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 점경
불그스름한 황토는 미어진 고무신에만 묻은 것이 아니라 새까맣게 탄 종아리에도 더러 튀었던 자국이 있다. 바지는 어른이 입다가 무릎이 나가니까 물려준 듯 아랫도리는 끊어져 달아난 고구라[일본산의 두꺼운 무명옷감] 양복인데, 거기 입은 저고리는 조선 적삼이다. 적삼은 거친 베것이라 벌써 날카로와진 바람 서슴에 똘똘 말려버렸다. 이러한 옷매무시에 깎은 지 오랜 텁수룩한 머리를 쓴 것뿐인 한 사내아이, 그는 화신백화점 진열창 앞에 서서 그 안을 들여다보는데 골똘했다. "웬 자식이야?" 무슨 의장병처럼 게이트보이가 내다보고 욕설을 던지되 그의 귀는 먹은 듯, "털 담요! 가방! 꽨 크이! 옳아! 운석이 아버지가 서울 올 때면 아버지가 정거장으로 지구 다니던 그따위구나!" 아이는 다 풀린 태엽처럼 다시 움직일 가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