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건 쓰고 귀 안 뺀 촌 샌님들이 도무지 어쩐 영문인 줄 모르게 살림이 요모로 조모로 오그라들라치면 초조한 끝에 허욕이 난다. 허욕 끝에는 요새로 친다면 백백교白白敎, 돌이켜서는 보천교普天敎 같은 협잡패에 귀의해서 마지막 남은 전장을 올려 바치든지, 좀 똑똑하다는 축이 일확천금의 큰 뜻을 품고 인천으로 쫓아온다. 와서는 개개 밑천을 홀라당 불어 버리고 맨손으로 돌아선다. (채만식, 『탁류』,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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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조선일보] 판매부장이 해주지국장에게 나를 소개하는 글 속에는 분명히 내가 백백교白白敎에 관하여 무엇을 좀 알려고 가는 것이니, 그리 알고 편의를 보아주라는 그러한 말이 적혀 있었든 모양이다. 최 지국장은 편지를 읽고 나자 마침 그곳에 놀러왔든 해주경찰서 고등계 이 씨에게 나를 소개한다. 그것은 나로서는 뜻밖에 일이었으나 무어 구태여 숨기고 있어야만 할 일도 아니었으므로 결국은 그 편이 도리어 좋았다고 나는 간단히 장편 계획을 말하고 이 씨에게 이야기를 청하였든 것이나 내가 들을 수 있었든 것은 일즉이 신문지상에서 보도되었던 사실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지국장은 다시 기자에게 명하여 유곤룡柳昆龍씨에게 전화를 걸고 우리가 곧 왕방往訪할 뜻을 전하게 하였다. 그러나 나는 유 씨를 만나더라도 별로 소득이 있을 것같이 생각되지 않았다. 유 씨는 솔직하게 본 바 들은 바 겪은 바를 이야기하여 준다 하면 실로 나는 얻을 바가 적지 않을 것이나 물론 그것들을 유 씨로서 즐겨 말할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래도 다만 그의 얼굴을 한번 보아 두는 것만도 그리 부질없는 일은 아닐 게다. 얼마 지나 지국장의 안내로 우리는 태봉골 상술집으로 갔다.
[...]
술이 네 병째 들어오자 지국장은 차차 유 씨에게 이야기를 끌어내려하였으나 백백교 삼자三字가 나올까 말까 하였을 때 이미 그는 경계하기 시작하며 화제를 전환시키려 노력이다. 우리는 그에게 말 듣기를 이내 단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박태원, '해서기유', 조선일보, 1938.2.)
황해도 신천 사는 한 젊은이 유곤룡[당시 36세]은 할아버지가 임종에서 한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나는 약방을 해서 큰돈을 벌었다. 그 돈을 모았으면 천석 추수는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한데 백백교를 믿는 바람에 오늘 이 같은 파산지경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지 2년 후백백교의 수렁에 깊이 빠진 아버지가 유 군의 18세 된 누이동생 유정전을 백백교 대원님의 시녀로 바친 것을 뒤늦게 알았다. (이규태, '백백교 이야기', 1999.12.3.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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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수사선 위에 나타나게 된 것은 소화12년[1937년] 2월 17일인데, 그 단서가 된 것은 그 전날 밤 경성부 하왕십리정 959번지 피고인 유인호의 집에서 그의 맏아들 곤룡이 전용해와 싸움 끝에 동대문 경찰서 하왕십리 주재소에 백백교의 내막을 신고한 데서 시작되었다.
즉, 2월 16일 밤 유인호의 집에서 그와 곤룡, 이외에 유인호의 조카 유대열 등과 전용해와 그 측근자 이경득 등이 술을 먹던 자리에서 유곤룡이 일즉부터 의심을 가지고 있어 그 정체를 폭로하려고 애쓰던 백백교주대원님白白敎主大元任이라는 자와 함께 술을 먹게 된 기회를 타서 동교同敎에 대한 불만의 태도를 표시하였는 바, 전용해는 크게 이것을 분개하여 그의 누이동생이고 자기 첩인 첩 유정전에게 여러가지로 싫은 말을 하던 나마에 그 여자를 죽이려고 오덕도五德刀라는 칼을 꺼내어 사태가 험악해지매 유인호는 크게 놀래어 전용해에게 백방으로 진사陳謝하여 겨우 그 칼을 도로 넣게 하였는데, 유곤룡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격렬한 말로 전용해의 나쁜 일을 지적하여 마침내 싸움이 벌어져 전용해가 그 집을 도망해 나가는 뒤를 따라 하왕십리 소학교 앞까지 추격하여 이경득을 몽둥이로 때려누이었으나, 전용해가 칼을 가지고 대들므로 그대로 도망을 하여 하왕십리 주재소에 신고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2월 17일 오전 한 시쯤된 때며, 또 그 때는 경찰관도 이 사건과 같이 대사건이 그 뒤에 숨어 있으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 했으므로, 우선 관계자로서 이경득을 붙잡고, 또 전용해가 은신하는 곳을 수사해서 김서진 외 한 명을 체포하였으나 전용해는 어딘가 숨어버려 붙잡지 못한 채 17일 아침이 되어 우선 붙잡은 세 명과 유곤룡을 동대문서에 데리고 갔는데 거기서 자세한 사정을 들은 결과 여기에 백백교가 아직도 지하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실이 판명되어 곧 유인호와 그의 딸 유정전과 조카 유대열까지도 경찰서에 데려다 취조한 결과 그들의 공술供述로 백백교가 일즉 세상을 놀라게 한 소위 금화金化사건 때문에 완전히 해산되었으리라는 일반의 생각과는 반대로 밀교密敎서 의연히 존속해 왔을 뿐 아니라 교주 김두선 또는 김영선이라는 자[전용해의 가명]는 대원님이라 참칭僭稱하여 많은 간부와 함께 경성부내 여러 곳에 집을 두고 있는 것이 판명되었으므로 동서同署에서는 곧 일제 검거를 시작하였으나 교주와 그 외의 간부들은 재빨리 도망하고 미처 도망 못한 자를 검거했을 뿐, 김두선이란 자의 간 곳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교주의 첩과 먼저 데려온 자들을 엄중히 취조하였으나, 교주는 여러 가지 위계책략을 써서 많은 신도로부터 돈을 빼앗고 많은 첩을 두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교敎의 일부 간부는 늘 지방에 출장하여 행동에 수상한 점이 있다고 추측된다는 정도의 공술供述을 할 뿐 좀처럼 참말을 하지 않고 이름까지도 위칭僞稱하는 정도라 취조에 퍽 곤란을 느꼈으나 동서同署에서는 예의 진상을 규명하기에 힘쓰는 동시에, 교주와 간부들을 붙잡기에 전력을 해왔다.
그 결과 그 달 20일까지에 이자성, 김찬범과 그 외에 몇 명을 검거하고 또한 백백교주 김두선은 많은 부하로 하여금 자기가 신비스러운 힘을 가져서 장래에 꼭 천위天位에 오를 인물이라는 것 등 여러 가지 황당무게한 말을 불어넣어 이를 믿게 하고 조선은 멀지 않은 장래에 교주 통솔 아래 XX할 터이므로 신도는 헌금하는 액수 또는 인물과 신앙심에 따라 고위현관高位顯官에 임명한다는 등 감언으로 꾀어서 돈을 속여 먹고 딸을 바치게 해서 첩을 삼고 그 외에 폭행 상해 등 범행을 맘대로 하고 있는 것이 차차 판명되게 되었다. [...]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검사 삼본衫本, '백백교 사건논고 전문' 중에서. 『조광』, 19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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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배 중이던 백백교주白白敎主 전용해全龍海가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 속에서 자살 시체로 발견되다. 백백교白白敎는 부녀자강간, 살인, 강도, 사기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었는데 살인 추정인원은 400여명[최종 공식 확인된 인원은 314명]이다. 동교同敎는 교주敎主인 대원님大院任 밑에 벽력사霹靂使·침봉사沈奉使·영춘사靈春使·북두사자北斗使者 등 17 명의 간부가 있다. (조선일보, 1937.4.13.)
죄는 결코 속이는 사람 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속는 사람 편에도 마땅히 비난을 받아야 할 점이 많습니다.
우리가 남의 말에, 남의 수단에 속아 넘어가는 경우를 생각하여 볼 때, 속이는 사람의 말이나, 수단이 교묘하기 전에, 벌써 우리 편에서 속아 넘어가려는 마음의 준비가 있었음을 알겠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약점만 없고 보면, 제 비록 어떠한 감언이설을 늘어놓든, 어떠한 교묘한 수단을 쓰든, 결코 우리가 그것에 넘어갈 까닭이 있겠습니까?
백백교白白敎 사건은 세계범죄사 상에서 일찍이 보도 듣도 못하던 큰 사건입니다. 아메리카의 '알 카포네'라는 악한을 흔히 '범죄왕'이라 일컫습니다마는, 그가 거느리고 있는 '갱'(악한단惡漢團)도 백백교처럼 많은 인명을 살해하지는 않았습니다. 내지[일본]의 '히도노미찌'라는 교도, 요망스러운 말로 혹세무민 하기는 백백교와 일반입니다마는, 역시 이처럼 수다한 인명을 이처럼 참학慘虐한 방법으로 해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듯 수많은 사람이 백백교와 같은 사교邪敎를 믿고, 그리고 저마다 재산과 가정과 저의 목숨조차 잃고 말았다는 것은 참으로 우리 민족의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백백교 간부들의 자백을 들어 보더라도, 그들이 교도를 획득하는 수단이나 방법은, 누구나 속아 넘어가고 말게스리 그렇듯 교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렇듯 허황된 말과 수단에 속았을까?─ 할 만큼 극히 황당무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그렇듯 믿지 못할 말을 믿고, 수많은 사람이 교도가 되었고, 그중 수백 명이 앞에도 말씀한 것처럼, 이편에서 속으려고 하는 마음의 약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마음의 약점이란 어떠한 것일까? 그것은 곧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욕심입니다. 구차한 사람은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어 잘 살아볼까 하며, 몸에 고치기 어려운 병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하면 병을 고치고 건강한 몸이 되어 볼까 하는─. 재물에 대한 욕심이나, 건강에 대한 욕심이 있으면, 사람은 곧 마음의 약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슬픔이 있으면 슬픔을 덜려하고, 괴로움이 있으면 괴로움을 덜려는 마음─. 이성이 건전한 사람도 지극한 괴로움, 지극한 슬픔 속에서는 남의 힘을 빌려고 미신적인 행동을 취하는 수가 많은 법입니다. 하물며 판단력이나 비판력을 충분히 갖지 못한 무지몽매한 사람들의 경우이겠습니까?
다시 한번 말씀하거니와 우리 동포가 백백교와 같은 사교邪敎를 믿은 것이 결국 그 마음의 약점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의 약점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백백교 사건은 그 진상이 이미 천하에 드러나, 모두들 놀라고 어이없어하는 바이지만, 제2의 백백교, 제3의 백백교가 우리들의 약점을 다시 노리고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독자 여러분은 냉정히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백백교와 같은, 그러한 요사스러운 교를 믿고 계시지나 않은가 깊이 생각하여 보십시오. 이것은 결코 독자 여러분을 무식하고 어리석은 백성같이 알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꼭 무슨 '교'라고 명토를 박은 것은 믿고 계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혹 괴로운 일을 당하실 때, 답답한 일을 당하실 때, 무당이나 판수의 힘을 빌려고 하시지나 않습니까? 만약 그러하신 일이 있으시다면 이것은 깊이 생각하실 일입니다. 결국 무당 판수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나, 사교를 믿는 것이나, 꼭 같은 일이니까요.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어려운 일, 모든 큰 일은 오직 우리들의 건전한 이성과 정상正常한 방법으로만 해결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앞길은 우리의 힘으로만 개척되어야 합니다. 남의 힘을 빌어, 아주 손쉽게 행복을 바라려는 마음이 결국은 우리들로 하여금 무당 판수도 찾아가게 하고, 마침내는 백백교와 같은 못 믿을 것을 믿게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감언이설로 우리들을 꼬이고 우리들을 해치려고 하는 무리들을 경계하고 두려워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우리들의 마음의 약점을 경계하고 두려워하여야만 합니다. 이미 제한받은 맷수가 초과되어 불충분한 대로 이만 그칩니다마는, 독자 여러분께서는 부디 제가 말하려는 것이 어떠한 점에 있는가를 확실히 알아내시어, 우리와 우리의 이웃사람들이 다시 두 번 잘못된 길에 들어가 불행하지 않도록 힘써 주십시오. (박태원, '우맹愚氓─백백교사건에 관하여' 『가정지우』, 19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