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동안 도지개를 틀면서 시계만 바라보고 앉았다가 네시를 치는 소리가 뗑 하고 나자 이주사는 책상 위에 늘어놓았던 서류를 허둥지둥 휩쓸어서 서랍에 넣고 모자와 외투를 떼어 들고 미처 입을 새도 없이 뛰어나왔다. 이 꼴을 바라보며 앉았는 김주사는 싱긋 혼자 코웃음을 쳤다. 이주사는 채홍이 집에 들어서며 늦지나 않았나 하고 시계를 꺼내 보았다. 네시 이십분이다.
“그래두 오시는구려. 십분만 더 기대리다가 나가버릴까 했더니!”
하며 채홍이는 어떻게 보면 냉소가 섞인 웃음을 띠어 보이며 머리를 빗고 난 손을 아랫목에 놓인 대야에 씻는다. (염상섭, '전화',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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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인가 하는 그따위 고등 유민--유한 계급의 소일거리 판을 차려놓고 어중이떠중이 모아들이시지 말고 그런 돈을 좀 유리하게 쓰시는 게 어때요?"
병화는 문간에 나오면서 또 이런 듣기 싫은 소리를 하였다.
그런 돈을 유리하게 쓰라는 말에 상훈은 일전에 자기 부친더러 유리하게 돈을 쓰라고 하던 말을 생각하면서,
"누가 마장판을 늘 차려놓고 모나코 왕국을 꾸미겠나마는 올봄에 안동현 갔던 길에 싸니 한 벌 사라고 권하기에 사다가 두었던 것이지..."
하고 변명을 하고 나서는,
"김군도 주량이 상당하군. 어디 가서 좀더 자실까?"
하고 묻는다.
"손님들을 두고 나오셔서... 어서 들어가십쇼. 저는 정거장에 좀 나가봐야 하겠습니다."
"벌서 떠났을걸."
"지금 곧 나가면 되겠습니다."
"지금이 몇 신줄 알고 무턱대고 나간다는 것인가. 8시가 넘었네."
상훈은 시계를 꺼내 보았다.
(염상섭, 『삼대』,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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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오시(오냐), 금광을 해보자. 그것도 자본이 드나?’
하고 금광을 해보리라는 생각은 깊이 갑진의 맘에 뿌리를 박았다.
그러나 금광에는 자본이 안 드는가. 새것을 찾으려면 고생이 안 될는가. 누가 찾아 놓은 것을 하나 얻었으면 좋으련마는, 좋은 것을 왜 내어놓을라고. 이렇게 생각하면 금광도 쉬운 것 같지는 아니하였다.
‘에이, 귀찮어!’
하고 갑진은 담배 한 대를 또 피워 문다. 담배를 피워 무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었다. 밥상을 물린 뒤에도 다시 생각을 계속하였으나 신통한 결론이 없었다. 그는,
‘에라, 금년 고문에나 꼭 패스하자.’
하고 책상에서 작년에 부족하였던 <형법총론>을 꺼내었다.
‘우선 검사가 되어 가지고…… 그래 그래, 검사가 제일이다.’
하고 책을 떠들어 보았다. 그러나 반년 이상이나 돌아보지 않던 책이라 글이 눈에 들어오지를 아니하였다.
‘역시 부잣집 딸헌테 장가드는 것이 제일 속한 길이다!’
하고 책을 내동댕이를 쳤다.
‘그러나 인제는 신용도 다 잃어버리지를 아니하였나. 그나 그뿐인가, 숭이놈이 그 편지를 불살라 버리지 아니하고 두었다 하면 언제 그것을 내대고 간통 고소를 할는지 아나. 글쎄 내가 미쳤지, 그 편지를 왜 해?’
하고 갑진은 이를 갈았다.
‘어디 술 먹으러나 갈까.’
하고 갑진은 시계를 꺼내 보았다. 아직 오후 세시다.
‘아직 카페도 안 열었겠고.’
하고 갑진은 대단히 불쾌하였다. (이광수, 『흙』,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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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점이나 되었나. 구보는 그러나 시계를 갖지 않았다. 갖는다면 그는 우아한 회중시계를 택할 게다. 팔뚝시계ㅡ 그것은 소녀 취미에나 맞을 게다. 구보는 그렇게도 팔뚝시계를 갈망하던 한 소녀를 생각하였다. 그는 동리에 전당(典當) 나온 십팔금 팔뚝시계를 탐내고 있었다. 그것은 사 원 팔십 전에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시계 말고 치마 하나를 해 입을 수 있을 때에, 가지는 행복의 절정에 이를 것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
문득 한 사내가 둥글넙적한, 그리고 또 비속한 얼굴에 웃음을 띠고, 구보 앞에 그의 모양 없는 손을 내민다. 그도 벗이라면 벗이었다. 중학 시대의 열등생. 구보는 그래도 약간 웃음에 가까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 그리고 단장 든 손을 그대로 내밀어 그의 손을 가장 엉성하게 잡았다. 이거 얼마만이야. 어디가나. 응, 자네는ㅡ.
구보는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자네' 소리를 들으면 언제든 불쾌하였다. '해라'는, 해라는 오히려 나았다. 그 사내는 주머니에서 금시계를 꺼내 보고, 다음에 구보의 얼굴을 쳐다보며, 저기 가서 차라도 안 먹으려나.
...
문득, 구보는, 그러한 여자가 왜 그자를 사랑하려드나 또는 그자의 사랑을 용납하는 것인가 하고, 그런 것을 괴이하게 여겨본다. 그것은, 그것은 역시 황금인 까닭일 게다. 여자들은 그렇게도 쉽사리 황금에서 행복을 찾는다. 구보는 그러한 여자를 가엾이, 또 안타깝게 생각하다가, 갑자기 그 사내의 재력을 탐내 본다.
사실, 같은 돈이라도 그 사내에게 있어서는, 헛되이 그리고 또 아깝게 소비되어 버릴 게다. 그는 날마다 기름진 음식이나 실컷 먹고, 살찐 계집이나 즐기고 그리고 아무 앞에서나 그의 금시계를 꺼내 보고는 만족하여 할 게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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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회지에서 어려서부터 자란 그였건만, 보고 듣는 것이 그런 사치한 것뿐이었건만 그는 웬일인지 몰랐다. 그러므로 그는 동무들에서, 변태적 성격을 가졌다고까지 조롱을 받은 때도 있다. 그러나 이번 여름 이 동네 와서 뜻하지 않은 선비를 만난 후로는 차디찬 그의 성격도 어디로 달아났는지 그 스스로도 놀랄 만큼 되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 선비를 서울로 올려 갈까를 곰곰 생각하며 그가 국문이라도 알면 자기의 이러한 뜻을 몇 자 지어서라도 전달하고 싶은데 역시 국문이나마 배웠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포켓에서 시계를 내어 보면서 점점 가슴이 죄어들었다.
[...]
식당에서 가케우동 한 그릇을 먹은 신철이는 여전히 도서실로 들어왔다. 도서실 안을 휘 둘러보니, 식당으로 가기 전보다 인수가 좀 줄어진 듯하였다. 나도 어디로나 가볼까 하며, 포켓에서 시계를 꺼내 보니 여섯시 십 분…… 그는 의자에 걸어앉으며 엉덩이가 아픈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는 하루 종일 이 도서실에 앉아서 강의 시간에도 강당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다시 일어나서 자세를 바르게 해가지고 도로 앉았다. 그리고 가방 속에 집어넣어 두었던 책을 꺼내어 펴들었다. (강경애, 『인간문제』,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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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아까 한나절 아이를 보아주던, 신전집 주인의 장구대가리 처남이, 이번에는, 또 언제나 한가지로 물지게를 지고 천변에 나오는 것을 보고,
'저이는, 밤낮, -생질의 아이나 봐 주구, 물이나 길어 주구, 그러다가 죽으려나?'
어린 마음에도, 어쩐지, 그러한 그가 딱하게 생각되었으나, 그것도 잠시 동안의 일로, 문득 창 앞을 느린 걸음으로 점잖게 지나는 중년의 신사를 보자, 어린이의 입가에는, 제풀에, 명랑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 신사는, 우선, 몸이 뚱뚱하고, 더욱이 배가 앞으로 쑥 나왔다. 그것에 정비례하여, 그의 얼굴이 크고 또 살진 것은 물론이지만, 그 큰 얼굴에 또 그대로 정비례하여, 눈, 코, 귀, 입이 모두 크다. 그 중에도 장관인 것은, 그의 코로, 그 이를테면 벌렁코 종류에 속하는 크고 둥근 콧잔등이가, 근래는 단연히 금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전에 그가 애주하였을 때의 그 기념으로, 새빨갛게 주독이 든 것이, 여간 탐스럽지 않다. 그러한 얼굴에다, 그 위에, 그가 애용하는 중산모를 얹고, 실내화 신은 발을 천천히 옮겨 걸어갈 때, 그를 대하는 모든 사람이, 마음에 은근한 기쁨을 갖더라도, 그것은 결코 이상만 일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그가 남의 앞에서 즐겨 꺼내 보는 그 시계는 참말 금시계지만, 역시 참말 십팔 금인 것같이 남이 알아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는 듯싶은 그 시계줄이, 사실은 오 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발소 안에서의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는 소년은, 그의 태도와 걸음걸이가 점잖으면 점잖을수록에, 더욱이 속으고 우스웠다. (박태원, 『천변풍경』,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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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허긴 무얼? 거저 그렇구 그렇지…… 모두 성화야 성화! 제기할 것."
제호는 어물어물 씻어 넘기자는 것인데, 초봉이는 종시 딴전만 보느라고 그 말을 어떻게 하기는 무얼 어떻게 하느냐? 그저 그러고 있으면 윤희 문제는 종차 다 요정이 날 텐데, 에이 성가시어! 이렇게 하는 말로 갖다가 알아듣는다. 그러고 보니 방금 혼자서 결이 나서 따지고 캐고 하던 것이 우스웠고, 따라서 인제는 윤희가 서울로 올라온 것도 위협이 되지 않고 앞일도 종시 이런 착한 아저씨가 있대서 안심이 되고 했다.
"벌써 다섯시 반이라? 어허 또 좀 나가 봐야 하나! 제기할 것."
제호는 꺼내 보던 시계를 도로 집어넣으면서 기지개를 쓰고 일어선다.
...
"…… 여섯시에 잠깐 누굴 만나기루 했는데……."
"그래두 얼른 잡숫구 나가시우?…… 그리구우, 저어……."
초봉이는 오래간만에 해죽해죽 이쁜 웃음을 웃어 보이면서,
"……오늘 월급 탄 턱으루 육회두 치구 갈비두 굽구 해디리께, 당신 좋아허시는……."
"육회? 갈비?"
제호는 그 웃음에 그전처럼 얼굴과 몸치장까지도 했더라면 얼마나 운치가 있겠느냐 이런 생각을 하는데, 또 육회니 갈비니 하는 게 모처럼 초봉이의 얌전한 솜씨로 만든 안주가 입맛이 당기어 한잔 또한 해롭지 않다 싶어,
"……거 구미는 당기는데…… 그리나저리나 오늘은 웬 서비스가 이리 대단한구?"
"월급 탄 턱으루……."
"허허허허, 시에미가 오래 살면 자수물통에 빠져 죽는다더니…… 그러나저러나 시간이……."
"진지는 다 했어요…… 지금 곧 고기허구 약주만 사오믄 고만일걸."
초봉이가 어멈을 불러 대면서 부산나게 서두는 것을 제호는 다시금 시계를 꺼내 보다가,
"아니, 가만 있으라구……."
하면서 그대로 마당으로 내려선다.
"……그럴 게 아니라, 내 다녀오지. 지끔 가서 만나 볼 사람 만나 보구, 여섯시 반이나 일곱시 그 안으로는 올 테니깐, 그새 무어구 천천히 만들어 뒀다가 줄려거던 주구…… 그럼 내 오는 길에 술은 한 병 사들구 오께시니, 잉? 그러면 좋잖어?"
"그럼 그렇게 허시우. 여섯시 반이나 일곱시까지?…… 꼭 오시우? 또 어디 가서 약주 잡숫느라구 남 눈이 빠지게 기대리겔랑 마시구……."
"아무렴, 글랑 염려 말아요."
제호는 거들거리면서 대문간으로 나간다. (채만식, 『탁류』,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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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밤 깊은 거리를 무릎이 척척 접히도록 쏘다녀보았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생명은 병원을 가진 의사에게 있어서 마작의 패 한 조각 한 컵의 맥주보다도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한 시간 만에 나는 그냥 돌아왔다. 순영은 쩡쩡 천장이 울리도록 코를 골며 인사 불성 된 송군 위에 엎뎌 입술이 파르스레하다.
어쨌든 나는 코고는 '사체'를 업어 내려 자동차에 실었다. 그리고 단숨에 의전병 원으로 달렸다. 한 마리의 세퍼드와 두 사람의 간호부와 한 분의 의사가 세 사람(?)의 환자를 맞아주었다.
독약은 위에서 아직 얼마밖에 흡수되지 않았다. 생명에는 '별조'가 없으나 한 시간에 한번씩 강심제 주사를 맞아야겠고 또 이 밤중에 별달리 어쩌는 도리도 없고 해서 입원했다.
시계를 들고 송 군의 어지러운 손목을 잡아 맥박을 계산하면서 한밤을 새라는 의사의 명령이다. 맥박은 '백 삼십'을 드나들면서 곤두박질을 친다. 순영은 자기도 밤을 새우겠다는 것을 나는 굳이 보냈다.
가서 자고 아침에 일찍 와요. 그래야 아침에 내가 좀 자지 둘이 다 지쳐버리면 큰일 아냐? (이상李箱, '환시기', 유고)
이튿날은 4월 29일이었다. 나는 김해산 집에서 윤봉길 군과 최후의 식탁을 같이하였다. 밥을 먹으며 가만히 윤 군의 기색을 살펴보니 그 태연자약함이 마치 농부가 일터에 나가려고 넉넉히 밥을 먹는 모양과 같았다.
김해산 군은 윤 군의 침착하고도 용감한 태도를 보고, 조용히 내게 이런 권고를 하였다.
"지금 상해에 민족 체면을 위하여 할 일이 많은데 윤 군 같은 인물을 구태여 다른 데로 보낼 것이 무엇이오?"
"일은 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좋지. 윤 군이 어디서 무슨 소리를 내나 들어봅시다."
나는 김해산 군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식사도 끝나고 시계가 일곱 점을 친다. 윤 군은 자기의 시계를 꺼내어 내게 주며,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대로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제 것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
하기로 나도 기념으로 윤 군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를 윤 군에게 주었다.
식장을 향하여 떠나는 윤 군은 자동차에 앉아서 그가 가졌던 돈을 꺼내어 내게 준다.
"왜, 돈은 좀 가지면 어떻소?"
하고 묻는 내 말에, 윤 군은,
"자동차값 하고도 5, 6원은 남아요."
할 즈음에 자동차가 움직였다. 나는 목이 메인 목소리로,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하였더니 윤 군은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향햐여 숙였다. 자동차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천하 영웅 윤봉길을 싣고 홍구 공원을 향하여 달렸다. (김구, 『백범일지』 하권, 1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