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원이가 삼청동 갔을 때에는 안 빈은 세 아이를 데리고 뒷 솔밭 속으로 거닐고 있었다. 순이 엄마에게 그 말을 듣고 인원은 안 빈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어떤 모양으로 노나 하는 것이 알고 싶은 호기심이 나서 아무쪼록 안 빈의 눈에 아니 뜨이도록 주의하면서 뒷 솔밭으로 올라갔다.
벌써 삼월이라 하건마는 아직도 수풀 속에는 군데군데 녹다 남은 눈이 있었다.
안빈은 세 아이를 데리고 늙은 소나무 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안 빈은 양복바지에다 조선 저고리와 마고자를 입고 그리고는 캡을 쓰고 있었다. 안 빈이가 정이를 피하여 달아날 때에는 흰 생목 저고리 고름 끝이 너풀하는 것이 우스웠다.
협이와 윤이는 한번도 안 잡혔으나 안 빈은 가끔 정이에게 붙잡혀서 그 조그마한 손으로 얻어맞고는,
"아뿔사! 내가 정이한테 잡혔네."
하고 웃었다. 정이도 제가 장한 듯이 손뼉을 쳤다. 그리고는,
"또, 또."
하고 아버지에게 뛰기를 재촉하였다. 세 아이의 깨득깨득 웃는 소리와 이따금 안 빈의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침 햇발이 나뭇가지들을 통하여 흘러들어와서 사람들을 어룽어룽하게 만들었다. 아마 뒷산[북악산]에 식전 산보 갔던 패들인지 사오 인이 숙정문께로서 내려오다가 안 빈네 사 부자가 놀고 있는 모양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 때문에 인원도 안 빈의 눈에 띌 걱정 없어 구경할 수가 있었다. (이광수, 『사랑』, 1938)
북문北門 즉, 숙정문肅靖門은 삼청동三淸洞 동북방 산지에 있으니 4대문 중 제일 지벽地僻하고 성북동을 통행하는 이외에는 별로 행인이 없으므로 항상 폐쇄(지금은 문이 파괴되어 자연 개통되었다)하여 두고 건물도 여러 문 중에 아주 보잘것이 없으므로 비록 경성에 있는 사람들도 흔히 그 존재조차 알지를 못하고 대개는 서북문西北門인 창의문彰義門을 북문으로 오인한다. 여염집[閭巷]의 부인들 간에는 상원上元[정월대보름] 전에 이 문에 세 번만 가면 액막이를 한다는 미신이 있으니 이것은 필경 그 지대가 험난한 까닭에 생긴 말인 듯하다. (경성 팔대문과 오대궁문의 유래, 『별건곤』, 1929.9.)
**
숙정문肅靖門
북문北門을 숙정문肅靜門이라고 합니다. 북쪽에 있다 하여 차별대우를 받는지 몰라도, 입이 닫기어 문으로 행세를 뭇하다가 시대가 바뀌어 다른 문이 문의 행세를 못하게 되는 근년부터야 비로소 입이 열리면서 문의 행세를 하게 되었습니다.
갑갑은 하였으나 결백潔白히도 지내서
닫아만 두려면 당초에 짓지를 말것이지 문을 세우고 닫아만 두니 내 속이야 여간 기막혔겠습니까. 그러나 전화위복轉禍爲福은 어찌 새옹지마塞翁之馬 뿐이겠습니까. 내가 닫혀 있을 때 산산한 파란도 겪지 않고 기울어가는 야속한 풍진을 피하여 심산유처에 깊히 숨은 처사處士의 몸과도 같이 결백히 지낼 수 있었겠지요.
국가의 위난구제(危難救濟) 내 몸에 숨은 공로
이렇게 말하면 있는 것이 없는 것만 못하였다고 하실 이도 있겠으며 죽음이 산 것만 못하다고 비방하실 이도 있겠지만 국가의 위난危難을 구하여 내는데는 내 공이 결코 적지 않지요. 재상으로 비기면 충무공 이순신이라고 할까요? 몇 날은 가물기만 하면 굶어죽는 사람이 요새의 장질부사에 비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큰가뭄에는 기우제祈雨祭를 종묘宗廟에서 제관이 지내는데 한 번, 두 번, 열 번까지 지내도 비가 오지 않으면 열 한 번째 지냅니다. 이것이 마지막인데 이 떄에는 남대문을 닫아 걸고 나를 한 번 열어 놓으면 큰 비가 세차게 내리어 만물이 소생하니 어찌 위대하다고 안할 수 있겠습니까.
삼유도액三遊度厄의 옛말 나의 정신과 매력
입이 닫혀 있을 때나 이야기를 못하지 지금도 못하겠습니까. 세상에서는 남소문南小門을 열어놓으면 장안 부녀가 놀아난다고 하였지만 어떤 야사野史에는 북문北門을 열어놓으면 놀아난다고 하여 나를 닫았다고 합니다. 이런 책임은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만 옛날에는 삼유도액三遊度厄이라 하여 보름 전에 내 앞에서 세 번 놀면 액을 면한다는 말이 있어 어여쁜 장안 부녀의 찾아오는 사람이 늦은 봄날 떨어지는 꽃잎 만큼 있었지요. 이만해도 내가 신령한 매력과 신통력이 있다는 증거가 분명하려니와 선조宣祖 이십일년에는 내 밖에 있는 바위 틈에서 이상한 물이 솟았는데 맑으면 술같고 굳어지면 떡과 같아서 국조보감國朝寶鑑이나 궁궐지宮闕志에도 분명히 쓰여 있는 기적같은 정말이랍니다.
나 한 번 찾아보소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삼청동三淸洞 맑은 시내에 발을 씻고 지팡이로 벗을 삼아 나를 찾아보소. 별유천지비인간이란 나를 두고 한 말이겠지요. 태초에 생긴 기암괴석은 늙지도 않고 쭈그리고 초목은 길길이 우거지어 삼엄한 기분이 떠도는데 곳곳에 흩어진 폐허廢墟의 남은 자취는 온통 쓸쓸하여 눈물의 흔적 뿐이니 서울의 설움이 나한테 모인 듯 낙향落鄕한 충신의 비회가 어찌 나만하겠습니까? (동아일보.1928.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