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
하루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성익에게 메신저 보이가 왔다. 박대하란 환자를 대신해 쓴다 하고 곧 좀 외과 진찰실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박대하란 영월 영감이다. 성익은 곧 달려갔다. 간호부가 가리키긴 하나 누군지 알아볼 수 없게 얼굴 온통이 붕대 뭉치가 되어 진찰대에 누워 있었다. 멀겋게 부푼 입술이 번질번질한 약을 바르고 콧구멍과 함께 숨을 쉴 정도로 내어 놓아 졌을 뿐, 눈까지 약칠한 가제에 덮여 있는 것이다. 송장이 아닌가 싶었다.
"이분이?"
"네, 박대하 씨라구요. 광산에서 다치셨대요. 입원을 허실 턴데 시내에 보증인이 있어야니까요."
하고 간호부는 환자의 귀 가까이로 가더니,
"불러 달라시던 분 오셨에요."
하였다. 환자의 육중한 입술이 부르르 떨리었다. 성익은 덤썩 환자의 손을 끌어 쥐었다. 뜨거웠다.
"성익이냐?"
[...]
"그런데 아저씨께서 금광을 허시리라군 의욉니다."
"어째?"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막연이겠지…… 힘없이 무슨 일을 허나? 금 같은 힘이 어딨나? 금 캐기야 조선같이 좋은 데가 어딨나? 누구나 발견할 권리가 있어, 누구나 출원하면 캐게 해, 국고 보조까지 있어, 남 다 허는 걸 왜 구경만 허구 앉었어?"
"이제 와 아저씬 금력을 믿으십니까?"
"이제 와서가 아니라 벌써 여러 해 전부터다. 금력은 어디 물력뿐이냐? 정신력도 금력이 필요한 거다."
"그래 광을 허십니까?"
"그럼."
"허면 꼭 금을 캘 걸 믿으십니까?"
"암, 못 캐란 법은 어딨나? 왜 못 될 걸 믿어?"
"그러나 사실에 성공하는 사람이 천에 하나나 만에 하나 아닙니까?"
"억 만에서 하나기루 그 하나이 자기가 되길 계획해 못쓸까? 사람이란 그다지 계획력이 미약한 걸까?"
"글쎄올시다."
[...]
"조선 땅엔 금은 아직 무진장이다. 어느 시대구 어느 나라서구 불변가치를 갖는 게 금밖에 또 있니? 금만한 힘이 있니? "
"……"
"금을 금답게 쓰지 못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들 금을 캐내니? 땅이 울 게다! 땅이……."
하고 영월 영감은 홑이불을 밀어던지고 석수처럼 돌 때에 뿌우연 손을 올려 가슴 위에 깍지를 꼈다. (이태준, '영월 영감', 1939)
2019/03/19 - [친절한 구보씨] - 황금광시대 黃金狂時代
부동산
.... (안초시가) 박희완 영감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관변에 있는 모 유력자를 통해 비밀리에 나온 말인데 황해 연안에 제이의 나진羅津이 생긴다는 말이었다. 지금은 관청에서만 알 뿐이나 축항 용지築港用地는 비밀리에 매수되었으므로 불원하여 당국자로부터 공표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럼, 거기가 황무진가? 전답들인가?"
초시는 눈이 뻘게 물었다.
[...]
"그 모씨라는 이만 알지. 그리게 날더러 단 만 원이라도 자본을 운동하면 자기는 거기서도 어디어디가 요지라는 걸 설계도를 복사해 낸 사람이니까 그 요지만 산단 말이지, 그리구 많이두 바라지 않어, 비용 죄다 제치구 순이익의 이 할만 달라는 거야."
"그럴 테지…… 누가 그런 자국을 일러주구 구경만 하자겠나…… 이 할이라…… 이 할……."
초시는 생각할수록 이것이 훌륭한, 그 무슨 그루터기가 될 것 같았다. 나진의 선례도 있거니와 박희완 영감 말이 만주국이 되는 바람에 중국과의 관계가 미묘해지므로 황해 연안에도 으레 나진과 같은 사명을 갖는 큰 항구가 필요할 것은 우리 상식으로도 추측할 바이라 하였다. 초시의 상식에도 그것을 믿을 수 있었다.
[...]
일 년이 지났다.
모두 꿈이었다. 꿈이라도 너무 악한 꿈이었다. 삼천 원 어치 땅을 사놓고 날마다 신문을 훑어보며 수소문을 하여도 거기는 축항이 된단 말이 신문에도, 소문에도 나지 않았다. 용당포龍塘浦와 다사도多獅島)는 땅값이 삼십 배가 올랐느니 오십 배가 올랐느니 하고 졸부들이 생겼다는 소문이 있어도 여기는 감감소식일 뿐 아니라 나중에, 역시, 이것도 박희완 영감을 통해 알고 보니 그 관변 모씨에게 박희완 영감부터 속아떨어진 것이었다. 축항 후보지로 측량까지 하기는 하였으나 무슨 결점으로인지 중지되고 마는 바람에 너무 기민하게 거기다 땅을 샀던, 그 모씨가 그 땅 처치에 곤란하여 꾸민 연극이었다. (이태준, '복덕방', 1937)
주식[미두]
"그가 큰 부자요. 금광으로 수십만 원 부자가 되구, 또 이즈막에는 주식계에서 김광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소. 아주 명사요. 나하구는 절친하구."
"당신두 요새에 가부소오바 시작하셨죠?"
"허허, 순옥이가 가부소오바를 어떻게 다 아우? 꽨데."
"아니 정말 가부하시우?"
"왜?"
"당신 태도가 요새에 이상하게 변했길래 말요."
"어떻게?"
"좀 허황해지셨어요."
"하하, 내가 허황해?"
"그럼 허황하지 않구요. 쓸데없는 전화를 매구, 집을 짓구, 값비싼 양복을 마추구, 안 자신다구 백 번이나 맹세한 술을 자시구, 또─."
하고 순옥은 잠깐 말을 끊는다. .
[...]
순옥이가 아직 모르거니 하는 동안 허 영은 주식한다는 것을 속이고 있었으나 순옥이가 말끔 알고 앉았는 것을 보고는 허영은 꺼릴 것 없이 전화통 앞에 앉아서,
"여보 야마낑이오요? 리쯔끼 가네신 얼마요?"
하고 얼굴이 푸르락누르락하였다.
이따금 돈을 따는 일도 있는 모양이어서 허영은 순옥에게 목도리, 장갑 같은 선물도 사 가지고 들어왔다. 그러할 때에는 그는 대단히 의기양양하여서, 빙글빙글 낯이 온통 웃음이 되어 가지고,
'자, 이렇게 내가 애써서 돈을 버는 것두 다 사랑하는 우리 순옥을 위해서란 말이오."
하고 진정으로 기뻐하였다. 순옥은 허영의 이 말이 진정인 줄을 느낀다.
그러나 허 영은 재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가부를 시작한지 반 년도 못 되어서 토지와 가옥을 이번 삼번으로까지 잡혀서 빚으로 얻은 돈을 다 없애 버렸다.
[...]
허영이가 분해서 하는 말에 의하면, 김광인이 금광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것은 말짱한 거짓이었고, 저도 논 섬지기나 있던 것을 기미期米[미두]와 가부에 죄 털어넣고, 일시 수십만 원 잡은 일도 있었으나 그것도 일 년이 못 해서 없애고 한창 궁하던 판에 허영을 만난 것이었다. 그래서 허 영의 땅문서와 집문서를 고리대금업자에게 잡히고 돈을 얻어서, 그것을 가지고 반씩 갈라서 반으로는 사고 반으로는 팔아 가지고는 산 것이 남으면 그것은 제 몫으로 하고, 판 것이 밑지면, 그것은 허 영의 몫으로 하고, 이 모양으로 김 저는 언제나 따고 허영은 언제나 잃는, 이러한 계교를 쓴 것이었다. 이따금 허영이가 딴 것은 김이 허영을 후리기 위하여 다섯 번에 한 번이나 남는 편을 허영의 몫을 삼은 것이었다. (이광수, 『사랑』,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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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두장] 여기는 치외법권이 있는 도박군의 공동조계共同租界요 인색한 몬테카를로다. 그러나 몬테 카를로 같은 곳에서는 노름을 하다가 몽땅 잃어버리면 제 대가리에다 대고 한방 탕 쏘는 육혈포 소리로, 저승에의 삼천 미터 출발 신호를 삼는 사람이 많다는데, 미두장에서는 아무리 약삭빠른 전재산을 톨톨 털어 바쳤어도 누구 목 한번 매고 늘어지는 법은 없으니, 그런 것을 조선 사람은 점잖아서 그런다고 자랑한다던지! (채만식, 『탁류』, 1939)
노름[마작]
열쇠 분실 사건이 있은 지 벌써 열흘이 넘는다.
병원에서 세상을 모르고 앓는 동안 모두들 어찌 되었는지 궁금한 것은 말할 것 없거니와 부친도 이 속에 잡혀 들어와 있는 것이 지금 말눈치로 분명하다.
"가[假]형사는 검거되었나요? 열쇠가 나왔어요?"
하고 물으니까 주임은 빙긋이 웃다가,
"가형사라니? 당신 부친 말야?"
하며 핀잔을 주고 나서,
"하여튼 당신 재산의 한 반은 노름 밑천으로 깝살릴 것을 찾았으니 당신네 청년들도 경찰을 원망만 말고 고마운 줄도 알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야 할 거요."
하고 타이르는 소리를 한다. 덕기는 부친의 일이 애가 쓰이나 우선은 잘 되었다고 반색을 하였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자는 그 말은 무슨 암시를 주는 것인지? 잘만 하면 부친도 무사히 놓일 것 같은 자신이 생긴다. 부친은 조부 생전에 벌써 화개동 집문서도 잡혀먹고 여기저기 걸린 수월찮은 빚은 노영감 돌아간 뒤로 성화같이 독촉인데 요새로 마장에 더욱 부쩍 몸이 달게 됐다.
첩치가에 덕기가 2000원 내놓고 부친의 저금 4,5000원도 그럭저럭 부스러뜨리고 나니 하는 수 없이 자기 땅문서로는 노름판에서 아쉰 대로 당장 3000원 빚을 썼으나 그동안 노름 밑천밖에 아니 되고 말았다. 마장에 손속이 없을수록 몸은 달고 빚쟁이는 하나도 입을 틀어막지 못한 이런 막다른 골목이 된 판에, 넘기려는 주식 중매점이 하나 있으니 떠맡자고 꾀고 다니는 자가 나타났다. 귀가 번쩍 띄었다. 회복할 길은 이밖에 없을 성싶은데 하늘이 지시한 것같이 때마침 덕기가 붙들려갔다. 그리하여 무죄 석방이 된대도 3,4삭이나 일 년은 걸리려니 하는 관측을 한 상훈은 체면 여부없이 불이시각하고 그런 비상수단을 쓴 것이다. (염상섭, 『삼대』,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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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는 요사이 그 마음이 우울하였다. 기술이 결코 남보다 떨어지지 않는다면 결국은 손속이 없다는 수밖에 없는 것이나, 아무리 없다기로서니, 그렇게 나지 않는 손속이라는 것도 참말 드물 것으로, 마작 노름에 그가 져온 돈이, 올해 들어와서만도, 사오백 원이 착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라면, 그다지 우울하지 않아도 좋았다. 요즈음에 이르러, 그것은 또 어찌된 까닭인지, 그렇게 죽어라고 없던 손속이, 갑자기 부썩 나서, 며칠을 두고 내리 혼자서 장을 치는 통에 어떻게 이대로만 얼마간 계속된다면, 잃었던 것 웬만큼은 회수가 되려니 하고, 은근히 속으로 좋아하였던 것도, 그러나 잠시 동안의 일이요, 일껏 난 손속에 그저 잠자코 붙들고만 앉았으면, 그대로 술술 돈이 들어올 것이 뻔한데도, 그것을 아깝게도 못하고, 이제 얼마 동안은 마작을 손에 잡지 않기로, 그렇게 마음먹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 민주사에게는 더욱이 속상할 일이었던 것이다.
늙은 마누라가,
"여보, 영감, 글쎄 그 장난을 왜 허슈? 제발 좀 삼가세요. 며칠 전에두 신문에 났는데 저 우대서 신사 도박단이 잡혀갔답디다그려. 그래, 그게 남의 일 겉소? 혹시 으떤 놈이 경찰서에다 고발이나 한다면,
대체 그런 욕이 어딨수? 또, 고발을 않기루써니, 그렇게 밤낮 쉬지 않구 허면, 또 누가 모르겠소?"
하고, 그렇게 말하였을 때, 물론 그 말은 신기한 말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이제까지 몇 번이고 귀가
아프게 들어왔던 것이요, 또 거기에는 집에는 붙어 있지 않고, 밤낮 첩에게만 가 있는 영감에게 대한,
이른바, 본마누라의 강짜가 분명히 들어 있는 것이라, 민주사는 가만한 코웃음으로, 그냥 딴 때나 한가
지로 흘려들으려 하였던 것이나 문득, 그 뒤를 이어 마누라가 또 한마디,
"혹시 그런 변이래두 있다면, 망신두 망신이려니와, 일껀 회의원된다던 것두, 그만 틀리기 말께 아니
유?"
하고 말하자, 민 주사는 그러지 않아도 자기 자신 그러한 것을 은근히 염려한 일이 없지 않아 있던 터
이라, 이제 또 마누라의 입에서까지 그러한 말을 듣고 보니, 그만 마음에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오래간만에 만난 도박 상습자의 화제는 뻔한 것이었고, 두 사람의 의견은 쉽사리 일치되어, 다옥정으로 향하던 발길을 그는 청진동으로 돌렸던 것이다.
그래도 물론, 아침에 하숙에다 맡겨둔 채 온종일 돌아보지 않은 젊은 과부의 일이 적잖이 궁금은 하였다. 또 노름도 좋기는 하였지만, 젊은 계집은 그보다 좀 더 매력을 가진 것이라, 그래,
"오늘은, 난 밤은 못 새우네. 같이 온 사람이 있어놔서……"
하고, 딴 때 없이 그러한 말을 해가며 그는 패를 잡았던 것이다.
'잘되는 놈은 어디까지든 잘되구, 못 되는 놈은 어디까지든 못되구…… 그것이 세상의 법칙이니까……'
자기는 그중에 잘되는 놈 축이라고 자신을 가질 수 있도록, 그날 밤 그의 '패운'은 역시 좋았다.
그래, 자정이 넘을 임시하여, 그는 세 바가지나 따고, 그의 소득은 그러니까 삼십 원이나 그러한 금액이었던 것이나, 물론 그만큼이나 따고 나서 그대로 훌쩍 일어나 나온다는 수도 없었고, 또 진 편에서도 대체 어떠한 이유로든지 그를 그냥 가게 내버려둔다는 법도 없었다.
"오늘, 내가 하숙에 안 돌아가면, 큰 낭패될 일이 있는데……"
그는 연해 그러한 소리를 해가면서도, 그러면 또 그런대로, 이왕 손속이 나는 김에 좀더 남의 돈을 먹기나 해야 하겠다고, 아주 배짱을 그렇게 차리고서,
"후 무자라는 관일세. 구백서른, 천 팔 백예 순."아주
재미가 나서 외쳐썬 것이나, 문득,
'아? 무슨 소리가 나지 않었나?'
패를 젓던 손들을 멈추고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귀를 기울였을 때에는 이미 뒤늦은 일로 대체 누가 꼬드겨서 알았던지, 세 명의 '사복'이 벼락같이 미닫이를 열어젖히고 방 안으로 달려들었던 것이다…… (박태원, 『천변풍경』, 1936)
경마
상승마常勝馬 '동운東雲'이 일본으로 팔려나간 뒤부터는 조선의 경마계競馬界는 적적하게 되었다. 한 때의 소위 '필승마必勝馬'가 수입된 일이 있기는 하지만 절대로 신뢰할 만한 말은 없었다.
그 '동운東雲'의 전성시대에 동운의 뒷꽁무니를 넉넉히 따를 만한 '금강산金剛山'이란 말이 있었다. 말 주인은 대구大邱 운송업자 소산小山이란 사람으로서 위인이 겁 많고 소심하고 돈만 아는 사람으로서 그는 그 탐욕 때문에 당국에게 출마 정지를 당하였었다. 1926년 추기秋期 경성경마京城競馬의 갑종마甲種馬 일등상은 총독부 상전의 커다란 은銀컵이오 둘째상은 현금 삼백 원이었다. 월래 돈만 아는 소산小山에게는 은컵보다 현금 삼백 원이 귀하였다. 그래서 초일初日에는 어떤 일이 있던 일착一着은 하지 않도록 기수騎手에게 명하여 두었다. 그러나 그 날 당연히 일착一着할 '동운東雲'이 감기 때문에 이착二着이 되고 뜻밖으로 소산小山의 말 '금강산金剛山'이 일착一着하였다. 돈밖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소산小山은 그 은컵을 발길로 찼다. 이런 것은 보기도 싫다고 기수를 꾸짖었다. 이 일이 소문이 나서 그는 출마 정지를 당하였다.
그 사람의 말에 '고사高砂'라 하는 말이 있었다. 을종마乙種馬로서 평양경마平壤競馬에서 무서운 실력을 보여줄 뿐 발이 상하고 말았다. 신의주에서도 한 번도 뛰지를 않았다. 그러나 소산小山의 간사하고 교활한 성질을 아는 전문가들은 그 말의 발의 상한 정도를 의심하였다. 발이 상하였다 하여 세상을 속이다가 경성경마에서 큰 배당금을 내이려는 간계奸計거니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성경마京城競馬 때에도 '고사高砂'는 발에 붕대를 하고 나와서 도무지 뛰지를 못하였다. 다른 말들이 세 바퀴를 도는 동안에 '고사高砂'는 겨우 두 바퀴를 돌뿐이었다. 제2일의 성적도 그와 같았다. 전문가들도 겨우 '고사高砂'에 대한 자기네의 신뢰를 포기하였다. 고사高砂는 못 쓰게 되었다, 이렇게 알았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안심 치를 못하였다. 제3일 넷째 경마에 고사高砂가 출마하였다. 나는 뜻하지 않고 둘러보았다. 그러나 소산小山의 모양은 볼 수가 없었다.
마권 마감시간이 임박하여 소산小山의 조그만 몸집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두룩두룩하다가 나를 보더니 저편으로 피하고 말았다. 당시의 나는 전문마권사專門馬券師들의 경계의 표적이었다. 한 경마에 적어도 백 매 이상의 마권馬券을 던지던 나임으로 내가 투표한 말은 언제든지 배당이 좋지 못하였다. 게다가 내가 투표하는 말에는 눈 감고 투표하는 많은 군소마권사들이 있었는지라 전문마권사며 마주馬主들은 내가 투표하는 것을 몹시 꺼리었다. 소산小山이도 나를 피하여서 저편 중다옥仲茶屋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나의 눈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가 그 다옥茶屋에 들어가자 그 다옥茶屋에서 하녀가 하나 나와서 두리번거리다가 고사高砂에 투표를 하였다. 나도 시간을 유여치 않고 손에 들고 있던 마권 백수십 매를 고사高砂에 넣었다. 나의 뒤를 주시하고 있던 군소마권사群少馬券師들도 왁 하니 고사高砂에게로 쏠려들었다.. 아직껏 경마라 하여 한 장의 투표도 없던 고사高砂는 갑자기 인기의 중심이 되었다.
승리는 고사高砂의 것이었다. 경주가 끝난 뒤에는 너른 경마장은 큰 혼잡을 이루었다. 의외로다, 협잡이로다, 실수로다―온갓 사람의 입에서 이러한 말이 나왔다. 배당금配當金 8원 30전, 마권 한 장의 순이익 6원 30전, 시간으로 말하면 3분 내외에 나는 9백여 원이란 돈을 남겼다.
그 해 경성경마京城競馬 나흘 동안에 내가 남긴 돈이 3, 4천 원, 조선인은 물론이고 전문경마사들 새에 '평양의 김상'으로서의 나의 이름이 오른 것이 그때였다.
그때 소산小山에게 "고사高砂 덕분입니다"하고 예[禮]를 하니깐 그는 몹시 성이 나서 "당신 때문에 "당신 때문에 20원 배당 날 것이 8원 각수 밖에는 안 났다"고 나무람을 하였다. (김동인, '경마이야기, 1930.1. 『별건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