 그는,
"이리로 가요, 여기가 어디예요? 여기 가서 내려주세요."
하고 도리어 물어보며 간청을 한다.
"몰라요, 돈 내요!"
돈이라는 소리에 무슨 짐작을 하였던지,
"없어요"
하고 자기 손을 들여다본 후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다가 그래도 할 말이 있다는 듯이,
"그런 게 아니라요, 제가 시골서 올라온 지가 한 달이나 되는데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어서 동막 어느 집에서 고용살이를 하다가 몸에 병이 나서 병원에 다녀오는데 이것을 써주며 그리로 가면 된다고 해서 그리로 가요"
모든 일은 다 알았다. 총독부의원 무료 치료실에 갔다가 의사나 병원에 있는 사람이 정상을 가련히 생각하고 인사 상담소를 가르쳐 준 것일 게다. 갓 서울로 올라와서 돈도 없이 차를 탄 것도 사실인데, 어떻든 그 때에 나의 마음에서는 알 수 없는 동정심이 나는 동시에 마음이 약한 나는 그를 다시 전차에서 내쫒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찌하면 좋을까? 그대로 태우자니 규칙위반이요, 그렇다고 내쫒을 수는 없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차장대에 내려섰다가 전차가 황금정黃金町[현 을지로입구역 네거리]에 왔을 때, 나는 다시 그 앞에 가서 바꾸어타는 표 한 장을 찍어주며,
"왜 돈두 없이 전차를 탔소?"
하고 한 번 딱 일러서 법을 가르친 후,
"자─ 이것을 가지고 요다음 정거하거던 내리우. 이것도 특별히 당신을 생각하여 주는 것이요. 나는 이것 한 장 당신 준 것이 탄로나면 벌어먹지도 못하고 벌금 물고 그러는 법이요, 그런 줄이나 알아두시우"
하니까 그는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였다.
*
오늘 아침에 만난 여자가 바로 그 여자다. 한 달 전에 오 전이 없어서 나에게 은혜를 입던 그 여자가 오늘은 말쑥한 모양꾼이다. 내가 언제든지 여자로 타고나는 것, 그것이 무한한 보배라고 생각을 하였더니 반은 그 생각인 들어맞았다. 여자는 마음 한번 쓰는데 당장에 백만장자의 아내가 될 수 있고, 추파를 한번 보내는데 여러 남자의 끔찍한 사랑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한 달이라는 세월이 그리 길다고 하지 못할 것인데, 한 달 전에 총독부 무료 병실에 가서 구차한 말을 하며 병을 봐달라 하고, 또 나와 같은 차장에까지 은혜를 입던 여자가 오늘엔 어디로 보든지 똑 딴 여염집 부인과 같다. 우리 같은 사람은 갖은 박대와 모든 수고를 맛볼 대로 맛보며 근근히 번다 해야 한 달에 단돈 몇 십 원을 벌지 못하며, 우리가 참으로 성공을 해보려면 아까운 젊은 시대를 무참히 간난신고 중에 보내고도 될지 말지 한 일이다.
하루 종일 차장대에 섰기도 하며 또는 승객의 표를 찢어주기도 하는 동안에 나로서는 말할 수 없고, 내가 나이 스물 한 살이 되도록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내 몸 전체에 스며드는 듯하였다. 아직까지 나의 젊은 피는 비린내가 난다. 그 피가 작영을 하지 못하였으며 순화하고 정화하지 못하였다. 나의 피를 그 무엇에다 사르거나 체질하거나 하여 '엑기스'가 되게 하지 못한, 말하자면 아직 진국으로 있는 그것이다. 나는 웬일인지 오늘 그 여자를 본 후로는 나의 가슴 속에 있는 피가 한 귀퉁이에서부터 타오르기를 시작하여 석쇠 우에 염통을 져며놓고 그것을 들여다보는 듯이 지지─ 타는 속에서도 무슨 새 생명이 불 위에 떨어져 그 불을 더 일으키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의주통으로 향하여 가버리었다.[종로네거리에서 서대문 방면 전차로 환승] 그 여자가 의주통으로 갔다고 언제든지 의주통 방면에 풀로 붙인 듯이 있을 것은 아니겠지마는, 내가 전차를 몰아 그곳을 갈 때나 또는 옆으로 지날 때, 그를 생각하고 언제든지 그쪽을 향하여 보았다. -계속- (『개벽』, 19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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