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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喪

category 친절한 구보씨 2019. 5. 7. 20:01

시체는 발상 안한 대로 침대차에 옮겨서 집으로 모셔다가 빈소를 아랫방으로 정하고 안치하였다. 발상에 상훈은 곡을 아니하였다. 이것이 또 문젯거리가 되었으나, 상훈은 내친걸음에 뻗대버렸다. 사실 눈이 보송보송하고 설운 생각이라고는 아니 났다. 그래도 울지 않는 자기가 눈이 통통히 붓도록 눈물을 짜내는 수원집이나 '어이, 어이' 하고 헛소리를 내는 창훈보다는 월등히 낫다고 상훈은 생각하는 것이다. 

상훈의 존재는 완전히 무시되었다. 덕기는 깃옷만 안 입었을 따름이지 승중상承重喪을 선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상꾼도 상훈에게는 절 한 번 뿐이요, 덕기에게로 모여들어서 이야기를 하고 모든 분별을 창훈이 휘두르면서 덕기에게 허가를 맡거나 사후 승낙을 맡는 형식만 취하였으나, 상훈에게는 누구나 접구를 안하려 하였다. 상훈은 꾸어다놓은 보릿자루 모양으로 사랑 안방 아랫목에 멀거니 앉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덕기로서는 부친에게 일일이 품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무시를 당하는 부친이 가엾어서도 그렇고 도리로도 그러하였다. 그러나 상훈은 절대 무간섭주의였다. 무슨 말을 물으나, 
"너 알아 하려무나, 의논들 해서 좋도록 하렴."
할 뿐이다. 거죽은 좋으나 그만큼 속은 토라졌던 것이다. 그러느라니 덕기가 중간에서 성이 가시었다. 성이 가신 것은 고사하고 일이 뒤죽박죽으로 두서를 차리지 못하고 돈만 처들어갔다. 주인 부자가 이 모양이니, 누구나 먹을 콩 났다고 눈을 까뒤집고 덤비는 축들 뿐이라, 나중에는 저희끼리 으르렁대고 저희끼리 헐어내기에 상두꾼들이 악다구니들을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이럭저럭 7일장으로 발인을 하게 되었다. 누가 보든지 호상이었다. 상제는 프록코트를 입으려 하였더니 역시 제복을 입고 삿갓가마를 탔다. 그 외에는 200여 대의 인력거가 뱀의 꼬리같이 뻗쳤다. 
"잘 나간다. 팔자 좋다! 세상은 고르지두 못하지. 나 죽어 나갈 제는 열두 방맹이 아니라 스물 두 방맹이는 되렸다!"
아침밥도 못 먹고 모여 선 구경꾼들이 허튼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얼마나 크고 작은 죄악과 불평과 원성이 따르고 남는지를 뉘라 알랴.
이리하여 조부의 일대는 오늘로 영결하였다. (염상섭, 『삼대』, 1931)

 

 

**

이제 그의 생활의 변화는 죽음으로밖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최주사의 울퉁불퉁 푸른 힘줄이 삐져 보이는 두 손은 약가방만을 어루만지다가 그 생명을 잃을 것이다.

최주사는 저 모르게 가방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쇠가죽 누런 장식…… 그것들이 노인의 눈에 가장 불길한 것이나 되는 듯이 비친다.

노인은 갑자기 온몸에 그 약가방의 무게를 느끼었다.

[죽첨정] 삼정목 정류소 앞을 지난다.

우물과 우체통이 그곳에 있었다.

거기서 얼마 더 안 가 '조선장의사 아현지점'이 있다.

최주사는 그 앞을 지나며 딴때 없이 마음이 언짢았다.

윤수경이는 이미 과거의 사람이다.

그의 문제는 끝났다.

이제는 자기 차례다.

참말이지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누가 알 일이냐? (박태원, '낙조', 1933)

 

**

에─흥 에─흥

소리도 언짢게시리 상여가 지나간다. 가난한 이가 돌아갔는가 싶다. 상여는 조그맣고 메는 이는 단 네명. 외로운 이가 돌아갔는가 싶다. 상제, 복재기 하나 없이 오직 뒤따르는 이가 두세 명.
그래도 에─흥 소리만은 격에 맞게 가난한 행렬은 눈앞을 지나, 차츰차츰 멀리 더 멀리…….
그것이 완전히 시야에서 떠나자 거리는 거리는 벌판으로 변하고 벌판에는 불이 일어난다.
탐스럽게 새빨간 불길이다. 마음이 두려움보다도 먼저 아름다울 느낄 불길이다.
향이는 이윽히 그곳에 서서 그 아름다움에 취한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바람은 갑자기 불어들고, 불어드는 바람에 불길은 세勢를 얻어, 넓디넓은 벌판이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한다. 
향이는 문득 자기 신변에 그렇게도 가까이 미친 불길과, 또 그 불길이 가져오는 위험을 느끼고, 질겁을 하여 뒤로 달음질치려 한다.
그러나 다리는 마음대로 놀려지지 않고 새빨간 불길은 더 좀 가까워 향이가 거의 울가망이 되었을 때, 문득 다시 들려 오는 에─흥 소리.
돌아다보니, 바로 아까 그 상여가 불 속을 이리로 향하여 나온다…….

 

잠을 깬 뒤에 에─흥 소리는 그저 귀에 있었다. 그 탐스럽게 새빨간 불길은 그저 눈에 있었다.
향이는 잠깐 동안, 언짢고 또 야릇한 생각에 잠겨, 천장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언뜻,
"참 꿈에 송장을…… 송장을 보면 퍽 좋다는데……."
물론 향이가 본 것은 상여요, 송장은 아니었다. 그래도 역시 상여는 그 안에 반드시 송장을 담았고,
"그뿐인가? 또 불을, 불이 화알활 일어나느 것을 보아도 퍽 좋다니까……."
그래 향이는 눈을 깜박거리며, 이제 참말 다행한 빛이 그에게 있을 듯싶어 마음에 은근히 좋았다. (박태원, '길은 어둡고', 1935)

 

**
하루는 다시 추워져 싸락눈이 사륵사륵 길에 떨어져 구르는 날 오후이다. 그는 어느 잡지사에 들어가 곤작困作 한 편을 팔아 가지고 약간의 식료를 사들고 다 나온 길인데 개울 건너 넓은 마당에는 두어 대의 검은 자동차와 함께 금빛 영구차 한 대가 놓여 있는 것이다.
그는 가슴이 섬뜩하였다. 별장 쪽을 올려다보니 전나무 꼭대기에서는 진작부터 서너 마리의 까마귀가 이 광경을 내려다보며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 여자가 죽은 거나 아닌가?'
영구차 안에는 이미 검은 포장에 덮인 관이 실려 있었다. 둘러섰는 동네 사람 속에서 정자지기가 나타나더니 가까이 와 일러주었다.
"우리 정자루 늘 오던 색시가 갔답니다."
"……"
그는 고요히 영구차를 향하여 모자를 벗었다.
"저 뒤에 자동차에 지금 오르는 사람이 그 색시하구 정혼했던 남자랩니다."
그는 잠자코 그 대학 도서실에 다니며 학위 얻을 연구를 한다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 청년은 자동차 안에 들어앉아, 이내 하얀 손수건을 내어 얼굴에 대었다. 그러자 자동차들은 영구차가 앞을 서며 고요히 굴러 떠나갔다. 눈은 함박눈이 되면서 펑펑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그 자동차들이 굴러간 자리도 얼마 안 있어 덮어 버리고 말았다. (이태준, '까마귀', 1936)

 

**

수부首府의 화장터는 번성하였다.

산마루턱에 드높은 굴뚝을 세우고

자그르르 기름이 튀는 소리

시체가 타오르는 타오르는 끄름은 맑은 하늘을 어질러놓는다.

시민들은 기게와 무감각을 가장 즐기어한다.

금빛 금빛 금빛 교착交錯되는 영구차.

호화로운 울음소리에 영구차는 몰리어오고 쫒겨간다.

번잡을 존숭尊崇하는 수부의 생명

화장장이 앉은 황천고개와 같은 언덕 밑으로 시가도市街圖는 나래를 펼쳤다. (오장환, '수부', 1936)

 

**
그러나 아름답지 못한 것은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골목을 나서 큰 길에는 죄수를 실은 것말고 또 시체를 담은 금빛 자동차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무학재 고개를 넘나들었다. 대개 고개 너머 홍제원에 화장터가 있는 그 까닭이다. 그래도 자동차는 또 오히려 낫다. 그것은 우선 빨리 달릴 수 있는 수레이어서 잠깐 사이에 우리의 시계를 벗어나 버린다. 그러나 상여라든 그러한 것의 행렬은 느리고 길고 격에 맞추어 부르는 '에-흥' 소리와 또 [...] 악대를 사서 '내 고향을 이별하고'와 같은 통속명곡을 취주하게 하는 등 귀와 눈에 함께 언짢기가 여간이 아니다.

올 정월에 첫돌을 지냈을 뿐인 내 딸이 아직은 할멈의 등에 업히어 그 장엄한 행진의 내용을 알 턱이 없으나 이제 2, 3년을 못다 가서 늙은이의 잔등이를 비는 일 없이 제 발로 혼자 거리까지 뛰어나와, 그렇게 어린 설영이가 벌써 인생의 무상을 안다든 그러할 것을 나는 물론 마음 깊이 꺼리지 않을 수 없다.

[...]

이른바 도심지대를 향하여 집을 나설 때 원래가 허약한 나는 그것이 별로 급한 볼일이라든 그런 것이 아닌 경우에도 또박또박 전차를 타지 않으면 안 된다.

가난한 내게 있어 그것은 딱한 부담이다.

나는 곧잘 정류장 [현저동 전차정류장, 구舊서대문형무소 앞 독립문역 부근]에가 좀처럼 오지 않는 전차를 기다리느라 지치며 맞은편 언덕진 밭에서 일하는 죄수를 보고 독립문께로 들려오는 '에-흥' 소리를 듣고 참말 어디 다른 곳으로 수히 좀 떠나야... 하고 눈살을 찌푸려 본다. (박태원, '모화관잡필', 조선일보, 1937.5.)

 

**

안초시의 소위 영결식永訣式이 그 딸의 [무용] 연구소 마당에서 열리었다. 
서참의와 박희완 영감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 갔다. 박희완 영감이 무얼 잡혀서 가져왔다는 부의賻儀 이 원을 서참의가, 
"장례비가 넉넉하니 자네 돈 그 계집애 줄 거 없네." 
하고 우선 술집에 들러 거나하게 곱빼기들을 한 것이다. 
영결식장에는 제법 반반한 조객들이 모여들었다. 예복을 차리고 온 사람도 두엇 있었다. 모두 고인을 알아 온 것이 아니요, 무용가 안경화를 보아 온 사람들 같았다. 그 중에는, 고인의 슬픔을 알아 우는 사람인지, 덩달아 기분으로 우는 사람인지 울음을 삼키느라고 끽끽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안경화도 제법 눈이 젖어 가지고 신식 상복이라나 공단 같은 새까만 양복으로 관 앞에 나와 향불을 놓고 절하였다. 그 뒤를 따라 한 이십 명 관 앞에 와 꾸벅거리었다. 그리고 무어라고 지껄이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분향이 거의 끝난 듯하였을 때, 
"에헴!" 
하고 얼굴이 시뻘건 서참의도 한마디 없을 수 없다는 듯이 나섰다. 향을 한움큼이나 집어 놓아 연기가 시커멓게 올려 솟더니 불이 일어났다. 후― 후― 불어 불을 끄고, 수염을 한번 쓰다듬고 절을 했다. 그리고 다시, 
"헴……." 
하더니 조사弔辭를 하였다. 
"나 서참읠세, 알겠나? 흥…… 자네 참 호살세 호사야…… 잘 죽었느니. 자네 살았으문 이만 호살 해보겠나? 인전 안경다리 고칠 걱정두 없구…… 아무튼지……." 
하는데 박희완 영감이 들어서더니, 
"이 사람 취했네그려." 
하며 서참의를 밀어냈다. 
박희완 영감도 가슴이 답답하였다. 분향을 하고 무슨 소리를 한마디 했으면 속이 후련히 트일 것 같아서 잠깐 멈칫하고 서 있어 보았으나, 
"으흐……." 
하고 울음이 먼저 터져 그만 나오고 말았다. 

▲ 월남 이상재 장례 행렬 (1930)

서참의와 박희완 영감도 묘지까지 나갈 작정이었으나 거기 모인 사람들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도로 술집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이태준, '복덕방', 1937)

 

**
"아이, 이꼴 저꼴 안보려면, 오늘 밤 안으루래두 죽어버려야……"
하고 그러한 말을 하고 그러는 것이었으나, 그는 그래도 윤치호옹보다는 좀 더 오래 살 것을 은근히 계획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여,
"근대에 사회적 인물로는 내가 월남 이상재 선생을  추앙하였습니다. 월남선생 돌아가셨을 때는 내가 영구를 뫼시구 남문 밖까지 따라 갔었으니까……, 월남선생 돌아가신 후의 인물로는 윤치호선생인데, 그 분 돌아가시면 내 또 영구 따라 나서야지." 하고,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박태원, '최노인전 초록', 1939)

 

 


▲ 영화 '마부' (1961) 중에서

미아리 공동묘지는 경성부민의 '사死의 안식처'의 하나로 날마다 금빛으로 단장한 영구차가 하나의 인생의 최종열차로써 몇번이고 와닿는 '사死의 도都이다'. 벌써 돈암리 버스 정류장에 내렸을 때만도 이 인생의 최종열차는 늦가을 햇볕에 금빛을 번뜩이면서 되네미 고개를 굽이돌아 도보로 가는 기자에게 한바탕 먼지를 끼얹고 달아나고 있었다.

[...]
나의 발길은 어느덧 미아리 묘지입구에 멈춰섰다. 화강암을 때려 묘표墓標를 만드는 석공石工이 하낫둘! 그들은 지금 다 살고간 인생 최종의 기념비를 새기는 조각공인양 그것이 천직인 것처럼 아무런 말도 않고 망치질만 한다. 망치 소리에 따라 돌조각이 난다. 
길 옆에 어지러히 핀 코스모스 꽃도 이상한 빛으로 보이는 이 길을 더듬어 벌써 논과 밭을 건너 도른도른 크고적은 무덤들이 보인다.

묘지사무소 앞에 잠깐 서고 어지러히 핀 코스모스며 다알리아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사무소로 들어갔다. 
첫째 묘지에 어떤이들이 묻혀 있나를 알려는 생각에서였다. 
[...]
"여기 분묘는 몇이나 됩니까?"
기자는 다시 간수 김홍기씨를 붙들고 이야기를 꺼냈다. 
"일만육천입니다".
"바로 여기 다 묻혔습니까?"
"아니오. 제1구, 제2구가 있는데 사무실 있는 곳은 제2구입니다. 그러고 여기는 2등지, 3등지가 있죠."
"여기도 등수가 있습니까?"
죽어 묻히면서도 빈부의 차별이 있는가 하고 물으니
"네, 2등지는 제일 좋은 땅이구요. 3등지는 자연 그만치 떨어집니다."
"그럼 2등지는 한 평에 얼마나 됩니까?"
"7원 50전입니다. 그리고 3등은 1원이고, 6등은 50전입니다! 그리고 가족 공동묘지가 있는데 이건 한평에 2등지는 4원, 3등지는 2원, 4등지는 1원인데 가족만 따로 모시게 되죠……" ('미아리 공동묘지 풍경', 『조광』, 1937.12.)

 

**

하여튼 그 돈으로 간소하나마 격식을 갖추어 장례식을 무사히 치를 수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관을 사 오고 광목을 떠다 아이들에게 상복을 지어 입히고 고무신도 사다 신겼다. 의논해서 화장을 않고 망우리에 무덤을 남기기로 했다. 장지로 향하는 차안에서 익준이가 없는 것을 만기가 탄식했더니, 
"살아서두 남편 구실 못한 위인, 죽은 댐에야 있으나마나지!" 
익준의 장모는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좀 늦게나마 남편 구실을 못한 익준이 그날로 집에 돌아오기는 한 것이다.

[...]

"어이구, 차라리 쓸모없는 저 따위나 잡아가지 않구, 염라대왕두 망발이시지!" 
익준의 장모는 사위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중얼대고 인제야 눈물을 질금거리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제일 반가워했다. 일곱 살 먹은 끝엣 놈은, 
"아부지!" 
하고 부르며 쫓아가서 매어 달렸다. 
"아부지, 나, 새옷 입구 자동차 타구 산에 갔다 왔다!" 
어린것이 자랑스레 상복을 쳐들어 보여도 익준은 장승처럼 선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손창섭, '잉여인간',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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