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都下[서울 장안]에 한 관상자觀相子 있어 일찍이 내 상을 보고 이르되,
"면사귤피面似橘被하니 득자필만得子必晩이라." [얼굴이 귤껍질 같으니 아들은 필히 늦게 얻으리라]
하였더라.
[...]
이래 십 년 한결같이 성현의 가르치심을 본받아 덕을 닦고 배움을 힘씀이 오직 실적은 없이 이름만 헛되어 전할까 저어함이러니, 뉘 능히 뜻하였으리오, 상모狀貌 귤피와 같음은 겸하여 득자의 필만必晩할 것을 알겠노라 하니, 인인군자仁人君者됨이 또한 어렵도다.
그러나 이미 하늘이 정하신 바를 내 감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허물하리오. 내 실인室人[아내]이 연달아 두 번 딸[설영, 소영]을 낳으며 아직 아들은 없으되, 내 그를 죄주지 않고 더욱 인격 연마에만 전심하니 비록 그 소문이 밖에 들리어 인근이 모두 내 덕을 일컫는 것은 아니로되 실인의 나를 경모함이 날로 더하여 시끄럽고 어지러운 소리 이웃에 들리지 않으니, 이는 본래 어진 선비의 가풍일지라.
그러나 내 비록 저를 죄주지 않으나 제 어찌 스스로 마음에 떳떳할 것이랴. 실인이 가만히 분발한 바 있어, 이에 세 번째 회잉懷孕하니, 비록 태아의 남녀를 미리 판단할 도리 없으나 그 뜻만은 장하도다.
소문이 한번 밖에 들리매 여천黎泉 선생[이원조]이 예단하되, 필시 또 여아이리라 하니, 이는 대개 그가 슬하에 딸만 삼형제를 두어 매양 영규令閨[남의 아내]와 더불어 후사를 염려하는 나머지 은근히 내 복을 시기함이니, 덕이 박한 이의 상정이거니와 회남공[안회남]은 이르되, 이번에는 한번 아들을 나보슈 하니, 말은 비록 귀에 달가우나 뜻은 또한 그렇지 못하여, 여천 선생[이원조]의 삼녀, 구보자仇甫子의 이녀二女에 비겨 공은 실로 이자二子를 두었음에 스스로 교기驕氣를 금치 못함이라.
그러나 사람의 귀천이 오로지 현우賢愚에 있고 남녀에 있음이 아니니, 외우제공畏友諸公이 비록 어지러이 논의하나 개의치 말고, 내 실인은 오로지 태아를 위하여 덕을 쌓으라. (박태원, '잡설',『문장』, 19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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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己卯 추秋 8월 가배절[1939년 음력 8월15일]에 실인이 일아一兒를 분만하니 곧 옥 같은 동자라[서울 종로 예지동 121번지에서 맏아들 일영 출생], 경향京鄕이 함께 술을 두고 떡을 빚어 즐기더라.
[...]
실인의 등을 어루만져, 그의 수고로움을 사례하고, 이에 문간에 나아가 몸소 인줄을 매어 놓으니, 이는 대개 온갖 부정과 잡인의 출입을 금하기 위함일러라.
방에 돌아와 실인으로 더불어 강보 소아를 살피어보매, 봉안여미鳳眼麗眉에 안색이 중조重棗와 같음이 한수정후漢壽停候 관모關某를 방불케 하며, 울음 소리 또한 영특하여 한번 입을 열어 소리를 발하매 칸반방間半房이 크게 진동하는지라, 족히 저 인물의 범상되지 않음을 알겠도다.
마침 문전에 부르는 소리 있어 뉘 나를 찾기로, 나아가 보니 이는 학예사 사동이라, 제 자행차自行車[자전거]를 달려 바쁘게 내게 옴은 오직 사명社命을 내게 전코자 함이러니, 제가 사社에 돌아가 복명함에 미쳐, 내 집에 산고가 있음을 아울러 보報하되, 구보댁에 또 여아가 탄생하였더이다 하니, 이는 제가 내집 문전에 걸린 인줄만으로 경망되어 판단하였음이라.
대게 동속東俗에 여아를 낳으매, 인줄에 숯만 꿰어 달고, 남아를 얻으매, 숯과 함께 고추도 아울러 달더니, 근자에 이르러 남아를 얻고도 고추를 달지 않는 풍습이 성행하는지라, 혹은 이르되 이는 아들 얻기를 목마른 이 물 구하듯 하는 자─남의 복을 흠선欽羨[부러워함]하는 나머지, 더러 어둔 밤을 타서 인줄에 매인 고추를, 가만히 취하여 갈까 저어함이라 하되, 내 어찌 무지한 아녀자와 더불어 이렇듯 허망된 말을 믿으리오. 다만 그날 집안에 고추를 구하지 못하여 내 오죽 숯만 달았더니, 저 사동이 그 하나만 알고, 미처 그 둘을 몰라 그릇 전하였더라.
소문이 한번 밖에 들리매, 딸만 연달아 삼형제를 두고 아직 아들을 없는 여천 선생이 스스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곧 주효酒肴를 베풀어 회남, 규섭[윤규섭] 등 제공諸公으로 더불어 하룻저녁을 즐기니, 이는 저의 하고자 않는 바를 남에게 주어 가만히 쾌快하다 하는 마음이라. 성현의 가르치심이 크게 어긋나나니, 선생이 스스로 원치 않는 딸만 낳아 장래 여학교 입학난만 더하게 하게 됨이, 오로지 그의 덕이 박하고 어질지 않음에 말미암은 것이라, 선생은 반드시 세 번 생각하여 마음을 바로 가져 후사를 도모할지어다. (구보仇甫, '잡설',『문장』, 1939.12)
2019/03/19 - [친절한 구보씨] - 구보씨 첫 딸 태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