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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의 봄 (6)] 조선광무소

category 영화와 경성 2021. 8. 12. 16:33

'제비' 2층에는 사무소가 있었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다. 사무소 아래층에 '제비'는 있었다. 이것은 얼른 들어 같은 말일 법 하되 실제에 있어 이렇게 따지지 않으면 안 된다. 왜 그런고 하면 그 빈약한 2층 건물은 그나마도 이상의 소유가 아니고 엄연히 사무소의 것으로 '제비'는 그 아래층을 세 얻었을 뿐. 그 셋돈이나마 또박또박 치르지 못하여 이상은 주인에게 무수히 시달림을 받고 내용증명의 서류우편 다음에 그는 마침내 그곳을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니까─ (박태원, '제비', 1939)


▲ 종로경찰서 앞에서 영일과 엇갈리는 정희 

공금횡령으로 경찰에 끌려간 영일(김일해 분)을 찾아 정희(김소영 분)는 종로경찰서를 찾아간다. 그러나 영일은 안나(백란 분)의 도움으로 풀려나 병원으로 향하게 되는데 정희는 그를 만나지 못한 채 집으로 되돌아간다. 

이때 정희가 머리를 수그린 채 종로경찰서를 나와 종로1가(청진동) 앞을 걸어가는 장면이 시작된다. 종로경찰서를 나와 청진동 앞길을 걷는데 정희의 동선을 따라 보이는 상점들은 성상회 -경성트럭(2층)-(각종 성병, 치질)상담소[이상 1정목45] -조선광무소-임치과의원( 2층)-한일상회[이상 1정목44]- 경성다방[ 1정목43] 순이다. 영상에 나오는 가로는 지번상으로 종로1정목 43번지~45번지, 3개의 건물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아래의 지도는 영화에서 정희의 동선을 보여주고 있다. 아래 지도를 보면 영화에서는 46, 47번지 사이의 구간이 생략되고 종로경찰서 입구에서 45번지로 바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정희의 동선

 

아래 사진은 종로경찰서 입구 바로 옆에 있던 대륙고무( 47번지)에서 시작되는 종로1정목 북측의 모습이다. 46번지에는 한경선양화점 건물이 보인다. 영화와 아래 사진은 5년 이상의 시간차이가 있고 1층 가로경관도 얼마간 변화를 겪게 된다. 

 

▲ 종로경찰서 옆 대륙고무(종로1정목 47번지)에서 시작되는 종로1정목 북측의 모습 (조선총독부, 『시정이십오년사』, 1935년)

 

종로 1정목 44번지에 소재한 조선광무소가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왔다. 위의 1935년경 사진에서 가운데에 보이는  첫번째 전봇대 옆에 '조선광무소'라는 간판이 보인다. 원래 건물주인 조선광무소는 2층에 자리했고 1935년까지만 해도 시인 이상李箱의 '제비'다방과 한일상회라는 전화상이 있었다. 제비다방은 1933년 개업 초기부터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지불하지 못한 사글세가 쌓였고 이상은 건물주에게 명도소송을 당하고 1935년 9월경에는 폐업했다고 한다. 1935년과 1941년 사이에 조선광무소 건물 1층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41년경에는 조선광무소가 1층으로 내려오고 2층에는 임치과의원이라는 개인병원이 대신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1935년경에 43번지에는 '백마'라고 하는 카페(차에 타고 있는 우측 소방관 위에 일본어로 카페 カフェ-(백마)라고 쓰인 간판이 보임)가 있었는데 화신백화점 뒷편 공평동으로 신축이전(1937.3.)한 것으로 보이고[각주:1] 1941년에는 '경성다방'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종로1정목 44번지 조선광무소 앞을 지나는 정희 (반도의 봄, 1941)

 

그런데 영화에서 보이는 조선광무소 1층의 외관은 세심하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조선광무소 1층 전면부는 가로 4x2의 격자형 미닫이 유리문으로 되어 있다.  영화에서는 흑백이기 때문에 색채는 알 수 없지만 유리문에 종이를 발랐는지 내부가 다소 불투명하게 보이는 바둑판 모양의 외관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광무소가 1층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제비다방이 폐업을 한 이후이다. 제비다방이 폐업한 이후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서 전면부와 내부를 새로 수리해서 들어왔다가 이 가게도 폐업하고 나갔거나 아예 임대를 하지 않고(또는 못하고) 제비다방의 상태의 전면부만 대략 손을 봐서(유리문에 종이를 바르는 따위) 사무실로 그대로 쓰고 2층 전체를 임대(개인병원)했을 가능성도 있다. 구인회로 함께 활동한 조용만이 묘사한 제비다방의 외관을 보면 '반도의 봄'에 등장하는 조선광무소 1층 사무실의 외관이 원래 제비다방의 전면부와 매우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제비는 이상이가 종로네거리에 새로 낸 다방이었다. 남쪽 큰길로 난 창을 뜯어서 바둑판 모양으로 네모진 창틀을 해 박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바둑판 같은 두꺼운 유리창이 근사해서 지나는 사람의 눈을 끌었지만... (조용만, 『구인회 만들무렵』, 1984[각주:2])

 

당시의 대중잡지에도 제비다방에 대한 비슷한 묘사가 있다. 종이를 바른 듯하지만 사무실 안에서 한 남성이 유리문을 통해 정희를 보는 시선이 아래의 묘사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점이 있는 듯하다. 

 

총독부에 건축기사로도 오래 다닌 고등공업 출신의 김해경씨가 경영하는 것으로 종로 서 서대문 가느라면 10여 집 가서 우편 페이브먼트 옆에 엽헤 나일강반江畔의 유객선遊客船같이 운치 있게 빗겨 선 집이다. 더구나 전면 벽은 전부 유리로 깔았다는 것이 이색이다. 이렇게 종로대가鍾路大街를 옆에 끼고 앉았으니 만치 이 집 독특히 인삼차나 마시면서 바깥을 내다  보느라면 유리창 너머 페이브멘트 위로 여성들의 구둣발이 지나가는 것이 아름다운 그림을 바라보듯 사람을 황홀케 한다. ('끽다점평판기', 『삼천리』, 1934.5.)

 

 

  1. https://gubo34.tistory.com/203 [본문으로]
  2. 전정은 (2012), '문학작품을 통한 1930년대 경성중심부의 장소성 해석: 박태원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바탕으로',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논문 89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