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오라질 년, 조랑복은 할 수가 없어, 못 먹어 병, 먹어서 병! 어쩌란 말이야! 왜 눈을 바루 뜨지 못해!"
하고 앓는 이의 뺨을 한 번 후려갈겼다. 흡뜬 눈은 조금 바루어졌건만 이슬이 맺히었다. 김 첨지의 눈시울도 뜨끈뜨끈하였다. 이 환자가 그러고도 먹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다.
" 이런 오라질 년! 조밥도 못 먹는 년이 설렁탕은. 또 처먹고 지랄병을 하게."
라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못 사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설렁탕을 사줄 수도 있다. 앓는 어미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개똥이(세살먹이)에게 죽을 사줄 수도 있다─ 팔십 전을 손에 쥔 김첨지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현진건, '운수 좋은 날', 『개벽』, 19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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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삼이, 이 근처에 설렁탕집 있나? 저녁을 안 먹어 좀 시장한데...?"
"에구 어쩌나, 저녁두 못 잡숫구... 진지는 있지마는 반찬이 무에 있어야지."
필순은 당황하였으나, 이런 귀객을 어찌하는 수도 없었다.
"어쩌다 저녁상을 받으실 새도 없이 그놈들에게 끌려다니셨에요?"
원삼은 설렁탕집으로 나서며,
"이 아씨두 그저 잔입으루 계신뎁쇼. 두 그릇 시켜 올까요?"
하고 필순을 치어다본다.
"난 싫어요. 먹구 싶지 않아요."
"그럼 세 그릇 시키게. 자네두 먹어야지"
"아니올시다. 저는 먹었습니다."
원삼이가 나간 뒤에 필순은 부엌으로 들어가서 상을 차려다가 길체로 놓으며, 설렁탕이 오기를 기다린다.
[...]
덕기는 필순의 대답을 기다리는 모양이나 필순으로서는 난처하였다. 말을 할까말까 망설이는 판에, 원삼이 설렁탕을 시켜 가지고 들어섰다.
덕기를 방으로 올려앉히고 상을 차려내면서, 어젯밤에는 경애가 병화 앞에서 이렇게 시중을 들었으려니 하는 생각을 하니 얼굴이 저절로 붉어 오르는 것을 깨달았다.
"이리 가지고 와서 함께 자십시다요."
"아녜요. 저 이따 먹겠어요."
필순은 귀밑까지 발개지며 문턱으로 비켜 앉는다.
"식습니다. 그럼 여기서라두 잡숫죠."
원삼이 설렁탕 한 그릇을 집어다가 난로 위에 놓아준다. (염상섭, 『삼대』,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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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노들을 향하고 철교를 건너가는 동안에, 또 서울을 향하고 다시 건너오는 동안에 숭은 바쁘게 이쪽 저쪽을 돌아보았으나 정선인 듯한 사람은 없었다.
“문안으로 들어갑시다.”
하고 숭은 운전수에게 명을 내렸다. 그 자동차의 속력이 느려서 정선의 자동차를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면 당장에 뛰어내려서 한바탕 분풀이라도 하고 싶은 맘이 났으나, 숭은 일찍 한 선생이 하던 것을 생각하고 꾹 참았다.
어떤 손해를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일에 말썽을 부리는 것이 조선 사람의 통폐거니와, 이것은 피차에 받은 손해를 더 크게 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설렁탕 그릇을 목판에 담아서 어깨에 메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사람이 다른 자전거와 충돌하여 둘이 다 나가넘어져서 설렁탕 그릇을 깨뜨리고는 끝이 없이 둘이서 네가 잘못이니, 내가 잘못이니 하고 경우 캐고 욕하고 쥐어박고 하는 것을 보고 한 선생이 하던 말이다.
“우리 동포들의 싸움은 개인싸움이나 당파싸움이나 이런 것이 많다. 증이파의甑已破矣라 앞에 할 일을 하면 고만일 것을 지난 일의 책임을 남에게 밀려고 아무리 힘을 쓰기로 무슨 효과가 있나.”
하고 충돌된 두 자전거더러,
“파출소에를 가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집으로 가라.”
는 제의를 하였으나, 한 선생의 제의는 두 싸움꾼에게 통치 아니하였다.
숭은 자동차 운전수에게 대해서 시비를 하고 싶은 맘이 억제하기 어려울 지경이었으나 한 선생의 말을 생각하고 꾹 참았다. (이광수, 『흙』,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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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료茶寮에서 나와 벗과 대창옥大昌屋으로 향하며, 구보는 문득 대학 노트 틈에 끼어 있었던 한 장의 엽서를 생각하여 본다...
엇 옵쇼. 설렁탕 두 그릇만 주...
맞은편에 앉아 벗은 숟가락 든 손을 멈추고 빤히 구보를 바라보았다. 그 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물었는지도 모른다. 구보는 생각의 비밀을 감추기 위하여 의미 없이 웃어 보였다...
구보는 소년과 같이 이마와 콧잔등이에 무수한 땀방울을 깨달았다. 그래 구보는 바지 주머니의 수건을 꺼내어 그것을 씻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름 저녁에 먹은 한 그릇의 설렁탕은 그렇게도 더웠다.
이곳을 나와, 그러나 그들은 한길 위에 우두커니 선다. 역시 좁은 서울이었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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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 잡수셨습니까?"
올챙이는 오꼼 일어서면서 공순히, 그러나 친숙히 인사를 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속으로야, 이 사람이 저녁에 다시 온 것이 반가울 일이 있어서 느긋하기는 해도, 짐짓,
"안 먹었으면 자네가 설넝탱이라두 한 뚝배기 사줄라간디, 밥 먹었나구 묻넝가?"
하면서 탐탁잖아하는 낯꽃으로 전접스런 소리를 합니다.
"아, 잡수시기만 하신다면야 사드리다뿐이겠습니까?"
생김새야 아무리 못생겼다 하기로서니, 남의 그런 낯꽃 하나 여새겨 볼 줄 모르며, 그런 보비위 하나 할 줄 모르고서, 몇천 원 더러는 몇만 원 거간을 서 먹노라 할 위인은 아닙니다.
옳지, 방금 큰소리가 들리더니, 정녕 안에서 무슨 일로 역정이 난 끝에 밥도 안 먹고 나오다가, 그 화풀이를 걸리는 대로 나한테 하는 속이로구나, 이렇게 단박 눈치를 채고는 선뜻 흠선을 피우면서, 마침 윤직원 영감이 발이나 넘는 장죽에 담배를 재어 무니까, 냉큼 성냥을 그어 댑니다.
"……그렇지만 어디 지가 설마한들 설렁탕이야 사드리겠어요! 참 하다못해 식교자라두 한 상……." (채만식, 『태평천하』, 1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