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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남이와 복동이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19. 4. 11. 12:37

어느 날 아침이었다.
보통학교 5학년 을조에는 시골학교로부터 동일이란 아이가 전학을 하여 왔다. 그래서 수업 시간 전에 생도 전부가 키 차례로 나란히 서서 동일이의 자리를 정하였다.
마침 동일이는 키가 커서 수남이와 복남이 사이에 꼭 알 맞아서 그 사이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때문에 어제까지 어깨를 가까이하고 한 책상에 같이 앉아서 정답게 지내던 수남이와 복남이는 할 수 없이 따로 떨어지게 되고 말았다. 수남이는 동일이와 한 책상에 같이 앉게 되고, 복남이는  그 앞 책상에 딴 아이와 같이 앉게 되어서 한편 생각하면 섭섭하기도 하고 한편 생각하면 동일이가 얄밉기도 하였다. 

어제까지 한 책상에 같이 앉아서 상학 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글을 쓰실 때에는 소곤소곤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고, 혹은 선생님의 눈을 피해서 잡기장에 연필로 장난을 해 놓고도 서로 넓적다리를 꼬집으며 웃기도 하여 시간 가는 줄을 모르던 수남이와 복남이는 오늘부터 그럴 수가 없으므로 교실에서 한 시간 동안 참기가 퍽도 거북하였다. 
[...]
조금 있다가,
"동일 씨! 용서해 주시오. 제가 잘못하였습니다. 동일 씨를 '자벌레'라고 별명지은 것은 저올시다."
수남이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의 수그린 얼굴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흘렀다.
"아닙니다. 별명을 지은 것은 저올시다. 용서하여 주시오."
하고 이번에는 복남이가 머리를 숙이었다.  (방정환, '숨은 명예', 『어린이』 1927.5.)

 

**

젊은 내외가 너댓 살 되어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그곳에가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식당으로 가서 그들의 오찬을 즐길 것이다. 흘낏 구보를 본 그들 내외의 눈에는 자기네들의 행복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엿보였는지도 모른다. 구보는 그들을 업신여겨 볼까 하다가, 문득 생각을 고쳐 그들을 축복하여 주려 하였다.

사실 4, 5년 이상을 같이 살아왔으면서도, 오히려 새로운 기쁨을 가져 이렇게 거리로 나온 젊은 부부는 구보에게 좀 다른 의미로서의 부러움을 느끼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분명히 가정을 가졌고,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당연히 그들의 행복을 찾을게다.
승강기가 내려와 서고, 문이 열려지고, 닫혀지고 그리고 젊은 내외는 수남이나 복동이와 더불어 구보의 시야를 벗어났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

'해만 저물면 바닷물처럼 짭조름히 향수가 저려든다'고 시인 C군은 노래하였지만 사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란 짭짤하고도 달콤하며 아름답고도 안타까우며 기쁘고도 서러우며 제 몸속에 있는 것이로되 정체를 잡을 수 없고, 그러면서도 혹 우리가 낙망하거나 실패하거나 해서 몸과 마음이 고달픈 때면은 그야먈로 바닷물같이 오장육부 속으로 저려 들어와 지나간 기억을 분홍의 한 빛깔로 물칠해 버리고 소년 시절을 보내던 시골집 소나무 우거진 뒷동산이며 한 글방에서 공부하고 겨울이면 같이 닭서리해다 먹던 수남이 복동이들이 그리워서 앉도서도 못하도록 우리의 몸을 달게 만드는 이상한 힘을 가진 감정이다. (유진오, '창랑정기', 1938)

 

 


 

▲ 『보통학교 조선어독본 (3권)』, 조선총독부, 1920년대초

1. 식목

복동이 4월 4일 아침에 학교 뒷집에 있는 노인을 만나서 인사를 여쭈었소.

노인 "어제 너희들은 무슨 일로 그렇게 일즉이 학교에 모였드냐."
복동 "어제는 신무천황제일神武天皇祭日이올시다. 저희들은 일즉이 모여서 선생님을 따라 학교림學校林에 갔다 왔습니다."
노인 "그러면 식목을 하러 갔드냐."
복동 "네, 학교에서는 신무천황제일을 식목일로 정하고, 해마다 그 날은 학교림에 가서 나무를 심습니다."
노인 "그것은 참 좋은 일이다. 조선은 어디든지 붉은 산이 많다. 산에 나무가 없으면 목재를 얻을 수가 없고, 또 수해와 가뭄旱災가 심하니라."
..

5. 제비

수남 "저 것 보오. 제비가 저 들보에 집을 지었소."
복남 "글쎄. 그런데 제비는 어떻게 진흙을 물어다가, 저처럼 집을 잘 짓소. 재조才操도 용하오."
수남 "참 용하게 지었소."
복남 "저것 보오. 제비 집 속에 제비새끼가 가만히 있소구려."
수남 "참말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또 여러 마리가 있나보오."
복남 "지금 큰 제비가 무엇인지 입에 물고 왔소. 저것은 무엇인가요."
수남 "그것은 버러지요. 새끼를 먹이려고 물어온 것이오"

(『보통학교 조선어독본 (3권)』, 조선총독부, 1920년대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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