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을 처음 마늘쪽 같은 것을 사왔을 때는 그 새주둥이같이 뾰죽하고 기름기 있고 새파란 싹이 빠금히 터오르는 것만 해도 신기하기 짝이 없더니 그 싹도 벌써 반 자 길이나 자라는 동안 이젠 눈에 익어 그런지 시들머들해지고 말았다.
어서 꽃이 피기나 기다릴 뿐이다.
어제는 진고개를 지나다 무슨 꽃인지는 모르나 푸른잎이 소담스럽고 꽃은 주홍인데 값도 싸고 하여 십 전에 한 묶음을 사들고 왔다.
김 군이 오늘 놀러 왔다가 내가 돈 걱정을 하는 것을 보고 웃음엣말이겠지만
"이 사람 저런 건 안 사면 어드런가?"
하고 꽃병을 흘겨보았다.
나는 멍하니 앉았다가 이런 대답을 하고 서로 웃고 말았다.
"그러니 이 사람 꽃 사는 기분까지 바리구 무슨 맛에 사나……." (이태준, '낙서',『신생』, 1932.1.)
**
여름도 중복이 지난 어느 날 새벽이다. 보건으로 목적으로 남산에 올라갔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진고개 어느 화초가가 [가게]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 점두에 진열된 그 모든 사랑스럽고 또 아름다운 화초들이 우리의 상풍경한 뒷터전에서도 그대로 아름답고 또 사랑스러우리라고는 결코 자신할 수 없었으나, 그래도 그 불건강한 뒤뜰이 내게 가져다주는 불쾌한 우울과 그러한 것들을 이제도 가련한 식물들이 얼마쯤이라도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 나는 꽃에 대하여 너무 아는 것이 없었다. 젊은 꽃장수는 벌써부터 내 곁에 와 서 있고, 나는 또 나대로 마음속에 몇 가지의 화초를 선택하였으나, 그러면서도 나는 주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화초란 혹은 세상에 흔한 '다알리아'나 '코스모스'니, 또는 '아네모네'니 하는 그러한 것들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어느 꽃이 어느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에 대한 지식이 확실하지 않아, 내가 코스모스일지도 모른다 생각한 꽃이, 혹은 다알리아일지도, 아네모네일지도, 또는 천만 의외로 바로 그것이 아내가 말하던 옥잠화라는 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꽃이름에 우선 그러하매 화초 시세에 관하여는 애당초에 어림이 서지 않아, 그것이 한 일 원 한다드라도 오히려 싼 것인지, 단 십 전을 달라드라도 비싼 것인지, 내가 알 턱이 없는 일이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나는 갑자기, 나의 이 방면의 무지를 이 일면식도 없는 꽃장수 앞에 폭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의 불유쾌함을 마음 깊이 느끼고 왜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던가 하고, 새삼스레이 그러한 것을 뉘우치기조차 하였다.
마침내 꽃장수는 무엇을 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기다려도 아무 말이 없는 나를 좀더 잠자코 보고 있을 수가 없었을 뿐 아니라, 어쩌면 그는, 내가 은근히 그대로 그곳을 떠나려는 눈치를 채였든 것인지도 모른다. 글쎄─ 하고, 나는 모든 화초를 새삼스러이 둘러보며 어디 무어 쓸 만헌 게…… 하고 불쑥 그러한 말을 하여보았다. 그러나 나의 위인이, 그런 무책임한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은 뒤에 그대로 그곳을 떠나버린다든 그런 만큼 대담하지 못하다. 이제 이르러서는 이미 아무런 꽃도 나는 그다지 사고 싶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시라도 바삐 아무런 꽃이든 사 가지고 이곳을 떠나여야만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남의 점두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 하나 흥정도 해보는 일 없이 떠날 때, 젊은 꽃장수는 응당 나를 욕할 게다. 그러나 산다면 무엇을─ 나와 꽃장수 사이에 짧은 교섭에 있어, 결코 나의 무지는 폭로되지 않아야 한다.
나는 마침내 내 발 아래, 나팔꽃을 발견하고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었다. 나팔꽃쯤이면 나도 그리 망령된 수작을 하지는 않으리라는 것보다도, 내가 그 경우에 꽃장수와 반드시 교섭을 갖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나팔꽃이나 그저 그러한 것을 가지고서밖에는 결코 다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꽃장수는 민첩하게, 제 허리를 굽히고, 네, 이것 말씀이죠, 요게 좋습니다, 요놈이 다홍꽃, 요놈은 무라사끼, 요렇게 두 개 사가지고 갑쇼, 값은 한 분에 오십 전씩입니다마는 두 분을 사신다면 십 전을 감해 모두 구십 전에 드리죠.
나는 그가 부른 값이, 얼마나 비싼 것인지 또 싼 것인지 알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짐짓 어이없는 표정을 하고 얼마? 둘에 구십 전? 어림두 없는 소리 말우, 모두 오십 전만 합시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가 시세도 모르면서 에누리를 너무 하지는 않았나, 그래 이 젊은 꽃장수가 나를 욕하지나 않을까, 그러한 것을 은근히 염려하였으나, 다음 순간, 그가 선뜻, 그럭헙쇼 하고, 신문지와 노끈을 끄내는 것을 보고는, 좀더 깎을 것을 그러지는 않았나, 이십오 전씩이나 주고 이런 것을 사는 사람이란 나밖에 혹은 없지나 않을까, 하고, 나는 객적게스리 두어 번 하고, 꽃장수에게, 중도에서 풀러지지 않게스리 꼭 좀 묶으라고 명령하였다.
나는 그 흥정을 잘하였는지 못하였는지를 모른다. 그러나 그 결코 업신여길 수 없는 중량의 것을 둘이나,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집까지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을 때 그것은 단 오십 전어치의 무게가 아니었다. 길 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전신에 불쾌하게 느끼며, 그래도 나는 중도에서 세 번 이상을 쉬는 일 없이 무사히 집까지 그것들을 운반하였다. (박태원, '화단의 가을', 매일신보, 1935.10.)
**
그러나 본정 길거리도 기호의 예상과는 어그러져 전등불만 쓸데없이 밝고 사람의 그림자는 드물었다.
[...]
─ 오래간만에 어디 가 차나 한잔 먹을까?
생각하며 기호는 천천히 걷고 있는데 별안간 오른편으로 오색꽃이 눈이 부시게 피어 흩어진 진열창이 눈에 띄었다. 맑은 유리 속 대낮 같은 전등불 밑에 한여름 대낮의 꽃밭같이 벌어진 아롱다롱한 색채. 아름답다느니보다도 신선한 풍경이었다.
Dear path, alas! where grows
Not even one lonely rose…… [ E.A. 포우 'F에게']
찬란한 꽃다발 가운데 하얀 종이에 씌어진 글발. 기호는 발을 멈추고 서서 들여다보았다. 알아볼 사람이 별로 많지 못함직한 이런 시구를 이곳에 써 내놓는 이집 주인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이것도 허영심을 노리는 교묘한 상업 정책일까. 그러나 어쨋든 아름다운 구절이라고 기호는 생각하였다. 어디서 본 듯도 한 구절이라고도 생각했으나 영어책을 내던진 지 벌써 십년이 넘는 그로서는 그것이 누구의 글인지 도저히 알아낼 수는 없었다.
─ 로즈. 장미는 무엇을 의미하던가. 카네이션은 사랑의 꽃이라겠다.
잠깐 정신이 팔려 섰는데,
"무얼 그렇게 보나."
별안간 어깨를 툭 치는 사람이 있다. 기호는 돌려다보자,
"어 이거 웬일인가." 하면서 돌아서서 손을 내밀었다. 차디찬 기호의 손을 불덩이같이 이글이글 끓는 손이 덥석 쥐고 격렬하게 흔든다. (유진오, '가을', 1939)
**
점심을 마치고 나선 세 흰모시옷의 처녀는 명치정으로 나가 진고개를 걸었다. 책사로 들러 신간들을 대강 훑어 보고 나와 화옥은 캔디를 사고, 소춘은 꽃을 사고 든 지 한 달이 채 못되였다는 순남의 새아파트로 왔다. (이태준, 『행복에의 흰손들』, 1942 *시간적 배경은 1937-8년경)
→
**
은심은 오늘부터 방학이라 느직이 조반을 먹고 진고개로 나섰다. 눈이 아직 녹지 않은 것이 좋았다. 은심은 꽃집 앞을 지나다 발을 멈춘다. 얼음쪽 같은 유리창 안에는 희고 붉은 '카네이션'과 새파란 '아스파라거스'가 무데기무데기 어울어졌다. 발에서 꺾듯이 급하게 들어가 서너송이를 골라 샀다. 그길로 찻집에 들어가 진한 '커피'를 한 잔 마시었다. 입에서는 '커피' 향기, 품에서는 '카네이션'의 향기, 은심은 더욱 '서양'이 문명'이 즐거워진다. 그 길로 '마루젠' 이층으로 왔다. 서양 잡지들이 꽃집처럼 색채 현란하게 꽂혀 있다. (이태준, 『청춘무성』, 1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