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곽
M은, 학생시대부터 대단한 방탕생활을 하였습니다. 방탕이래야 금전상의 여유가 부족한 그는, 가장 하류에 속하는 방탕을 하였습니다. 오십 전 혹은 일 원만 생기면, 즉시로 우동집이나 유곽으로 달려가던 그였습니다. 체질상, 성욕이 강한 그는, 그 불붙는 성욕을 끄기 위하여 눈앞에 닥치는 기회는 한 번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을 만날지라도, 음식을 한턱하라기보다 유곽을 한턱하라는 그였습니다. (김동인, '발가락이 닮았다', 1931) ** "용녀는 신세를 망쳤습니다. 내가 떠난 뒤에 성례하여 그럭저럭 살았으나, 그 남편 되는 사람이 아편쟁이가 되었더랍니다. [...] 그 뒤 그들은 평양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였다가 그 남편은 용녀를 어떤 유곽에 팔아먹고 도망하였습니다. 그 뒤 용녀는 안동현 어떤 유곽에 있다..