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봄이 졸업 아니냐? 그래 어디를 들어갈 테냐?"
부친이 아들의 공부에 대하여 묻는 것은 처음이다. 절대 방임주의, 절대 자유주의라 할지 덕기가 꼼꼼 혼자 생각하고 결정을 하여 조부에게 말하면 이 양반은 신지식에 어두워 그런지 학비만 내어줄 뿐이요, 부친에게 허락을 구하면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것으로 보면 덕기가 이만큼이나 되어가는 것은 제가 못생기지 않고 재주도 있거니와 철도 일찍 들어 그렇다고 할 것이다.
"경도제대로 들어갈까 하는데요."
"그럴 게 무어 있니? 경성제대로 오면 입학에 경쟁이 심한 것도 아니요 또 집안 형편으로도 좋지 않으냐?"
"글쎄올시다. 그래도 좋겠지요."
덕기는 아무쪼록 서울을 떨어져 있고 싶었으나 경성으로 오게 되면 와도 그리 싫은 것은 없었다.
[..]
덕기는 이만하면 한시름 잊게 되었으니 이번 초하루 삭망이나 지내고 나서 경도로 떠날 작정을 하였다. 시험 준비도 충분치 못하고 어쩌면 추후 시험을 보게 될지 모르나 왕복 두 달 예정만 하면 졸업장을 맡아가지고 와서 경성제대의 본과에 들어가리라는 예정이다. (염상섭, 『삼대』,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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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가케우동 한 그릇을 먹은 신철이는 여전히 도서실로 들어왔다. 도서실 안을 휘 둘러보니, 식당으로 가기 전보다 인수人數가 좀 줄어진 듯하였다. 나도 어디로나 가볼까 하며, 포켓에서 시계를 꺼내 보니 여섯시 십 분…… 그는 의자에 걸어앉으며 엉덩이가 아픈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는 하루 종일 이 도서실에 앉아서 강의 시간에도 강당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다시 일어나서 자세를 바르게 해가지고 도로 앉았다. 그리고 가방 속에 집어넣어 두었던 책을 꺼내어 펴들었다.
책을 펴드니 아까와 같이 또다시 여러 가지 생각에 머리가 띵하였다. 아침 학교에 올 때 그의 아버지가, 오늘은 좀 일찍 오너라…… 하던 말이 또다시 가슴에 쿡 맞찔린다. 필연 오늘은 결정적으로 그의 대답을 들으려고 하는 모양이다. 어젯밤 덕호와 아버지는 단단한 의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오늘은 그 하나를 두고, 여럿이 강박하다시피 대답을 요구할 것 같았다.
[...]
밖으로 나온 신철이는 푸떡푸떡 떨어지는 눈송이를 얼굴에 느꼈다. 그는 눈이 오는가…… 하며 바라보았다. 가로등에 비치어 떨어지는 눈송이는 마치 여름날 전등불을 싸고 날아드는 하루살이떼 같았다. 그가 어정어정 걸어 정문까지 나왔을 때 도서실에서 흘러나오는 폐실閉室 종이 뗑겅뗑겅 울렸다. 그는 벌써 아홉시로구나!…… 하며 휙근 돌아보았다. 컴컴한 공간을 뚫고 시커멓게 솟은 저 건물, 저것이 조선의 최고 학부다! 그는 우뚝 섰다. 그리고 자기가 삼 년 동안 [예과 2년 별도] 하루같이 저 안에서 배운 것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는 커다란 퀘스천 마크(?)가 눈이 캄캄해지도록 그의 앞에 가로질리는 것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도서실에서 흩어져 나오는 학생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그는 다시 걸었다. 그가 그의 집까지 왔을 때 아버지의 으흠 하고 기침하는 소리가 전날같이 무심히 들리지를 않았다. (강경애, 『인간문제』,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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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귀신 같은 놈들 잘 내쫓으셨습니다.”
하고 안으로서 나오는 것은 김갑진이었다. 갑진은 안에서 밤을 새운 모양이었다. 이러한 때에도, 그는 J자 붙인 검은 세루[옷감 종류] 대학 정복을 입고 손에 ‘大學’이라는 모장 붙인 사각모자를 들기를 잊지 아니하였다.
“인선이가 죽었다.”
하고 윤 참판은 갑진을 보고도 같은 소리를 하였다.
“글쎄올시다, 그런 변고가 없습니다. 그 귀신 같은 놈들이 독약을 먹여서 그랬습니다. 애초에 제 말씀대로 입원을 시키셨더면 이런 일은 없는 것을 그랬습니다. 그런 귀신 같은 놈들이 사람이나 잡지 무엇을 압니까.”
하고 갑진은 모든 것을 다 아는 듯이 단정적으로, 훈계적으로 말을 한다. 안하무인한 그의 성격을 발로한다.
“왜 의사는 안 보였다든?”
하고 윤 참판은 갑진의 말에 항변한다.
“의사놈들은 무얼 안다더냐. 돈이나 뺏으려 들지.”
“애초에 조선 의사를 부르시기가 잘못이지요. 그깟놈들, 조선놈들이 무얼 압니까. 요보놈들이 무얼 알아요? 등촌 박사나 이등 박사 같은 이를 청해 보셔야지요. 생사람을 때려잡았습니다.”
하고 갑진은 여전히 호기를 부린다.
윤참판은 갑진을 한번 흘겨보고 일어나서 무어라고 누구를 부르면서 안으로 들어간다.
허숭은 차마 갑진의 말을 들을 수가 없어서,
“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하고 갑진을 나무랐다.
“왜? 자네 따위 사립학교 부스러기나 다니는 놈들은 가장 애국자인 체하고, 흥, 그런 보성전문학교 교수 따위가 무얼 알어? 대학에 오면 일년급에 붙지 못할 것들이. 자네도 그런 학교에나 댕기려거든 남의 집 행랑 구석에서 식은밥이나 죽이지 말고, 가서 조상 적부터 해먹던 땅이나 파. 괘니시리 아니꼽게 놀고 먹을 궁리 말고…….”
하고는 입을 삐죽, 고개를 끄떡 하고 나가 버린다. 아마 밤을 새웠으니까 졸려서 어디로 자러 가는 모양이었다. (이광수, 『흙』,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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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서고 또 움직였다. 구보는 창 밖을 내어다보며, 문득 대학병원에라도 들를 것을 그랬나, 하여 본다. 연구실에서, 벗은 정신병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를 찾아가 좀 다른 세상을 구경하는 것은 행복은 아니어도 어떻든 한 개의 일일 수 있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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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해 그해 유월달은 철이나 육을 위해 몹시 즐거운 시절이었다. 흔히 세 사람은 학교 문간[법문학부 정문]에서부터 동행이 되어 병원 뒤 숲을 지나 병원 앞 전차 정류장까지 걸어오도록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숲에는 바야흐로 녹음이 짙었고 그 녹음같이 세 사람은 인생의 첫 여름을 맞이한 것이다. (유진오, '신경', 1942)
2019/03/28 - [근대문학과 경성] - 이하윤 - 버스와 단장短杖
소재지
경성부 동숭정(법문학부), 연건정(의학부), 경기도 고양군 공덕면 하계리 (이공학부)
연혁
대정大正 12년[1923] 11월 경성제국대학 창설위원회 설립, 13년 5월 예과豫科 개교, 15년 4월 학부를 개설, 소화昭和 4년[1929] 3월 법문학부法文學部 제1회 졸업을 보내고 계속해서 5년 3월 의학부 제1회 졸업생을 보내다 7년 1월 학위규칙을 제정하고 수여할 학위를 법法, 문文, 의醫의 3종으로 하다. 13년 4월 이공학부理工學部를 증설하다.
수용정원: 법문=80, 의醫=80, 이공=40 [학년 기준]
[위치]
대학은 도심의 동북에 위치하여 경성의 명승 창경원을 마주하여 의학부 부속의원附屬醫院[대학병원]이 솟아있어 회춘원回春苑을 싸고 의학부, 본관이 있다. 12간 도로를 포함하여 낙타산駱駝山[낙산]을 등진 법문학부[해방후 서울대 문리대 건물], 도서관, 대학본부가 있다. 이 12간 도로를 세상에서 대학로라 칭하고 전차는 없지만 경성전기회사의 버스가 통하여 교통편은 지극히 좋다. 부근에는 의전醫專[경성의학전문학교], 고공高工[경성공업전문학교], 광산전鑛山專[경성광산전문학교], 高商[경성고등상업학교], 여자의전女子醫專[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등이 있어 경성의 학생가를 이루고 있다. 또 이공학부는 여기를 떠나 동북東北 약 2리의 땅에 설립 중인데 교통기관으로서는 대학 예과大學豫科의 소재지[인] 청량리부터 경춘철도로 간다.
학부 개요
경성제대의 학부는 법문法文/의醫/이공理工의 3학부로 되어 예과豫科가 부설되어있으므로 대체의 진로는 예과豫科수료자가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다.
법문학부는 법학法學, 철학哲學, 사학史學, 문학文學의 4개 학과로 법학과는 1류類(사법司法) 2류類(행정行政) 3류類(경제經濟)로 나뉘어 있어 각 과와 함께 필수선택 합하여 27단위를 이수하게 되어 있다. 철학과는 철학, 윤리학, 심리학, 종교학, 미학, 교육학, 중국철학으로 나뉘어 24단위를 이수한다. 사학과는 국사학, 조선사학, 동양사학으로 나뉘었다. 문학과는 국어, 국문학, 조선어, 조선문학, 중국어, 중국문학, 영어, 영문학으로 논이여 있어 24단위를 이수하는 것은 철학과와 같다.
의학부는 다른 대학 의학부와 큰 차이가 없이 (조직組織, 태생胎生을 포함) 생리, 의화醫化, 미생물, 기생충, 병리, 약리, 위생, 예방학豫防醫, 法醫, 내과, 외과, 정형외과, 산부인과, 안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피부비뇨기과, 신경정신과의 전 과를 이수하기로 되었다. 이 외에도 군진의학軍陣醫學, 의사법규醫事法規의 강의를 행한다.
이공학부는 화학과, 물리학과, 토목공학과, 기계공학과, 광산치금鑛山冶金학과, 전기공학과의 7과로 나뉘어 있다.
('경성제대京城帝大의 전모', 『삼천리』, 19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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