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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심이는 (속으로 요옹용 하면서) 토방에 가 선 채 방으로 들어가려고도 않습니다.

"……어서 나오세요, 반지 사러 가게요……."

"헤헤헤! 그년이 이저빼리지두 안펶네……! 그래라, 가자! 제엔장 맞일……."

"내가 그걸 잊어버려요? 밤새두룩 잠두 아니 잔걸! 아, 오정 때 오라구 허신 걸 아홉점에 왔다면 고만이지 머어…… 어서 옷 입으세요!"

"오―냐, 끙……."

윤직원 영감은 뒤뚱거리고 일어서서 의관을 차립니다.

... (중략)

덜씬 큰 윤선 옆에 거룻배 하나가 붙어서 가는 격이라고나 할는지, 아무튼 이 애인네 한 쌍은 이윽고 진고개 어귀에 나타났습니다. 




사람마다 모두들 윤직원 영감을 한 번씩 짯짯이 보면서 지나갑니다. 더구나 때묻은 무명 고의 적삼에 지게를 짊어지고 붉은 다리를 추어 올린 요보가 아니면, 뒷짐지고 흰 두루마기에, 어둔 얼굴에, 힘없이 벌린 입에, 어릿거리는 눈으로 가게를 끼웃끼웃, 가만히 들어와서는 물건마다 한참씩 뒤적뒤적하다가 슬며시 나가 버리는 센징들만이 조선 사람인 줄 알기를 십상으로 하던 본전통 주민들은, 시방 이 윤직원 영감의 진고개 좁은 골목이 뿌드읏하게시리 우람스런 몸집이며 위의 있고 점잖은 얼굴이며 신선 같은 차림새 하며가 풍기는 얌반상의 위풍에 그만 압기라도 되는 듯, 제각기 눈을 흡뜨고서 하― 입을 벌립니다. 

... (중략)


진고개를 빠져나와 전차정류장으로 광장을 건너가면서, 춘심이는 손에 낀 반지를 깨웃깨웃, 못 견디게 좋아합니다...


(중략)


"저어 참, 영감님?"

"왜야?"

"우리 저기 미쓰코시 가서, 난찌 먹구 가요?"

"난찌? 난찌란 건 또 무어다냐."

"난찌라구, 서양 즘심 말이에요."

"아서라! 그놈의 서양밥, 말두 내지 마라!"

"왜요?"

"내가 그년의 것이 좋다구 히여서, 그놈의 디 무어라더냐 허넌 디를 가서, 한번 사먹다가 돈만 내버리구 죽을 뻔히였다!"

"하하하, 어떡허다가?"

"아, 그놈의 것 꼭 소시랑을 피여 논 것치름 생긴 것을 주먼서 밥을 먹으라넌구나! 허 참……."

윤직원 영감이 만약 전감이 없었다면 춘심이한테 끌려가서 그 서양 점심을 먹느라고 한바탕 진고개에 있어서의 조선 정조를 착실히 나타냈을 것이지만, 요행 그 소위 쇠스랑 펴놓은 것―---포크에 대한 반감의 덕으로 작파가 되었습니다. (문학과 지성사, 252-9쪽)



▲경성우편국(현 서울중앙우체국 자리)과 미쓰코시 (현 신세계백화점 구관)


 

▲미쓰코시 백화점 4층 평면도 (『조선과 건축』, 1930.11.)




▲미쓰코시 백화점 대식당  (『조선과 건축』, 1930.11.)


 

**

어느덧 신철이는 발길을 멈추고 우뚝 섰다. 흘금 쳐다보니 미쓰코시였다. 저기나 또 들어가 보자…… 하고 몇 발걸음 옮겨 놀 때 저 안에 혹은 나 아는 사람들이 무엇을 사러 오지나 않았는지? 하며 주저하였다. 그는 언제나 여기 올 때마다 그러한 생각을 하며 그의 초라한 모양을 다시 한번 굽어보곤 하였다.

미쓰코시를 향하여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은 모두가 말쑥한 신사고 숙녀였다. 자신과 같이 이렇게 초라한 양복에 중절모를 아직까지 쓴 사람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모두가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여름 모자였다. 그리고 여름 양복을 시원스레 입었다. 그는 다시 한번 주저하였다. 그러나 신철이는 그나마 여기 아니면 곤한 다리를 쉬일 곳조차도 없었다. 남산에나 가야 할 터이니 그곳까지 가자면 덥고, 우선 여기 들어가서 쉬어 가지고 가리라…… 하고 발길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미쓰코시 상층까지 올라온 신철이는 의자에 걸터앉아 멍하니 분수를 바라보았다. 곁의 의자에 앉은 어떤 남녀는 빙수를 청하여 놓고 먹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재미나게 하다가는 호호 웃었다. 그때마다 신철이는 그들이 자기의 초라한 모양을 바라보고 웃는 듯하여 한참이나 그들을 노려보다가 휙 돌아앉았다. 

그리고 그는 도리어 그들을 대하여 떳떳한 길을 밟지 못하고 있는 인간들아! 하고 소리쳐 주고 싶은 생각을 억지로 해보았다.

곁에서 빙수를 마시며 호호…… 하하…… 하는 두 젊은 남녀의 웃음소리에 비위가 상해서 신철이는 그만 돌아앉았으나 그들의 시선이 그의 잔등과 뒷덜미를 향하여 여지없이 쏟아지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햇볕이 못 견디게 내리쪼인다. 그는 포켓에서 수건을 내어 이마를 씻었다. 수건 역시 이것이 마지막이다. 집에서 나올 때 사오 개 가지고 나왔지마는 동무들에게 하나하나 빼앗기고 그나마 해어진 것 이것이있을 뿐이다. 그는 곁에서 빙수를 먹는 여자의 음성이 차츰 옥점의 그 음성과 흡사하였다. 옥점이는 어디로 출가했는가? 아직도 나를 생각하고 있는가? 이런 생각이 내리쬐는 햇볕과 같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픽 웃어 버렸다. 그리고 그 생각을 묻어 버리렸으나 웬일인지 그때가 그리운 듯하였다. 아니! 확실히 그리워졌다. 그나마 그때가 자신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행복스러운 시절이었는지 몰랐다. 그는 그만 벌떡 일어났다. 그 생각이 마치 일포가 콧구멍을 우벼 내고 발가락을 우벼 내는 것보다도 더 고리타분하게 생각되었던 때문이다.


▲ 영화 「암살」(2015)에서 묘사된 미쓰코시 경성지점 1층 내부 



그는 달아가고 달아오는 전차— 또 전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끊일 새 없이 뒤를 이어 오는 택시며 또 버스를 눈이 아물아물하도록 바라보았다. 따라서 그가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자기가 이 높은 데서 그것들을 아득하게 바라보는 것과 같이 전차며 택시며 버스가 그렇게도 자기와 거리가 멀어진 것을 그는 가슴이 뜨겁게 깨달았다. 생각해 보아도 저 전차를 타고 한강에 나가 본 것이 작년 여름에 옥점이와 함께 나갔던 기억밖에는 찾아낼 수가 없었다. 물론 그가 그 후에도 몇 번이나 전차를 탔을 것만은 분명한데 도무지 그 기억은 몽롱하고 오직 옥점이와 같이 전차를 타고 혹은 택시를 타고 드라이브하던 기억만이 뚜렷하였다. 

그는 불쾌하였다. 빙수 먹는 계집으로 인하여 이런 불쾌한, 아니 비열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신철이는 어정어정 걸으며 어젯저녁에 밤송이 동무에게서 얻어 두었던 신문을 포켓에서 꺼내 들었다. 그는 신문을 펴들자 정치면부터 보기 시작하였다. 그는 뚜렷이 드러난 미다시(제목)를 죽 훑어보며 약간 양미간을 찡그렸다. 점점 더 못 견디게 배가 고파 오고 그리고 골머리가 띵하니 아팠던 것이다.

그는 눈결에 보니 남녀는 저편 화초 진열장으로 들어간다. 그는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사이렌이 난 것을 짐작하여 아마 오후 세시나 두시 반은 넉넉히 되었으리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부절히 이 상층에 올라왔다 내려가곤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정신을 차려 그들을 볼 수가 없이 배가 몹시 고파 온다. 입에서는 침조차 나오지 않고 배는 등에 붙은 것 같다. 그는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었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계셨으면 자기가 뛰어나온다고 하더라도 뒤미처 따라와서 자기를 집으로 데려갔지, 아직까지도…… 아니 이렇게 배가 고파 운신을 하지 못하게까지 내버려두었으랴! 

하였다. 그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의모는 더 말할 여지가 없었다. 따라서 아무 철 없는 영철이까지도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은 비겁한 생각이라…… 하였다.

단 오 전만 가졌으면 이렇게 배는 고프지 않으련만…… 오 전! 오 전! 그의 눈에는 오 전짜리 백동전이 뚜렷이 나타나 보인다. 십 전보다도 좀 작은 듯한, 그리고 좀 얇은 듯한 그 오 전! 그것이 없어서 자기는 이렇게 배를 곯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휘돌아보았다. 행여나 그 남녀가 빙숫값을 치르다가 그 오 전을 떨어치지 않았는가? 하여 보고 또 보나 아무것도 발견치 못하였다.

남녀는 앵무새를 사가지고 나왔다.

"곤니치와(안녕하세요)……."

계집이 조롱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고는 호호…… 하하…… 웃었다.

신철이는 저것에 오 전짜리를 몇 개나 주었을까? 생각을 하며 그 오 전을 멍하니 헤어 보았다. 남녀는 이젠 집으로 가는 모양이다. 신철이는 그들의 모양을 흘금 바라보며 내가 옥점이와 결혼을 하였다면 아마 지금쯤은 저런 것이나 사러 다니겠지…… 하였다.

그들이 사라진 후에 신철이는 그놈이 들어왔을까? 어서 가야지…… 석간 돌리러 가겠으니까…… 하고 일어났다. 앞이 아뜩해지며 횡 잡아 돌리는 듯하여 그는 의자를 붙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그의 머리에는 이러한 것을 생각하였다. 누구든지 돈 오 전만 주면서 너 여기서 저 아래까지 뛰어내려라 하면 그는 서슴지 않고 뛰어내릴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런지 이 꼭대기와 저 아래 땅과의 거리가 차츰 가까워지는 것을 그는 보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층으로 내려온 신철이는 저편으로부터 아는 여자가 마주 오는 것을 보고 그만 당황하였다. 그래서 식당 편으로 피하였다. 그리고 진열대에 진열한 상품을 보는 체하면서 그 여자가 어서 상층으로 올라가기만 고대하였다. 그러나 그 여자는 돌아가며 무엇을 부지런히 찾고 있다. 신철이는 초조한 맘으로 얼굴을 돌리니 유리알 속으로 빛나는 카레라이스, 다마고돈부리, 스시 등의 요리 표본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쓸쓸히 말라 가고 있을 뿐이었다. 순간에 그는 참을 수 없는 식욕을 느끼며 휙 돌아섰다.

"아니? 신철 씨 아니세요?"

마침내 그 여자는 신철의 앞으로 다가왔다. 신철이는 얼결에 중절모를 벗어 움켜쥐고 뒷짐을 졌다. 그리고 헤어진 구두를 보이지 않으려고 진열대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네, 참 오래간만입니다."

"왜 놀러 안 오세요?"

"네…… 네…… 뭐 그저 바뻐서……."

식당 곁에 섰느니만큼 한층더 어려웠다. 그리고 어서 이 여자가 물러났으면 하나 좀처럼 물러나지 않을 모양이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이편으로 슬슬 뒷걸음질하였다.

"자, 저는 먼저 갑니다."

그 여자는 이상한 듯이 신철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네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놀러 오세요."

"예…… 예."

신철이는 도망하듯이 미쓰코시 문 밖을 나섰다. 그는 한숨을 후 내쉴 때 땀방울이 등허리를 씻어 근질근질하게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이가 무는 것같이 등허리가 가려우나 지나가고 오는 사람들의 눈이 어려워서 서서 긁지도 못하고 걸어가려니 땀만 부진부진 더 났다.

그는 본정으로 들어섰다. 좌우 상점에서 울려 나오는 레코드 소리며 아스팔트 위를 걸어 오고 가는 게다 소리, 각 상점에서 상품을 사고 파는 부산한 소리, 이 모든 소리가 교착이 되어 가지고 흐르고 또 흐른다. 그리고 그 새를 물고기같이 헤엄쳐 나가고 오는 사람의 홍수! 그들은 모두가 앞가슴을 불쑥 내밀고 생기 있게 팔과 다리를 놀렸다. (강경애, 『인간문제』, 1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