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상을 안 것은 그가 아직 다료茶寮 '제비'를 경영하고 있을 때다. 나는 누구한테선가 그가 고공건축과高工建築科[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 출신이란 말을 들었다. 나는 상식적인 의자나 탁자에 비하여 그 높이가 절반 밖에는 안 되는 기형적인 의자에 앉아 집 안을 둘러보며 그를 괴팍한 사나이다 하였다.
(박태원, '이상의 편모', 『조광』, 19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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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李箱을 보러 매일같이 제비를 찾으면서도, 그러한 까닭으로 하여 그곳에서는 즐겨 '가배'도 '홍차紅茶'도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공교로웁게 이상이 밖에 나가고 없을 때, 언제 돌아올지 알 수도 없는 벗을 담배만 태고 앉아 기다리는 수는 없었다.
그런 때, 나는 한 푼의 백동화白銅貨를 수영이에게 내어주고 말한다.
"너, 사과 좀 사오너라."
뒷골목 일진옥日進屋에서 수영이는 능히 십전十錢에 다섯 개를 받아온다.
"수고했다. 너도 같이 먹자."
그럼 소년은 처음에 사양한다.
"무얼요. 전 싫습니다. 어서 잡수세요."
그러나 그는 내가 두 번 째 권하였을 때 선선하게 한 개를 집어 든다.
그리고 처음에 그렇게 사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두 개 먹는 동안 그는 나머지 세 개를 모조리 먹어버리는 것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어 수영이가 그처럼 탐욕하였다는 그런 까닭만은 아니었던 듯 싶다. 내가 한 개의 사과를 네 쪽에 내고 그것들을 다시 껍질을 벗기고 속을 도려내고 그러는 동안에 그는 능히 한 개 반을 껍질째로 어기적어기적 씹어 먹을 수 있었든 것이다. 물론 언제든 사과만을 우리가 즐긴 것은 아니다.
"오늘은 귤을 사올까요?"
"그래 귤橘도 우리는 때때로 사다 먹었다. 그러나 그것에도 물렸을 때
"얘얘, 어디 군밤 좀 사다 먹자."
그래 한 명의 손님도 찾아주지 않는 다방 안에서 우리는 단 둘이 마주 앉아서 군밤을 먹으며
"저-세루 바지 하나 해입자면 돈이 많이 들겠습죠?"
"많이 들지 왜 하나 사 입고 싶으냐?"
"아-니 그냥 말씀에요."
무어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정경情景이란 지금只今 생각하여 보아도 애닯게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박태원, '제비', 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