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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 경성 근교 나들이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19. 4. 9. 11:37

장충단으로, 청량리로, 혹은 성북동으로…… 그러나 요사이 구보는 교외를 즐기지 않는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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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미도

제법 가을답게 하늘이 맑고 또 높다. 더구나 오늘은 시월 들어서 첫 공일.

그야 봄철같이 마음이 들뜰 턱은 없어도 그냥 이 하루를 집 속에서 보내기는 참말 아까워 그러길래 삼복더위에도 딴말 없이 집에서 지낸 한약국 집 며느리가, 조반을 치르고 나자,

"참, 어디 좀 갔으면……"

옆에 앉은 남편더러 들으라고 한 말이라,

"어디?"

물어주는 것을 기화로, 그러나 원래 어디라 꼭 작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 그래 되는대로

"인천."

[...]

그래 두 사람은 어디 요 앞에 물건이라도 사러 가는 것처럼 가든하게 차리고 경성역으로 나갔다.

"흥, 모두들 놀러 가시는구나?"

밖을 내다보고 중얼거린 것은 이발소 소년이다. 그러나 그것은 물론 한약국 집 젊은 내외에게만 향하여 한 말이 아니다.

동리의 아이들이, 우선 재봉이가 보기에도, 여러 패나 저희끼리 맞추어 점심들을 싸들고 일찍부터 산으로 들로 나갔다.

개천 건너 평화 카페의 여급들도, 놀기 좋아하는 젊은 것들과 벌써 어저께 그저께부터 서로 맞추어, 오늘은 한강으로 '보트'를 타러 간다든가 그래, 그러한 것에도 참예를 못하고, 그대로 이날 오후 카페 문간에 나와 서 있는 한두 명 젊은 계집의 얼굴이 그렇게 새악하여 그런지 무던히나 멋쩍게 외로워 보였다.  (박태원, 『천변풍경』,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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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은 일요일이었다. 늦은 봄이라기보다는 이른 여름이라고 할 날씨이어서 신문에는 향락의 하루라는 둥 월미도가 어떠니 우이동이 어떠니 하는 상춘의 향락에 관한 기사가 많이 실린 그러한 일요일이었다. 날이 좀 흐렸으나 그 흐린 것이 도리어 꽃 날리는 늦은 봄날다왔다. 한달에 두 번 쉴 수 있는 순옥의 일요일이다. 순옥은 다른 때 같았으면 인원을 병원으로 부르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자기가 인원의 집으로 갈 것언만 오늘은 허 영과 같이 월미도 구경을 가기로 하였다. (이광수, 『사랑』, 1938)

 

 


근교소개: 하루에 왕복할 수 있는 산책지는 어디어디?

 

하늘은 끝없이 맑고 바람은 시원하게 산들거리는 가을입니다. 더구나 요사이는 달조차 밝은 때여서 산이나 들로 산책하기는 둘도 없는 적당한 때입니다. 때마침 오는 16일의 일요일은 그 이튿날이 역시 쉬는 날[추석연휴:주] 되어 있음으로 아마도 누구나 집에 들어앉아 있지 아니하고 어디 단풍구경이나 고기낚시나 밤줍기에 제일 적당한 곳을 선택하여 가을날 하루를 즐겁게 보내려고 혹은 가족과의 의논하고 혹은 친구나 아무리 해가 좋다하더라도 한번 가본 곳에는 두 번까지 갈 맛이 적은 것이며 어디 아직 가 본 일이 없는 곳으로 더 좋은 데가 없을까 하여 여기저기를 손꼽아보며 망설일 것입니다. 그러한 이들에게 참고가 될까하여 서울을 중심으로 하루 동안에 왕복할 수 있는 곳을 아는대로 들어보려 합니다.

 

동대문밖

우선 동대문밖부터 시작하지요. 영도사永導寺(현 개운사開運寺), 청량사淸凉寺는 장안 사람이 너무나도 자주 다녀오는 곳입니다. 따라서 나날이 손된 편으로 흘러만 가니 모처럼 나선 길이면 막대를 좀 더 멀리 던지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자동차를 타신다면 금곡통 사십리길을 드라이브하는 것도 좋겠고,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신다면 좀 멀지만 소요산逍遙山 자재암自在庵 의 단풍도 좋거니와 좀 가까운 데로는 의정부 회룡사回龍寺의 밤줍기 어떨까요. 또 도봉 망월사望月寺도 이리로 갑니다만 포천행 버스로 동소문을 나가도 됩니다.

 

동소문(혜화문)밖
성북동은 너무 가깝고 신흥사新興寺[흥천사] 역시 늘 다니는 곳이니 그만두고 청암사靑巖寺는 수석이 다소 볼만하지만 아무래도 동소문밖을 나선다면 포천행 버스로 화계사華溪寺 밤줍기를 가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창의문(자하문)밖
세검정 지나
 보광사도 좋지만 북한산 밑으로 도보하여 십리 쯤 가는 승가사僧伽寺는 조망이 좋기로 이름이 있습니다. 십만 장안이 한 눈에 들 뿔만 아니라 멀리 인천바다에 드나드는 어선까지도 부르면 대답할 듯이 가까이 보입니다.

 

서대문밖
마포행 전차로 가다가 오른편 아기릉의 송림松林에서 금화산金華山의 낙일落日을 기다리는 것도 좋고 아주 마포까지 다가서 배 한척 얻어타고 강물을 스쳐오는 맑은 바람을 맞아가면서 양화도까지 흘러 저어 거기서 김옥균을 효수하던 자리를 찾아서 한말韓末의 풍운을 눈 앞에 그리다가 피에 물든 단풍 두, 세 가지를 꺾어 들고 오는 것도 가을에 알맞은 일일까 합니다. 이 길을 쉬지 않는다면 고양 구읍(高陽 舊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북한산 가는 길로 이십리쯤 가면 서진관西津寬이 있습니다. 수석 좋고 단풍 좋기로는 근교에서 몇 째 안 갈 것입니다.

 

남대문밖
한강
도 좋기는 하지만 여름내 다니던 곳이라 지금은 쓸쓸한 느낌을 줍니다. 아마도 이 방면에서는 영등포 고기낚시 아니면 안양의 밤줍기가 좋을 것입니다. 더 멀리 간다면 수원이나 인천이겠지요.

 

수구문水口門(광희문) 밖

▲ 뚝섬으로 연결된 성동교를 건너는 경성궤도차

장충단을 넘어서 한강리는 여름같으면 선유船遊[뱃놀이]가 좋지만 지금은 좀 추을 것입니다. 왕십리 가는길은 이 방면에는 봉은사奉恩寺가 제일이겠지요. 지금 정선릉 단풍이 한창일 것입니다. 혹시 꿩의 소리도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이리로 가자면 전날에는 왕십리에서 동독도[동뚝섬]까지 궤도차로 가고 거기서 배로 강을 거슬러 올라갔지만 지금은 바로 동대문에서 서독도[서뚝섬]까지 궤도차로 갈 수 있게 되니 매우 편합니다.

 

(동아일보, 1932.10.15.)

 

 


일요일 행진곡

 

                 김기림

월(月)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
하낫 둘
  하낫 둘
일요일로 나가는 `엇둘' 소리……

자연의 학대에서
너를 놓아라
역사의 여백……
영혼의 위생 데이……
일요일의 들로
바다로……

우리들의
유쾌한
하늘과 하루

일요일
  일요일

 

(김기림, 『태양의 풍속』,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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