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수로 일하던 시절의 박길룡(왼쪽에서 네번째)과 이상(김해경, 맨우측)
전회前回[1935년 『삼천리』 9월호]에는, 서울시내에 있는 각 빌딩에 대한 건축평을 쓰기 전에 먼저 전언前言으로서, 세계건축사世界建築史의 밟아 나려온 경로 간단하게 적어 본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전문가적 술어術語와 다소간 학구적 이론에 기울어진 듯 하여 일반독자들에게, 대경성大京城의 건축평을 쓰기 위한 전언前言으로서 얼마나 도음이 되었는지 의문입니다. 이번 본론에 들어가 대경성에서 오래전부터 장안長安의 상공에 우뚝우뚝 높이 솟아있는 큰 건물들이며 요사이 새로이 낙성落成되는 큰 건물들에 대하여, 나의 생각에 떠오르는 대로, 붓대 닿는대로 큰 건축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 이에 대한 나의 간단한 소감所感과 평(허許한다면)을 조금씩 적어 볼까 하는 바이외다.
이런 점으로 보아서 얼마전에 신축된 중앙전화국中央電話局, 간이보험국簡易保險局, 이 두건물은 현대건축론으로 보아서 가장 합리적인 구조와 양식으로 된 건물입니다. 사무적인 내부 구조에 중심점을 두었으며 외부 양식, 즉 스타일에는 조금도 편중하지 않은, 가장 현대적인 점으로 보아서 건축상의 일대 혁신이라고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건물은 확실히 그 구조와 형식에 있어서 큰 모순을 가진 건물입니다. 만약 그 철근콘트리트의 전면 현관의 원주圓柱의 쓸데없는 장식을 그만두고 그 비용으로 증축한다면 배 이상의 사무적 능률을 낼 수 있는 합리적인 건축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개 과거의 형식 편중의 대건물들을 보면 의례히 전면 중앙에다 현관을 내게 되는데, 이는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혹 건물의 사무적 필요로 보아서는 玄關을 옆으로라도 얼마든지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형식에 구속되어 그 내부구조에 있어서 장해障害를 입는 예例가 많습니다. 이런 점으로 보아서는 이 건축은 기술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많은 불만을 찾아 내게 됩니다. 지금 들리는 말에 의하면 사무적으로 협착狹窄하여 80만원을 들여 더 증축할 예정이라고 한다니, 만약 건축 최초에 그 앞으로 삐죽이 나온 현관 원주圓柱를 그만두고, 맨 꼭대기의 삐죽한 탑塔같은 장식을 그만 두엇더라면 그 경비로도 넉넉히 현재 2배 이상의 사무적 능률을 낼 수 있는 가장 현대적, 합리적인 건물로 되었을 것입니다. 과거의 봉건시대 이전에는 특별한 건물에는 일종의 위신威信을 나타내기 위하여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까지 장식이란 것이, 즉 형식이 어느 정도까지 필요하였을 것이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벌써 그의 존재의의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런 형식적 장식이란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먼저 경성에 있어서 (조선내에서) 대건축물을 논한다면 제일 먼저 우리는 총독부總督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바이외다. 조선총독부. 이 대건축大建築은 아마 전동양적全東洋的인 큰 건물일 것이외다. 평당 건축비로 말한다면 아마도 동양에서는 멫 차次 안 갈것입니다.
▲ (위부터) 조선은행, 조선저축은행, 식산은행
철근콘크리트제임에도 불구하고 구조에 있어서는 르네상스식의 의 일종으로, 건물 전면 중앙으로 대현관이 있는 데로는 좀 앞으로 나오게 하여서 원형 석주石柱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면서 기둥을 여러개 세웠습니다. 이것은 건축상으로 보아서 하등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쓸데없는 장식으로, 이 건물은 다른 건물과 달라서 일종의 위신威信을 뵈일려는 데에서 나온 건축물의 목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약 10년간이란 세월을 소비하여 대정大正 15년[1926]에 낙성된 이 대건축물은 독일 르네상스식의 건축양식으로 700여만원의 막대한 비용을 들였다고 합니다. 이런 종류의 건축양식에 대하여서는 아직도 일반대중에게는 인식의 불철저로 말미아마 악평을 내릴지는 모르나, 앞으로는 가장 합리적 건축 방식으로 이해될 날이 멀지 않을 것이외다. 건축이란 인간생활에 있어서 한낱 기계機械이지, 이는 미술품도, 위신을 보이려는 그러한 기관은 아닙니다. 더우기 사회가 자꾸 발전하여 나갈수록이 더욱 그러합니다.
조선은행. 이 건물은 르네상스식의 일종으로 완전한 석조石造입니다. 이 건물 역시 위신을 보이려는 외부양식에 중심을 두어 형식 편중의 건축 방식임으로 현대적으로 보아서서 아무런 가치도 찾을 수 없는 건물입니다.
[조선]저축은행. 이 건물은 철근콘크리트제로서 요사이 기공하여 건축중에 있는 건물입니다. 역시 외부양식에 편중하여 일종의 위신을 발휘하려는 야심을 가진 건축방식입니다. 아직도 과거의 유물인 관념에서 금융기관 등의 건물에는 일반대중에게 "우리는 이만한 위신威信을 가졌다. 이만한 곳에는 넉넉히 안심하고 금전융통金錢融通 등을 하여라" 하는 듯이 아마도 위신을 보이려는 데서 나온 역할일 것이외다. 그러나 이는 확실히 현대인에게 하등의 필요를 인식치 못합니다.
식산은행. 역시 조선은행이나 저축은행에 비슷한 구조와 양식을 가진 건물입니다.
▲ (위부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조선일보사. 이 건물은 가장 현대적 건축양식과 구조를 가지려고 한 건물입니다. 이 건축은 독특한 무슨 식이라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는 이 건축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금후今後 새로운 건축론에는 별로 이렇다 할만한 독특한 식式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어떤 식式에 의하여 건축한다고 하면 벌써 그 건축은 그 어떠한 식式,, 즉 양식에 외부형식에 구속을 받게 됨을 의미함으로 절대로 어떠한 건축양식이란 없게 됩니다. 중앙전화국이나, 간이보험국이나, 이 조선일보사나 모두 그러합니다.
하여간 외부 양식의 장식이란 것을 떠나서 내부구조, 다시 말하면 사무적 합리적인 건축방식인 점으로 보아서 이 건물은 퍽이나 현대적인 건축양식에 가까운 건물이외다.
동아일보사. 이 건물도 조선일보사와 그리 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할 유사한 건축양식입니다.
이화여자전문학교. 이 건물은 조선 안에 있어서는 가장 새로이 된 훌륭한 큰 학교건물입니다. 고딕식의 일종으로 다소간 간편한 양식을 취한 점이 보인다. 요사이에 와서는 보성전문학교, 기타 여러 곳에서 가끔 이런 류의 건축양식을 보는데 외부 장식에 다대多大한 비용을 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 건물을 보면 그 외부에 돌(石)을 붙여서 쌓아 올려 갔기 때문에 필요이외의 다대多大한 비용이 들었습니다. 이런 양식은 외관으로 보아서는 확실히 보기 좋습니다. 그러나 건축은 일종의 기계입니다. 하여간 조선 안에 있어서 학교건축으로는 휼륭한 건축입니다. 미국의 학교건축들은 모두 이러한 건축양식으로 짓는 모양입니다. 금후 조선서도 학교건축으로는 이런 방식의 건축이 많을 것입니다.
보성전문학교. 이 건축 역시 이화여전교梨花女專校와 같이 고딕식의 변종으로 학교건축으로는 퍽 간편한 방식으로 지은 점이 나타나나, 이여전교梨女專校와 같이 외관에 편중하였기 때문에 필요치 않은 비용이 더 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점으로 보면 사무적인 내부구조에 중심을 두어 외부양식에 구속됨이 없었다면 그 금액으로 퍽이나 큰 내부확장을 보았을 것입니다.
연희전문학교. 이 학교 역시, 이화여전교나, 보성전문교와 비슷한 건축양식으로 더구나 미국인이 경영하는 학교인 만큼, 미국 학교건축양식 그대로를 흉내낸 건축입니다.
▲ 야소교 빌딩
야소교[耶蘇敎]빌딩. 이 건축은 영국인 계통의 건축으로 종교단체의 건물로는 가장 합리적으로 된 건축입니다. 로마네스크식으로 일종 고딕 식의 변형입니다. 종교건물로는 훌륭한 편입니다.
천주교당. 이 건물은 건축적으로 보아서는 아무런 가치 없는 건축이나 이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일반신자들에게 위엄과 신앙심을 뵈이기 위한 점으로 본다면 일리가 있을 것입니다. 순전한 고딕식으로, 불란서 18세기의 한 유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구라파식 유행의 복사複寫입니다. 내부나 외관의 세부기교는 간편하게 잘 되었습니다. 이러한 건물은 참말로 건축으로 평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는 권위와 같이 사용하는 데에 목적이 잇는 것이 아니고 다만 종교적으로 일종의 위엄한 신앙심을 위하여 만들어진 특별한 건축이기 때문입니다.
종로중앙기독교회관. 이 건물은 조선 안에서 가장 일찍이 된 서양식 대건물로 역시 미국인의 손으로 된 고딕식을 본떠다 지은 오랜 건물로서 아무런 말할 만한 가치가 없는 건축입니다.
▲ 경성기독교청넌회
장곡천정長谷川町의 Y·M·C·A.[경성기독교청년회] 이 건축은 경성 시내에서 미술적 관점으로는 가장 훌륭하고 독특한 미美를 가진 건축양식이라고 합니다. 허나, 언제든지, 건축은 기계입니다. 예술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인류사회가 진보하면 할수록 사무적 효능을 보다 많이 낼 수 있는 내부구조에 중심을 둘것이지, 위신을 보인다든지, 한 미술품으로 볼 수는 없게 됩니다. 문명인인 현대인에게는 그런 과거의 건축양식이 필요없기 때문입니다.
미쓰코시三越(백화점). 이 건물은 수년 전에 된 것으로 르네상스식으로 된 건축입니다. 이 건축 역시 외관의 양식 때문에 다소간 내부구조에 구속을 받은 듯합니다. 하여간 다른 건축에 비하여 내부장치가 완전한 건물입니다.
일본생명 빌딩, 천대전千代田생명빌딩. 이 두 건물도 르네상스식의 모방으로 미쓰코시의 건축양식을 그양 의용依用한데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청韓靑 빌딩. 이 건물은 일정한 무슨 식式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가장 현대적인 건축양식으로 훨신 진보적 건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내부구조나 모든 설비에 빈약한 점이 많이 보입니다. 하여간 빌딩건축으로는 합리적 건축이라고 하겠습니다. [* 박길룡 자신의 설계작품임]
▲ 영보빌딩
영보永保 빌딩. 이 건물도 한청韓靑에 비슷한 건축으로 한청에 비하여 외관이나, 내부설비에 완전한 건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신和信 빌딩. 이 건물도 르네상스식을 모방한 건축이나, 일정한 무슨 식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즉식卽式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새로운 건축양식입니다. 이것 역시 외관에 편중한 건축입니다. [*1935년 1월 화재후, 그 해 9월 재건축된 화신상회 동관을 지칭. 박길룡 자신은 화신상회 서관을 설계하여 1937년말에 완공]
경성역, 경성우편국. 이 두 건물은 르네상스식의 변형으로 모두 외부양식에 중심을 두고 내부구조에 사무적 효과를 다하지 못한 건물들입니다.
조선호텔. 이 건물은 독일 르네상스식에에 다분히 동양미東洋美를 더하여 맨든 훌륭한 건축입니다. 본래 어떠한 식에 다른 새로운 식을 더한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것인데, 이 건축만은 그 조화에 조금도 부자연한 점이 없고 그 스타일에 있어서 퍽 잘 조화에 고심한 데가 역력하다, 하여간 완미完美에 가까운 건축입니다.
경성부민관. 이 건물은 지금 건축중임으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지마는 그 설계도만 보더라도 확실히 내부구조에 중심을 두고 가장 합리적인 현대적 건축양식으로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한편에 삐죽히 높이 솟은 탑塔같은 부분은 일반에게 아무런 위신도 주는 것이 못되고, 그만한 비용을 들인다면 보다 더 큰 건물이 될 터이니, 이 점만은 그리 합리적인 양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찌 되었건, 사회가 진보하면 할수록 건축은 내부구조에 있어서 사무적이고 합리적 구조에 중점을 두게될 것이며, 외부의 허식虛飾등은 하등 대중에게 아무런 효과를 주지 못하게 될 것이니, 금후의 가장 현대적인 건축은 무슨 식이라 무슨 식이라 하는 외부양식에 구속됨이 없이, 각각 그 건물의 사무적 효능으로 보아서 가장 합리적인 데에 중심을 두는 건축이라야 가장 이상적인 진보적인 건축이라는 것을 다시금 말하며 이만 끝을 맺습니다. (삼천리, 1935.10.)
▲ 박길룡이 설계한 화신백화점 신관[서관] (1937년 11월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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