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 장마] (옛) 출근길
아직 열한점, 그러나 낙랑樂浪이나 명치제과쯤 가면, 사무적 소속을 갖지 않은 이상이나 구보仇甫 같은 이는 혹 나보다 더 무성한 수염으로 커피잔을 앞에 놓고, 무료히 앉았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내가 들어서면 마치 나를 기다리기나 하고 있었던 것처럼 반가히 맞아줄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요즘 자기들이 읽은 작품 중에서 어느 하나를 나에게 읽기를 권하는 것을 비롯하여 나의 곰팡이 슨 창작욕을 자극해주는 이야기까지 해줄런지도 모른다. 나는 집을 나선다. 포도원 앞쯤 내려오면 늘 나는 생각, '버스가 이 돌다리까지 들어왔으면'을 오늘도 잊어버리지 않고 하면서 개울물을 내려다본다. 여러 날째 씻겨내려간 개울이라 양치질을 하여도 좋게 물이 맑다. 한 아낙네가 지나면서, "빨래하기 좋겠다!" 하였다. 이런 맑은 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