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대문우편국 앞
윤직원 영감은 재동 네거리 버스 정류장에서 춘심이와 같이 버스를 기다립니다. 때가 아침저녁의 러시아워도 아닌데 웬일인지 만원 된 차가 두 대나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그러더니 세 대째 만에, 그것도 여간 분비지 않는 걸, 들이 떼밀고 올라타니까 버스걸이 마구 울상을 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자기 혼자서 탔으면 꼬옥 알맞을 버스 한 채를 만원 이상의 승객과 같이 탔으니 남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윤직원 영감 당자도 무척 고생입니다. 그럴 뿐 아니라, 갓을 버스 천장에다가 치받치지 않으려고 허리를 꾸부정하고 섰자니,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해야 됩니다. 그 대신 춘심이는 윤직원 영감의 겨드랑 밑에 가 박혀 있어 만약 두루마기 자락으로 가리기만 하면 찻삯은 안 물어도 될 성싶습니다.
▲조선총독부 앞
겨우겨우 총독부 앞 종점에 당도하여 다들 내리는 데 섞여 윤직원 영감도 춘심이로 더불어 내리는데, 버스에 탔던 사람들은 기념이라도 하고 싶은 듯이 제가끔 한번씩 쳐다보고 갑니다.
윤직원 영감은 버스에서 내려서 대견하게 숨을 돌린 뒤에, 비로소 염낭끈을 풀어 천천히 돈을 꺼낸다는 것이 십 원짜리 지전입니다.
▲ 오늘부터 운전할 버스와 여차장', 1928. 4.22. 동아일보, 처음 버스요금은 7전이었다.
"그걸 어떡허라구 내놓으세요? 거스를 돈 없어요!"
여차장은 그만 소갈머리가 나서 보풀떨이를 합니다.
"그럼 어떡허넝가? 이것두 돈은 돈인디……."
"누가 돈 아니래요? 잔돈 내세요!"
"잔돈 띴어!"
"지끔 주머니 속에서 잘랑잘랑 소리가 나든데 그러세요? 괜히……."
"으응, 이거?"
윤직원 영감은 염낭을 흔들어 그 잘랑잘랑 소리를 들려 주면서,
"……이건 못 쓰넌 돈이여, 사전이여…… 정, 그렇다먼 못 쓰넌 돈이라두 그냥 받을 티여?"
하고 방금 끈을 풀려고 하는 것을, 여차장은 오만상을 찡그리고는,
"몰라요! 속상해 죽겠네……! 어디꺼정 가세요?"
하면서 참으로 구박이 자심합니다.
"정거장.[경성역]"
"그럼, 전차에 가서 바꾸세요!"
"그러까?"
잔돈을 두어 두고도 십 원짜리를 낸 것이며, 부청 앞에서[맞은편 부근이 목적지인 부민관] 내릴 테면서 정거장까지 간다고 한 것이며가 모두 요량이 있어서 한 짓입니다.
무사히 공차를 탄 윤직원 영감은 총독부 앞에서부터는 춘심이를 앞세우고 부민관까지 천천히 걸어서 갑니다.
"좁은 뽀수[버스] 타니라구 고생헌 값을 이렇기 도루 찾는 법이다."
그는 이윽고 공차 타는 기술을 춘심이한테도 깨우쳐 주던 것인데, 그런 걸 보면 아마 청기와장수는 아닌 모양입니다. [1934] (문학과 지성사, 2005, 23-25쪽)
[위 내용으로 알 수 있는 것]
1. 1930년대에도 버스-전차 환승이 되었다. (시내구간 5전 동일)
* 1932년에서 경성부영버스 운영권이 경성전기회사로 이관됨에 따라 경성시내 버스.전차 운영을 모두 경성전기회사에서 독점.
2. 윤직원 영감은 버스-전차 환승 제도의 약점을 이용해 버스를 공짜로 탔다.
▲ 남인수·이난영, "미소의 코스" (김용호 작사, 박시춘 작곡, 1938년 오케Okeh레코드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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