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목욕탕목욕탕은 어떤가? 조선민족은 당대當代 가도 목욕은 아니하고 사는 듯하다. 조선인 경영의 목욕탕은 하나도 없다. [경성] 남북촌南北村을 통틀어 일본인日本人 욕탕浴湯 몇 개소(幾個所)가 있을 뿐이다. ('경성京城 형제에게 탄원합니다', 『개벽』, 1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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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조第一條
이발사와 탕주湯主를 친親하라.
제군이 도회에서 살려면 첫째, 이발사와 목욕탕주인을 먼저 친해 두어야 한다.
돈 6전이 없어 몸에서 악취가 물쿵물쿵 나고 불과 3,40 전 이발료가 없어서 얼굴이 털투성이가 되고 장발이 되고 보면 혹 별종색맹객別種色盲客이 있어 사상가나 철인哲人으로 보아 준다면 천행이지만 날카로운 시대 처녀들의 눈이 잔나비 상판을 연상할 우려가 매우 많으니 연애하기는 벌써 빗나간 일이다. 그러니 돈 없을 때라도 마음 놓고 자가용처름 쓸 이발관, 목욕탕이 있어야 한다.
친親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겠지만 우선 爲先 요결要訣을 들어 보건데 이발관에서는 먼저 주인과 인사를 한 다음에 한 두어달 단골로 연달아 다니되 이발할 때는 잡어다 놓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점잔을 뺄 것이 아니라 온갖 세상 이야기며 영업에 대한 고통이며 이야기를 하면서 주인과 한편이 되어 가지고 거만하고 불공不恭한 손[님]들의 비평도 하고 보면 친하지 않으려 해도 자연히 친해지는 법이다. 요컨대 식자識字나 있고 똑똑해 보히는 사람이 자기 레벨을 낮춰서 비교적 무식하고 천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을 친절히 대할 때 그 친밀은 급속도적急速度的으로 두터워지는 법이다. 이 요점만 잡고 있으면 목욕탕 주인을 친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목욕하려 들어갈 때 한 10분, 나올 때 한 15분 농弄을 섞어 친밀한 듯한 이야기를 하고 나온다. 그러면 돈이 다 뭐냐.
"그 뭐 성가시게 하실 때마다 내십니까. 나중에 한 목에 내시오. 관두세요!"
이리하여 이발, 목욕은 우선 패스다... ('도회생활 5계명', 『별건곤』, 19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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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주인이 본 尹致昊氏 (박수철朴壽喆 )
윤치호씨! 특별히 정해 놓고 우리 탕을 찾아오시는 윤치호씨는 다른 손님들과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언제나 탕에를 탕에를 오시려면 어린 아들 따님을 데리고 오시는데 이런 것쯤은 다른 이도 자녀간에 같이 오시는 분이 많으니까 별로 특별할 것까지야 없겠지요.
그런데 한가지 꼭 다른 이와 다른 점이 있으니 그것은 조끼를 입고 다니시면서 주머니 세간을 길다란 끈에다 꿰매어 가지고 다니시는 것입니다.
주머니 칼, 손수건, 수첩, 시계, 만년필, 열쇠꾸러미, 돈지갑 기타 주머니 세간을 모조리 청어장사의 비웃 엮듯이 죽 꿰어가지고 이것을 또 주머니 속에다 넣고 다니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에를 오시면 먼저 그 주렁주렁 달린 꾸러미부터 내어 맡기시는데 이곳에 오셔서 또 두 가지 더 첨가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안경과 황금반지입니다.
하여간 조밀조밀하신 편으로 좋은 성격이시나 실례의 말씀으로 만약 못된 스리[도둑]란 놈한데 걸리시면 한꺼번에 잃어버리실까봐 그것이 걱정, 대걱정입니다. ('우리가 본 그이들, 각계각사암찰록各界各士暗察錄', 『별건곤』, 19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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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呂運亨씨는 목욕탕에를 드러가면 별안간에 탕 속에서 뽕뽕소리가 나며 물방울이 올라온다. 모르는 사람은 그가 물 속에서 방귀를 뀌어 그러한 줄 알기 쉽겠지만은 사실 알고 보면 그는 감옥에 있을 때에 치질을 몹시 앓아 수술을 하다가 항문에 양혈兩穴이 생긴 까닭에 목욕탕에를 들어가면 마치 연적에 물이 들어가듯이 한편으로는 물이 들어가고 한편으로는 공기가 쏟아져 나오느라고 그렇게 소리가 나오는 것이였다! ('백인백태', 『개벽』, 1935.1.)
혜련은 목욕 제구를 들고 이웃에 있는 목욕탕으로 갔다. 이왕 죽는 몸이면 몸이나 깨끗이 씻고 새 옷이나 갈아입고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집에 욕실을 만들어 놓았지만 여름에만 쓰고 겨울에는 나무 많이 든다고 쓰지 말기로 혜련의 어머니가 법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김 장로가 목욕할 생각이 날 때에만 집에 있는 목욕탕에 물을 끓였다. (이광수, 『애욕의 피안』,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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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그러나, 이루 그러한 것에 별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바로 조금 아까부터 그 밖에 서서, 혹 열려 있는 창으로 그 안도 기웃거려보며, 혹 부엌으로 통한 문의, 한 장 깨어진 유리 대신, 서투른 솜씨로 발라놓은 얇은 반지가 한 귀퉁이 쭉 찢어진 그 사이로, 허리를 굽혀 그 안을 살펴도 보며 하는, 이미 오십 줄에 든 조그맣고 늙은 부인네에게 호기심을 가졌다. 그이는 그 카페의 여급 '하나코'의 어머니다.
'하나콘, 아까, 목욕을 가나 보던데..' (박태원, 『천변풍경』,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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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명주를 처음 본것은 작년 가을이었다. 수은동 근처에서 오후 한시경이라고 시간까지 외고 있는것이다. 그가 집의 일로하야 봉익동엘 다녀 나올때 조그만 손대야를 들고 목욕탕에서 나오는 한 여인이 있었다. 화장 안한 얼굴은 창백하게 바랬고 무슨 병이 있는지 몹시 수척한 몸이었다. 눈에는 수심이 가득히 차서, 그러나 무표정한 낯으로 먼 하늘을 바라본다. 힌 저고리에 흰 치마를 훑여안고는 땅이라도 꺼질까봐 이렇게 찬찬히 걸어 나려오는것이었다. (김유정, '생의 반려',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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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문 밖엘 나가는 줄 아우?"
"도무지 안 나가?"
" 이 집에 온 뒤루는 저 대문 밖에를 나간 일이 없어요."
인원을 눈을 크게 뜬다.
"왜?"
"목욕탕에두 못 가는데."
"목욕탕에두?"
"그럼. 어머니가 못 나가게 하셔요."
"왜?"
"젊은 여편네가 사람들을 많은 데서 뻘거벗구 그게 무어냐구."
"그럼 목욕은 어떻게 해?"
"한 번두 한 일 없지."
"석 달 동안 한 번두?"
"그럼."
"에이 더러워."
"흥흥, 내 몸에 때가 한 근은 앉었을 거야."
"허 선생은? 허 선생두 목욕 안 하나?"
"모르지. 내가 아우?"
[...]
허영의 피의 바세르만 반응은 양성이었다. 그래도 그는 그런 일이 없노라고 순옥을 대하여 뻐대었고 순옥도 더 물으려고도 아니하였다. 허영은 영옥의 손에 구매 요법을 받고 있었다. 영옥을 대하여서도 저는 매독을 옮을 기회는 없었는데 아마도 목욕탕에서 옮은 것이라고 여러번 자탄하였다. 순옥도 캐어물으려고 아니하고 못 들은 체하였다. (이광수, 『사랑』, 1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