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사람 살류! 사람 살류!”
적적한 밤중에 쓸쓸한 마을에는 처참한 여자 목소리가 으스스하게 울리었다. 이 소리를 들은 방원은 더욱 힘을 주어서 눈을 딱 감고 죽어라 내리 짓찧었다. 뼈가 돌에 맞는 소리가 살이 으크러지는 소리와 함께 퍽퍽하였다. 피 묻은 돌이 여기저기 흩어지고 갈갈이 찢긴 옷에는 살점이 묻었다.
동네편 쪽에는 수군수군하더니 구둣소리가 나며 칼소리가 덜거덕거리었다. 방원의 머리에는 번갯불같이 무엇이 보이었다. 그는 손에 주먹을 쥔 채 잠깐 정신을 차려 그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순검…….”
그는 신치규의 배를 타고 앉아서 순검의 구둣소리를 듣자 비로소 자기가 무슨 짓을 하였는지 깨달았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일어났다. 그리고는 옆에 서서 벌벌 떠는 계집에게로 갔다.
“얘! 가자! 도망가자! 너하고 나하고 같이 가자! 자! 어서, 어서!”
계집은 자기에게 또 무슨 일이 있을까 하여 겁을 내어 도망을 하려 한다. 방원은 계집을 따라가며,
“얘! 얘! 네가 이렇게도 나를 몰라주니!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지를 못하니? 자! 어서, 도망가자, 어서 어서, 뒤에서 순검이 쫓아 온다.”
계집은 그대로 서서 종종걸음을 치며,
“싫소! 임자나 가구료, 나는 싫어요, 싫어.”
“가자! 응! 가!”
그는 미친 사람처럼 계집의 팔을 붙잡고 끌었다. 그때 누구인지 그의 두 팔을 마치 형틀에 매다는 것같이 꽉 뒤로 끼어 앉는 사람이 있었다.
“이놈아! 어디를 가?”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도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그는 온 전신에 맥이 풀리어 그대로 뒤로 자빠지려 할 때 어느덧 널판 같은 주먹이 그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정신 차려.”
“네.”
그는 무의식 하게 고개가 숙어지고 말소리가 공손하여졌다.
땅바닥에서는 신치규가 꿈지럭거리며 이리저리 뒹군다. 청승스러운 비명(悲鳴)이 들린다.
방원은 포승 지인 채, 계집은 그대로, 주재소로 끌려가고 신치규는 머슴들이 업어 들였다.
(나도향, '물레방아',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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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이 타작마당에서 그들이 일심이 되었는데 겨우 하룻밤을 지나서 그들은 첫째를 원망하였다. 첫째는 덕호에게서 욕먹은 것보다도, 순사에게 밤새워 매맞은 것보다도, 그들이 자기 하나를 둘러싸고 원망하는 데는 그만 울고 싶었다. 그리고 캄캄한 밤길을 혼자 걷는 듯한 적적함이 그를 싸고도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는 무심히 벼낟가리를 쳐다보았다. 전 같으면 저 벼낟가리들이 얼마나 귀여웠으리요마는…… 그때 저리로부터 순사가 왔다.
첫째는 놀랐다. 가까이 오는 순사는 지금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다 알고, 자기만 잡으려고 오는 듯싶었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푹 숙이며 볏단만 헤치고 있다가, 칼소리가 멀어지매 그는 겨우 안심하고 흘금 바라보았다. 그때 순사의 구둣발에 툭툭 채는 칼은 햇빛에 번쩍번쩍하였다. 순사는 덕호를 만나서 다시 이리로 온다. 그는 또다시 아까와 같은 생각으로 겁을 먹었으나, 그들은 가벼운 궐련내를 던지고 저편으로 지나간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재미나게 하고는, 하하 웃었다. (강경애, 『인간문제』,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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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4정목에서 전차를 내려서 창경원 가는 차를 기다리노라고 안전지대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그곳에 기다리는 두세 사람에 섞여서 왔다갔다할 때에 비로소 길을 스치고 달아오는 바람에서 가을을 느끼고 다시
순사의 덜거덕거리는 칼소리에서 잃었던 정신을 찾은 듯이 눈앞에 붉은 등불을 바라본다. 경찰서-전깃불이 희멍덩하게 켜 있는 곳에 전화통을 붙들고 정복[正服] 하나가 졸고 있는 듯이 까닭도 안 한다. 백양목 그늘에 직할힐소[대기소] 그 속에 역시 정복한 사람-
본정서 전차가 온다. 이것을 타고 자리에 앉아서 지금 막 보고 온 경찰서를 생각하여 본다. 벌써 3개월 이상을 내가 출입하는 경찰서이다.[사회부기자로서] 지금 전화를 쥐고 졸고 있는 순사는 보안계의 누구누구. 그렇게 싫은 경찰서에 지금은 제법 농말을 걸게 되었다. 칼소리가 주는 흥분, 이상한 말씨가 주는 불쾌, 모든 것이 사라지고 지금은 '오하요-', '사요나라'가 제법 유창하게 입에서 흐른다.
-이런 것을 생각하노라니 전차가 종점에 닿는다. (김남천, '귀로-내마음의 가을', 조선중앙일보, 1935.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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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너 같은 놈은 버릇을 가르쳐야지."
한 청년이 숨을 돌려가지고 병화에게 달려들었다.
"어디든지 가자! 하지만 어디냐?"
"비릿비릿하게 경찰서에 갈 거 무어 있니. 대문 밖에라도 나가서 요정을 내자."
"그거 좋은 말이다."
하고 병화가 이번에는 찢어진 외투를 벗어붙이려니까 문간에서 동동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호기스럽게 호령하듯 문 열라는 소리가 순사다. 주부는 구세주나 만난 듯이 얼핏 가서 열었다. 순사는 왜들 떠드느냐고 호령을 하며 들어와서 휘둘러보다가 병화를 유심히 노려본다. 순행 순사의 출현을 두 청년도 반가워하였다. 일본 순사이기 때문이다. 잔뜩 긴장하였던 마음이 풀리니까 다시 취해들 올라왔다. 순사가 보기에는 모두 주정뱅이 골라서 대강 이야기를 듣고 모두 파출소로 가자고 한다. 주부와 경애도 가자고 하였으나 경애만 나섰다.
[...]
"이리 오너라..."
잠깐 있으려니 밖에서 소리를 치며 꼭 지친 문을 밀치고 우중우중 들어오는 구둣소리가 난다. 경애와 병화는 가슴이 덜컥하는 한순간이 지니니까 숨이 저절로 돌아나오며 마음이 제대로 가라앉는다. 머리끝까지 화끈 솟아올랐던 피가 쭉 내려앉는 것 같다. 중문간에서 환도가 절그럭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나면서,
"주인 있소?"
하고 소리를 친다.
경애가 마루 끝으로 나섰다.
"호구조사요. 홍경애가 누구요?"
장부를 손에 펴든 순사가 마룻가에 와서 서며 집 안을 휙 돌려다본다.
(염상섭, 『삼대』,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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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될 것인가? 의장 가야마 선생은 곧 내가 나설 순서를 지적할 것이다. 문인보국회 간부들은 그 어마어마한 고급관리와 고급군인들의 앞에서 창씨 안한 내 이름을 외치면서 찾을 것이다!'
위에서 누가 내려오는 소리가 난다. 우선 현은 변소로 들어섰다. 내려오는 사람은 절거덕 절거덕 칼소리가 났다. 바로 이 부민관 식장에서 언젠가 한번 우리 문인들에게, 너희가 황국신민으로서 충성하지 않을 때는 이 칼이 너희 목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하던 그도 우리 동포인 무슨 중쇠인가 그 자인지도 모르는데 절거덕 소리는 변소로 들어오는 눈치다. 현은 얼른 대변소 속으로 들어섰다. 한참만에야 소변을 끝낸 칼소리의 주인공은 나가 버리었다. (이태준, '해방전후',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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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 스무 명도 더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 얼음 깨는 기구를 가지고,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이고 있는 사람이 섞여 있었다. 순사巡査가 두 명 무엇인지 그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나의 낫세밖에 안 되어 보이는 사람들었다. 두 명의 순사가 지휘하는 대로 그대로 그들은 움직이었다. 두 명의 순사 중에 한 명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 동정에 여우털을 단 외투를 입고 있으면서도, 그 순사는 어인 까닭인지 시퍼런 코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나의 이십오 년 평생에 시퍼런 코를 흘리는 순사를 그에게서 비로소 발견하였다. (박태원, '피로',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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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세의 노동자. 전경부前頸部의 광범한 팽륭澎隆. 돌출한 안구. 또 손의 경미한 진동. 분명한 '바세도우씨'병. 그것은 누구에게든 결코 깨끗한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그의 죄우에 좌석이 비어 있어도 사람들은 그곳에 앉으려 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서 두 칸통 떨어진 곳에 있던 아이 업은 젊은 아낙네가 그의 바스켓 속에서 꺼내다 잘못하여 시멘트 바닥에 떨어뜨린 한 개의 복숭아가 굴러 병자의 발 앞에까지 왔을 때, 여인은 그것을 쫓아와 집기를 단념하기조차 하였다.
구보는 이 조그만 사건에 문득 흥미를 느끼고, 그리고 그의 대학노트를 펴들었다. 그러나 그가, 문 옆에 기대어 섰는 캡 쓰고 린네르 쓰메에리 양복 입은 사나이의, 그 온갖 사람에게 의혹을 갖는 두 눈을 발견하였을 때, 구보는 또 다시 우울 속에 그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다.
[...]
구보는 벗이, 그럼 또 내일 만납시다. 그렇게 말하였어도, 거의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이제 나는 생활을 가지리라. 생활을 가지리라. 내게는 한 개의 생활을, 어머니에게는 편안한 잠을...
평안히 가 주무시오. 벗이 또 한 번 말했다. 구보는 비로소 그를 돌아보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하였다. 내일 밤에 또 만납시다. 그러나 구보는 잠깐 주저하고, 내일, 내일부터, 나 집에 있겠소, 창작하겠소...
"좋은 소설을 쓰시오."
벗은 진정으로 말하고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참말 좋은 소설을 쓰리라. 번番 드는 순사가 모멸을 가져 그를 훑어보았어도 그는 거의 그것에서 불쾌를 느끼는 일도 없이, 오직 그 생각에 조그만 한 개의 행복을 갖는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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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를 짓던 손들을 멈추고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귀를 기울였을 때에는 이미 뒤늦은 일로 대체 누가 꼬드겨서 알았던지, 세 명의 '사복'이 벼락같이 미닫이를 열어제치고 방 안으로 달려들었던 것이다. (박태원, 『천변풍경』,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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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할 말이라는 게 겨우 그거더냐?"
초봉이는 시쁘듬하게 형보를 내려다본다.
"그렇다. 그러니깐, 어서 기저귀 뭉뚱그려서 들쳐 업구 날 따라나서거라."
"괜히 허튼 수작 하지 말구 냉큼 나가. 저엉 그렇게 추근거리다가는 순사 불러 댈 테니…… 무슨 권한으루다가 남의 집 내정에 들어와설랑은 되잖은 소릴 지껄이는 게냐? 법 무서운 줄두 모르구서……."
"법? 흐흐 법?"
형보는 저야 기가 막히다고 상을 흐트린다.
"……법? 그거 좋지! 그럼 그렇게 허까? 내라두 가서 순사라두 우선 불러오라느냐? 순사 세워 놓구 담판하게?"
"무척 순사가 네 편역 들어줄 줄 알았더냐?"
"이 애 초봉아! 아니껍다! 내가 순사가 무서울 배면 이러구서 네게 오질 않는다. 불러올 테거던 불러오느라, 가택침입죄루다 이십구 일 구류밖에 더 살라더냐? 그보다 더한 몇 해 징역두 상관없다. 종신 징역이나 사형은 아닐 테니깐, 징역 살구서 뇌여 나오는 날이면, 응? 알겠니?"
형보는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뽀도독 소리가 역력히 들리게 이를 간다.
"……약차하면 순사 보는 데서, 저 어린것을 칵 찔러 죽이구, 아주 시언하게 그래 버리구서 잽혀가구 말 테다. 순사 불러 댈 테거든 불러 대라, 불러 대!"
초봉이는 고만 푸르르 몸을 떤다. 그가 순사를 불러 댄다고 한 것은 정말 순사를 불러 댈래서 한 말이 아니라 엄포를 하느라고 그런 것인데, 형보는 그쯤 서둘러 대면서 덜미를 치고 나서니, 정말로 순사를 불러와야 하게 일은 절박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막상 순사를 불러 대고 보면 저런 환장한 놈인 걸, 지레 덤태가 날 것이고, 그러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이 다급하기만 했다. (채만식, 『탁류』,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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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오죽이나……."
윤직원 영감은 팔을 부르걷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땅― 치면서 성난 황소가 영각을 하듯 고함을 지릅니다.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守令들이 있더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넌 다 지내가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자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 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 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채만식, 『태평성대』,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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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순사의 생각엔 양복벌이나 빼앗아 입고, 돈이나 몇십 원, 돈 백 원 받아 쓰고, 쌀 나무며 찬거리나 조금씩 얻어먹고, 술대접이나 받고 하는 것은 아무나 예사로 하는 일이요, 하여도 죄 될 것이 없고, 따라서 독직이 되거나 죄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적어도 독직이나 죄가 되자면, 몇만 원 집어먹고서 소위 팔자를 고친다는 둥, 허리띠를 푼다는 둥의 수준에 올라야 비로소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맹순사는 몇만 원은커녕, 한 번에 백 원 이상을 얻어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고로 맹순사는 스스로 청백타 하던 것이었다.
[...]
모자도 정복도 패검도 다 옛것이요, 완장 한 벌로써, 해방 조선의 새 산수가 된 맹 순사는 xx파출소로 가기 위하여 종로를 동쪽으로 걸었다...
옛날의 순사와 꼭같이 차리고 다녔건만 맹 순사는 웬일인지 우선 스스로가 위엄도 없고 신도 나는 줄을 모르겠고 하였다. 만나거나 지나치는 행인들의 동정이, 전처럼 조심하는 것 같은, 무서워하는 것 같은 기색이 없고, 그저 본숭만숭이었다. 더러는 다뿍 적의와 경멸의 눈초리로 흘겨보기까지 하였다.
함부로 체포도 아니하고, 위협도 아니하고, 뺨 같은 것은 물론 때리지 못하게 되었고 하니, 전보다 친근스러워하고 안심한 얼굴로 대하고 하여야 할 것인데, 대체 웬일인지를 모르겠었다. (채만식, '맹순사', 1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