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반도의 봄 (1)] 춘향전의 야외촬영지

category 영화와 경성 2021. 8. 1. 10:44

'반도의 봄'은 영화 '춘향전'의 순탄치 않은 제작 과정을 기본 줄거리로 하여 전개된다. '반도의 봄'에서 '춘향전' 촬영장면은 스튜디오 1개의 씬과  야외 2개의 씬이 할애되었다. 영화 맨 처음에 등장하는 '춘향전'  스튜디오씬은 당대의 제작환경을 보여주는 파격적인 장면들이 등장해 깊은 인상을 준다. 야외 2개의 씬은 각각 장충단공원에 위치했던 박문사의 석고각과 수원 화성의 방화수류정(동북각루)에서 촬영되었다. 


1. 박문사 석고각 

 

1932년 장충단공원 동편에 건립된 박문사博文寺는 이등박문伊藤博文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에서 따온 일본식 사찰이다. 박문사 일대의 남산자락 언덕을 이등박문의 아호를 따서 춘무산이라 명명하여  춘무산 박문사라 부르기도 했다. 이 사찰을 건립하면서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을 떼다가 사찰 정문을 만들었는가 하면 경복궁 선원전 건물을 떼어와 부속건물로 옮겨 지었고, 대한제국 시기에 소공동 환구단(1899) 인근의 석고단(1902) 터, 뒤에 소공동 조선총독부도서관(1923) 경내에 있던 석고각을 뗴어와 박문사 본당 인근으로 옮겨 지었다. 박문사로 이전한 시기는 대략 1935년 3월경이라 한다. 

 

▲ 장충단공원에서 보이는 석고각(노란 원)과 박문사 본당  (1935년 이후)
▲ 영화 '반도읭 봄'에서 춘향전 촬영을 펑크낸 안나(춘향 역)가 장충단공원에서 박문사와 석고각을 바라보는 장면 (1941)
▲ 영화 '반도의 봄'의 '춘향전' 야외촬영지로 등장하는 박문사 경내의 석고각 (1941)

옮겨진 석고각은 박문사 경내의 종각鐘閣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이전 설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석고각에 '종'이 실제로 설치된 사진자료는 확인되지 않으며, 영화 '반도의 봄'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박문사는 해방 직후인 1945년 11월에 불이 나서 부속건물로 쓰인 선원전은 전소한 것으로 보이나 본당과 석고각은 큰 피해를 입지 않은 듯하다. 장소적 특성상 박문사 일대는 잠시 안중근 의사 동상 부지로 논의되었다가 철회되었다. 1967년에 외국 귀빈의 숙소인 영빈관으로 지어졌다가 1973년경에 호텔(신라)에 인수되었고 지금은 박문사 본당 등 박문사 일대의 자취는 찾기 어렵다.

영빈관 건축이 구체화된 1965년경 석고각은 다시 창경원으로 옮겨져 각종 공연을 하는 야외무대로 사용되었으나 창경궁 복원사업과 함께 철거되었다고 한다. 석고각은 보존가치가 있는 역사적 건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창경궁 복원사업을 명목으로 창경궁(창경원) 일대가 정비되면서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사라진 건물이 되고 말았다. 

 

▲ 창경원 야외무대라는 이름으로 1965년경부터 철거 전까지 각종 공연 무대로 쓰였던 석고각 (1973)

 

석고각石鼓閣은 종각, 즉 '종'의 집이 아니라 석고, 즉 돌북의 집이라는 뜻이다. 석고각은 사라졌지만 석고각 안에 있던 3개의 석고는 아직도 원래의 자리 근처에 남아 있다. 석고각 안에 있던 석고는 아래의 사진처럼 누워 있는 형태였다.  석고각이 없는 현재의 석고 3개는 야외에 세워진 채로 존치되어 있다. 

 

▲ 박문사로 옮겨지기 전 석고각 내의 석고 (1935년 이전)

 

2. 수원화성 방화수류정(동북각루)

 

수원 화성의 동북각루는 성을 지키는 보루로서 지어졌으나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라는 별칭에서 보듯이 건물의 모양, 특히 지붕의 양식이 세련되고 용연龍淵이라는 연못과 함께 주위 풍광이 수려하다. 방화수류정은 '춘향전'에서 춘향이 이몽룡을 기다리던 '오리정'이라는 현액을 달고 영화에 등장한다. 정조 때 축조된 수원 화성은 일제강점기 시기에 이르면 성벽이나 보루 등 각종 시설물들이 상당히 훼철되고 도성으로서는 기능을 완전 상실했지만 방화수류정 건물은 그나마 잘 보전되어 촬영지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반도의 봄의 '춘향전'의 야외촬영지 방화수류정 (1941)
▲ 현재의 방화수류정과 용연 (출처: 수원문화재단 홈페이지)

3. 박문사 석고각과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은 둘다 '오리정'

 

박문사 석고각에서 대사를 연습하는 이몽룡 역의 배우(권영팔)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거듭 외우고 있다. 

"오냐, 염려마라 장부의 먹은 마음  태산이 평지된들 변할 리가 있겠느냐"

춘향역을 안나(백란 분)에서 정희(김소영 분)으로 바꾸고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에서  촬영된 장면에서도 이몽룡은 역시 똑같은 대사가 등장하고 있다. 같은 장면을 촬영하는 장소가 바뀐 것이다. 촬영지가 바뀐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오리정으로는 석고각보다는 방화수류정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