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형은 아내가 되었다.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내 것이 되었다. 그러고 미국에 가서 대학교에 들어가서 학사가 되고 박사가 될 수 있다. 사랑스러운 선형과 한차를 타고 한배를 타고 같이 미국에 가서 한집에 있어서 한 학교에서 공부할 수가 있다. 아아, 얼마나 즐거울는지. 그러고 공부를 마치고 나서는 선형과 팔을 겯고 한배로 한차로 본국에 돌아와서 만인의 부러워함과 치하함을 받을 수가 있다. 아아, 얼마나 즐거울는지. 그러고 경치도 좋고 깨끗한 집에 피아노 놓고 바이올린 걸고 선형과 같이 살 것이다. 늘 사랑하면서 늘 즐겁게…… 아아, 얼마나 기쁠는지. 형식은 마치 어린아이 모양으로 기뻐하였다. 장래도 장래려니와 지금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이 더할 수 없이 기쁘다. 그래서 이 생각하는 동안을 더 늘일 양으로 일부러 광화문 앞으로 돌아서 종로를 지나서 탑골공원을 거쳐서…… 그래도 집에 돌아오는 것이 아까운 듯이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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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욱은 음악을 배운다. 한번은 사현금을 타다가 영채더러,
"집에서는 음악 배운다고 야단이야요. 그것은 배워서 광대 노릇을 하겠니? 하시고 학비도 아니 준다고 하지요. 내가 울고불고 떼를 쓰며 이것을 배우게 했어요. 집에서는 난봉났다 그러시지요. 오빠께서는 좀 나시지마는..."
하고 웃었다. 한참 재미롭게 사현금을 타다가도 밖에서 부친의 기침 소리가 나면 얼른 그치고 어리광하는 듯이 진저리를 치며 웃는다. 영채도 사현금 소리가 좋다 하였다. 서양 악곡(樂曲)을 많이 들어 보지 못하였으므로 탑골공원의 음악도 별로 재미있게 아니 여겼더니, 이제는 서양 악곡의 묘미도 차차 알아 오는 듯하다. (이광수, 『무정』,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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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빈이는 이리저리 쏘다니다 파고다공원에 들어섰다. 거북비碑를 구경하고, 팔각정을 구경하고, 탑 있는 데로 가까이 와 보니, 웬 갓 쓴 어른 하나가 탑 밑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1919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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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빈이는 먼저 영신환靈神丸 장사를 해 보았다. 학교에서 나오는 길로 저녁때까지 공원과 정거장과 음식점으로 다니며 팔면, 잘 팔리는 날은 하루 열봉은 팔았다. [1921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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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빈이는 어서 시간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두 시간이나 앞서 파고다공원으로 왔다. 비는 개었다. 나무 눈들이 행결 부풀어 올랐다. 송빈이는 팔각정에 앉아 혹은 탑 뒤에 숨어 서서 물 오르는 나뭇가지들의 꽃 필 앞날을 제 가슴속에도 느껴보면서 어서 은주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네시가 되었다. 날아가는 새나 붙들 것처럼 손바닥이 다 따끈따끈해진다. 오분이 지나고 십 분이 지나고, 사람들은 모두 유심히 보는 것 같고, 다섯 시가 그냥 되어 버린다. 다섯시가 지나니까 시간은 아까와는 반대로 십분 이십 분이 휘딱휘딱 된다. 어둡도록 은주는 오지 않는다. 송빈이는 쭈루루 사랑으로 돌아왔다. 어멈더러 물었다.
"마냄께서만 잠간 다녀가셨세요."
"무래시지 않어?"
"학생 언제 떠난대더냐구요?"
이날 밤도, 또 다음날 오후 한 시에도 파고다공원에도 은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송빈이는 어슬어슬해 공원을 나설 때, 은주가 달아나자던 그 자리에서 달아나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1923년경] (이태준, 『사상의 월야』,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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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는 탑동공원 앞 정류장에 와 섰다. 먼 곳에서는 홰를 치며 우는 닭의 소리가 새벽 서릿바람을 타고서 들려온다. 그러자 어떠한 여자 하나가 내가 서 있는 바로 차장대 층계 위에 어여쁜 발을 올려놓는 것이 보였다. 아직 탈 사람이 별로히 없으리라고 지레짐작에 신호를 하였다가 그것을 보고서 다시 정지하라는 신호를 하였다. 한 다리가 승강대 위에 병아리 모양으로 깡충 올라오더니 계란같이 웅크린 여자가 툭 튀어 올라와서 내 앞을 지나가는데, 머리는 어디서 어떻게 부시댁이를 쳤는지 아무렇게나 흩어진 것을 아무렇게나 쪽지고, 본래부터 난잡하게 놀려고 차리고 나섰는지는 알 수 없으니 옥양목 저고리에 무슨 치마인지 수수하게 차렸는데 손에는 비단으로 만든 지갑을 들었다. 그리고 그가 내 옆을 지날 때 일본 여자들이 차에 탈 적이나 기생들이 차에 오를 적에 나의 코에 맞히는 분 냄새와 향수 냄새 같은 향긋한 냄새가 찬바람에 섞이더니 나의 코에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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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기는 따뜻한 일기다. 그런데 어저께 나는 우리 동료들에게서 이상한 소문을 하나 들었다. 내가 맨 처음 어느 날 새벽에 파고다 정류장에서 만났던 때와 같이 그 여자가 역시 새벽마다 전차를 타고 의주통으로 향하여 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 모습과 또는 행동이 여러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나의 기억으로 내 머릿속에 그려놓은 것이 꼭꼭 들어맞은 까닭에 그 여자로 인정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서 일종의 호기심이 생기어서 나의 당번도 아닌데 남이 가지고 가는 새벽 첫차를 같이 탔다. 그러고서는 전차가 파고다공원 앞에 정거를 할 때에 나는 얼핏 바깥을 내다보았다. 혹시 내가 탄 전차와 상치나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어서 많은 요행을 기대하는 생각으로 그 여자를 만나보려 할 때 과연 그 여자가 전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자뿐만 아니라 아니라 그 옆에는 어떠한 남자 하나가 그 여자의 어깨에 자기 어깨가 닿을 만큼 붙어 서서 무슨 이야기인지 정답게 하는 것을 보았다. (나도향, '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 『개벽』, 19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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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주저 없이 야시장 군중 속에 몸을 내던졌다. 수백 명 수천 명 또 수백 명 수천 명.... 앞으로 뒤로 밀리는 장안 사람의 물결은 소화4년도[1929] 조선총독부 주최의 조선박람회 구경 온 시골 마나님, 갓 쓴 이들을 한데 휩쓸어 이곳저곳에서 물결치고 있다. 오래간만에 나온 까닭일까. 나는 그들을, 이 무리들을, 이 무리들의 갈 곳 몰라하는 발길을, 이 무리들의 부질없는 시간 소비를, 결코 멸시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많은 군중 속에 내 몸을 내어 던지는 데서 깨닫는 비할 데 없이 크나큰 기쁨을 맛보고 있는 나 자신을 나는 발견하였다. 하여튼 이 주일 만의 첫 산보가, 나오는 길로 이만큼만 축복받았으면 고만이다. 무슨 별다른 계획은 없었지마는 나는 이 위대한 행렬 속에서 나와서 파고다공원 문 앞에 우두머니 섰었다. 어디로 갈까. 아까도 말하였지만 내 주머니 속에는 돈-이십삼 원 사십오 전-이 들어 있다. 어디로 갈까. 더 간대야 덜 간대야 오 분씩은 틀리지 않는 내 팔뚝시계는 열 시 이십칠 분 전에서 재깍거리고 있다. 어디로 갈까. 나는 두어 발자국 바른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 서너 발자국 왼편으로 걸어갔다. 그때, 때마침 한강 나가는 버스가 왔다. (박태원, '적멸',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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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은 최 참봉을 보자 저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담 밑이 양지라 해서 거기서 어른거리는지도 모르겠으나 지금 자기네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 싫기도 하고 날마다 대령하는 축이 아직 안 모여서 스라소니 같은 지 주사만 지키고 들어앉았는 이 사랑에 수원집이 나왔으면 최 참봉밖에 만날 사람이 누굴까. 최 참봉이란 늙은 오입쟁이다. 파고다 공원에 가서 천냥만냥하는축이나 다름없으나 어디서 생기는지 인조견으로 질질 감고 번지르르한 노랑 구두도 언제 보나 올이 성하다. 또 그만큼 차리고 다니기에 파고다 공원에는 안 가는 것이다. (염상섭, 『삼대』,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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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천천히 걸으며 어디로 가나? 하며 생각해 보았다. 암만 생각해 보아도 갈 곳이 없다. 그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종로까지 왔다. 종로도 이젠 적적한 감을 주었다. 간혹 사람들이 다니기는 하나 자기와 같이 갈 곳이 없어 헤매는 사람들 같지 않았다. 모두 활개를 치며 분주히 걸었다. 그리고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레코드 소리만이 요란스럽게 들린다.
그는 파고다공원 앞까지 와서 우뚝 섰다. 그리고,
"그 동무의 집에라도 가볼까?"
이렇게 중얼거렸다. 전날 밤에 이 파고다공원에서 만났던 동무의 생각이 얼핏 났던 것이다. 그는 조선극장 앞을 지나 안국동 네거리로 들어섰다. (강경애, 『인간문제』,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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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 은은한 포도 위로 사람의 떼가 마치 한가한 물줄기처럼 밀려오고 이 짝에서도 밀려가고 수없이 엇갈리는 사이를 초봉이는 호젓하게 종로 네거리로 향해 천천히 걷고 있다.
가도록 황홀한 밤임에는 다름없었다. 그러나 오가는 사람들을 무심코 유심히 보면서 지나치는 동안 초봉이의 마음은 좋은 밤의 매력도 잊어버리고 차차로 어두워 오기 시작했다. 보이느니 매양 즐거운 얼굴들이지 저처럼 액색하게 목숨이 밭아 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성 불렀다.하다가 필경 공원 앞까지 겨우 와서다.
송희보다 조금 더 클까 한 아기 하나를 양편으로 손을 붙들어 배착배착 걸려 가지고 오면서 서로가 들여다보고는 웃고 좋아하고 하는 한 쌍의 젊은 부부와 쭈쩍 마주쳤다.
어떻게도 그 거동이 탐탁하고 부럽던지, 초봉이는 그대로 땅바닥에 가 펄씬 주저앉아 울고 싶은 것을, 겨우 지나쳐 보내고 돌아서서 다시 우두커니 바라다본다. 보고 섰는 동안에 생시가 꿈으로 바뀐다. 남자는 승재요, 여자는 초봉이 저요, 둘 사이에 매달려 배틀거리면서 간지게 걸음마를 하고 가는 아기는 송희요…….
번연한 생시건만, 초봉이는 제가 남이 되어 남이 저인 양 넋을 잃고 서서 눈은 환영을 쫓는다. (채만식, 『탁류』,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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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의 설비가 없는 까닭에
마나님들은 때때로 쓰레받기를 들고 이곳으로 나옵니다.
오후가 되면 하누님은
절대로 필요치 않는 제육일第六日의 남조물濫造物
이 쓰레기통에 모아놓고는
탄식을 되풀이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김기림, '파고다 공원', 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